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모엘입니다! 제가 여러분들한테 피드백을 한다고 했는데, 다 날아가 버려서 다시 급하게 작성했네요. 뭔가 다시 답글을 작성하면서 꼭 했으면 하는 이야기를 빼먹기도 하고, 조금 어색한 문장도 있을 텐데..!🥲 혹시 제가 오해를 한 부분이 있었거나 저한테 또 궁금한 점 있다면, 다시 댓글 달아주시면 성심성의껏 답변 달아드리도록 할게요!😊 그리고 사르트르의 사상에 대해 설명하기 이전에, 17명의 뉴니커분들의 답글 달아주신 것에 먼저 감사를 표현하고 싶어요. 그리고 여러분들께서 이야기해주신 부분들이 어쩌면 인간관계의 전부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머진 구체적인 사례들을 비교해봐야겠지만서도요. 이렇게 추상화를 조금씩 시켜가는 것도 생각의 훈련이라고 보고 있어요. 다만, 개인적인 경험들도 함께 써보는 것도 권장 드리고 있어요. 왜냐하면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는 "나"가 온전히 드러나기 때문이죠.🙌 네, 이번 주제는 장폴 사르트르가 이야기한 "타인은 지옥이다."였어요. 사실 이 문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르트르의 사상을 조금 알 필요가 있습니다.🤔 사르트르의 다른 유명한 명언에는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르트르는 헤겔의 즉자와 대자의 개념을 여기서 가져오죠. 어려운 개념일 수도 있는데, 제가 "타인은 지옥이다."를 설명하기 위해 최소한으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볼게요.🤨 인간은 대자적 존재입니다. 여기서 대자적 존재를 저는 실존이 본질(목적)에 앞서는 존재라고 설명하고 싶어요. 여러분들은 인간의 본질(목적)을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사르트르에게 있어서 인간의 본질은 없습니다. 그저 인간은 세계 속에 내던져져 있을 뿐이죠. 그저 인간은 실존하고 있는 겁니다. 즉 내가 현재 존재하고 있다는 것(실존)이 인간의 본질(목적)보다 먼저라는 것입니다. 사르트르는 늘 실존이 먼저지만, 목적은 늘 인간이 만들어간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기에 목적은 상황에 따라 가변적일 겁니다.😛 반대로 사물은 즉자적 존재입니다. 여기서 즉자적 존재란 저는 본질(목적)이 실존에 앞서는 존재라고 설명하고 싶어요. 책상은 목적이 뭘까요? 우리가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이 목적인 거죠. 의자는 목적이 뭘까요? 우리가 앉아서 쉬는 것이 목적인 거죠. 책상은 우리가 공부를 하고 책을 읽기 위해 만들어졌고, 의자는 우리가 앉기 위해 만들어졌어요. 즉 본질(목적)이 실존에 앞서고 있죠. 인간과는 전혀 다르죠!🤨 그런 대자적 존재인 인간이, 대자적 존재이어야 하는 인간을 즉자적 존재로 취급하는 것을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타인을 그때그때 마치 사물인 것마냥 즉각적으로 규정합니다.🫢 예를 들어서, 어느 식당에서 한 사람이 점장에게 난동을 부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상황 속에서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못된 사람으로써 그 사람을 빠르게 규정하기도 합니다. 근데 우리는 그 사람의 상황이라거나 사정을 고려한 걸까요? 그 사람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생각을 한 걸까요? 그저 그 사람의 본질(목적)을 무례한 사람으로 규정해버리는 거 아닐까요? 마치 연필깎이가 연필을 깎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요.. 네. 저번 주에 언급했던 "악의 평범성"과 유사한 부분이 여기에 이미 있는 거죠. 우리는 그렇게 타인을 순간적으로 즉자적 존재, 즉 사물처럼 규정하면서 살아가는 겁니다. 그리고 사실, 내가 누군가를 규정하고 판단하는 건 굉장히 쉬워요. 더 이상 사유를 할 필요가 없으니, 에너지도 더 이상 들지 않죠.🫣 우리는 살아가면서 타인을 규정하고 판단할 수밖에 없을지도 몰라요.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말처럼요. 다만, 내가 타인을 규정한 것 이외의 면이, 그 사람에게는 항상 있다는 점을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람에 대한 판단은 늘 오해를 수반한다는 걸 우리는 기억해야 하겠죠.🙃 더불어 사람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는 것도 지혜이자 윤리적인 거라는 것도 우리가 어느 정도 명심해야 할 부분 같습니다.😌 네, 여기까지입니다. 짧게 설명 드린 것 같은데, 이 정도로 충분히 이 논의가 이해가 되셨나 모르겠네요. 질문 있으면 언제든 주시고, 그러면 다음 주제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