안녕하세요, 모엘입니다! 답변주신 분들께 일단 감사하다는 표현을 하고 싶습니다. 🤗 이번 주제는 연민이었죠? 사실 어쩌다보니 주제를 "~~이 필요할까?"를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조금 답정너스러운 부분이 있긴 합니다.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주제를 이런 식으로 만든 거겠죠.ㅎㅎ 그리고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못을 박고 싶네요. 연민은 도덕적 감정입니다.🫢 일단 우리에게 익숙한 연민의 단점을 살펴보죠. 제가 몇 번 언급했듯이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는 유명한 명언을 남겼습니다. 니체가 신을 죽었다고 말하는 논법 중 하나가, 신이 인간을 동정했다는 겁니다. 신의 본래적 속성은 끊임없는 자기 창조에 있습니다. 그러나 니체가 보기에, 예수(신)는 인간을 동정했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동정한 순간, 인간을 창조한 신은 부모로서의 위신은 드러나지만, 자기 창조적 모습은 드러나지 않습니다. 니체가 보기에 신은 그저 자신의 힘을 과시하였으며, 타자를 지향한 겁니다.🫣 니체의 비판을 우리가 수긍하든 수긍하지 않든, 니체가 이러한 이야기를 한 맥락에 어느 정도는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연민에는 분명 나의 힘을 과시하는 속성도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연민을 받는 당사자가 이를 알아채고 자신을 깔아뭉갠다는 생각을 하게 될 때, 순간적으로 우리는 자존심이 팍 상하며 분노를 터뜨릴 수 있겠죠.🤬 연민이 분명 타인에 대한 "평가"가 들어간 건 맞습니다. 그러나 모든 연민을 자신의 힘의 과시라는 것으로 환원해버린다면, 제가 도덕적 감정이라고 주장한 의미가 없겠죠. 평가는 평가대로 두면서 내가 갖고 있는 우월함을 줄이는 방법은 어떨까요?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마사 누스바움의 <감정의 격동>이라는 책에 어느 정도 기반을 하고 있습니다.😊 Pity를 먼저 이야기해보죠. 이 단어 역시 연민이나 동정심을 이야기하지만, Pity는 아까 니체의 사례처럼 시혜적 의미에 가깝습니다. 저 사람이 불쌍하고, 나는 그런 상황이 아니기에, 내가 도와준다는 정치적 함의가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게 우리가 연민을 느끼는 시초적인 감정이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입니다.🤔 이 Pity에서 출발하는 두 가지 방향성을 이야기해볼까해요. 1) Pity -> Empathy -> Sympathy 애덤스미스가 <도덕 감정론>에서는 Sympathy를 주로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Pity에서 Empathy(감정이입)을 통해 Sympathy(동정)로 가는 거죠. 이때 Sympathy는 관찰자와 행위자가 일치를 이야기하는 걸로 보입니다. "나"와 "타인"이 구분이 되지 않는 거죠. 근대에서는 Sympathy를 통해 "우리는 모두 하나다!"라는 요소를 찾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이는 전체주의로 흘러갈 우려가 있어보이긴 합니다.😮 2) Pity -> Compassion 마사 누스바움이 이야기하고 싶은 게 이 "Compassion"인 것 같습니다. Compassion은 말그대로 "충분히 이해해!"라는 인지적 평가의 형태로 받아들이는 겁니다. 더 이상 Sympathy처럼 관찰자와 행위자가 같아질 필요는 없죠. 이때 Compassion은 그저 "무엇이 행복이고 불행인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해의 관점에서의 인지적 평가를 Compassion이라고 누스바움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로 보입니다. 이 인지적 평가가 내러티브의 형태로 사람들의 감정을 순화하고 사람들 사이에서 풍성한 논의가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약자와 피해자, 희생자들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해 볼 수 있겠죠. (제가 지난 번에 문학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한 것도 이 맥락이기도 합니다.👋) 누스바움이 말한 연민(Compassion)은 어떤가요?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로는 "공감"에도 가까워보이기도 합니다. 다만, 이 정도의 연민은 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드시지 않으시나요?😮 여러분들이 알다시피 대한민국 사회에는 연민과 혐오가 공존해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만약에 연민(공감)능력이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요? 공감이 사라지면, 혐오와 증오의 감정이 이를 뒤덮지 않을까요?🤨 혐오는 타인을 배제합니다. 직설적으로 이야기한다면, 혐오는 나와 타인을 구분하고 분리시키면서, 더 이상 사유하기를 포기한다고 선언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저는 봅니다.🫥 실제적으로 우리가 이를 보고 있지 않을까요? 요즘 사람들 대다수가 사형제를 찬성하고, 촉법소년 처벌에 찬성하는 그런 현상들이 혐오에 일정 부분 기반해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그 범죄자를 희생자, 약자로 받아들이고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는 요소는 사라지게 되는 건 아닌지요? 그리고 반대로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서 우리가 우연히 그 지탄을 받는 대상에 처한다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