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모엘입니다. 문학의 필요성에 대한 게 이번 주제의 질문이었죠 ㅎㅎ 윤리학, 더 나아가 정치철학을 공부하는 저한테 있어서는, 문학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강조해도 사실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모든 이야기를 다 할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 조금씩 더 이야기를 하겠다고 생각하며 풀어보겠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시(문학)가 역사보다 철학적이다." 어쩌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문학이 역사보다 우월하다라는 뉘앙스를 갖고 말한 것 같긴 해요. 이때 아리스토텔레스의 의도는 문학은 역사보다 보편적이기에 철학적이라고 이야기한 것이었어요.🤔 역사는 과거의 영역이죠. 재미있는 철학적 주제 2편에서 <자유의지 vs 결정론>을 비교할 때, 제가 과거는 결정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한 적 있습니다. 지나간 시간과 역사는 되돌릴 수 없다는 게 그런 뜻이겠죠. 조금 더 확대 해석해보자면 지나간 과거는 "필연적"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문학은 어떠할까요? 이미 인간의 시간성을 초월해있죠. 그러나 꽤나 개연적입니다. 꼭 이런 인간상이 있을 것만 같아요. 그리고 우리 모두 이러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가능성"을 갖고 있죠. 우리가 상상력을 통해서 이야기를 만들고, 한편으로 미래에 나는 그 가능성으로 인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겠죠. 물론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도 미래에 행동의 변화를 낳을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여기서 역사가 그저 과거의 사실만을 열거하는 객관성만을 간직한 걸로 본다면, 작가의 가치관이라거나 삶의 의미, 주제의식 등이 담겨있는 문학보다는 덜하겠죠. 제 개인적인 생각에는 여러분들이 방금 제가 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봐요. 혹시나 들어본 적이 있으시다면 이야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ㅎㅎㅎ🙋 조금만 더 나아가보죠. 정치철학적 접근을 시도해야하거든요.😮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사학>에서 강조한 설득의 3요소는 에토스, 파토스, 로고스입니다. 이는 설득의 중요도 순서예요. 에토스는 발화자의 인품을 이야기하니 차치하고, 파토스는 감성이나 감정적인 걸 의미하고 로고스는 이성이나 논리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보다는 감정에 의한 호소를 중시한 거죠. 어째 문학이랑 연결될 수 있는 요소가 보이지 않나요?😵 사실 현재와 같은 민주주의 시대에서는 로고스가 잘 작동하지 않습니다. 제가 대한민국 커뮤니티를 자주 예로 들곤 하지만, "누칼협?" "알빠노?" 같은 말들은 아무리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말해도 소통의 단절만을 낳을 뿐입니다. 엄청나게 위대하고 똑똑한 영웅이 나타나서 논리적으로 이들을 설득하려고 하더라도 불가능하다는 거죠. 반대로 그들의 사적인 경험 속에 파고들어서 감정을 건든다면요?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한다면 설득의 가능성이 분명 여기에 있는 거죠.🥵 다만 아시다시피 문학은 상대방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내가 이야기를 만드는 거니까요. 물론 문학으로도 설득을 할 수는 있을지도 몰라요. 다소 극단적인 낭만주의자들이 감정을 극도로 표출하여 독자들을 설득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근데요? 한편으로 이는 현대 민주주의에서는 반발감을 낳을 수 있습니다. 문학의 예시는 아니지만, 영화 <신과 함께>를 관객들로 하여금 억지로 눈물을 짜내는 영화라고 반발심을 일으켰던 것이 그런 맥락이라고도 좀 보이네요.🫥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문학은 감정을 건드리는 건 맞습니다. 그러나 저자가 특정 방식을 의도하여, 독자가 의도한 방식대로 설득까지 갈 수 있다고 보는 건 너무 과도한 거고 실제로 이루어지기도 어렵다고 봐요.😮‍💨 그러나 만약에 그 문학이 독자로 하여금 감정을 묘하게 바꿔내고, 그 문학 속에서 독자가 주체적으로 새로운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나갈 수만 있다면, 그 독자는 현실에서 전혀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죠. 저는 이 부분에 주목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해석학자라고도 일컫는 폴 리쾨르는 "내러티브(이야기)"에 주목을 했던 것 같습니다. 미메시스 1,2,3 이론이 이와 같은 건데요.. 사실 복잡한 건 거두절미하고.. 내러티브는 일단 현실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그래야 공감대를 낳을 수 있죠. 말그대로 "있음직함(개연성)"이니까요. 그리고 시대상을 반영하면서도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왜냐? 그래야 독자들이 깨달음을 얻겠죠.🫢 예를 들어, 독자가 문학작품을 읽으면서 "어? 이 상황에서 이렇게 행동할 수 있다고?"를 느끼면서 연달아 놀라는 모습을 상상할 수도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런 전혀 다른 이야기가 독자의 기존의 가치를 계속 헤집어놓는다면, 그리고 등장인물의 행동에 의해 어떠한 의미나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 문학은 훌륭한 문학이 되는 거죠. 리쾨르는 그만큼 문학을 하는 작가에게 뭐랄까 사명감이라고 해야할까요? 책임감을 부여를 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