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쩨니 쩨니님 먼저, 댓글 감사합니다.😊 쩨니님은 결정론일 경우의 무의미성, 그리고 미래에 대한 예측불가능성으로 결정론을 거부하는 입장을 취하시는 것 같아요. 확률에 대해 언급하면서 세상이 개연성에 따라 열려있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고요. 동감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결정론의 최고의 단점은 허무주의로 귀결될 수 있는 위험성 같아요. 이미 미래가 결정되어 있고 내가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면, 내가 지금 열심히 사는 것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냐는 거죠. 대표적인 허무주의자로 쇼펜하우어가 있죠. 세상은 그저 결정되어있을 뿐인데, 인간의 욕망은 이를 초월해있죠. 그래서 인간은 끊임없이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금욕적인 삶을 살며 고통에서 해방되는 걸 강조한 게 쇼펜하우어라고 저는 생각해요. 불교와 얼핏 비슷한데, 쇼펜하우어가 불교적인 부분들을 많이 받아들였다고 하죠. 저는 이것에 대해 반대하는 쪽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나의 모든 잠재력을 표출하고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긴 합니다. 직접 온몸으로 다양한 경험들과 맞부딪히면서 모든 감정들을 느껴보는 거죠. 그런 부분들이 니체부터 시작해 실존주의로 이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ㅎㅎ @geni2 지니님 이번에도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해요. 일단 철학이란 답 없는 세계를 파고드는 행위라고 말한 지점이 눈에 띄어요. 제가 공부하고 있는 윤리학과 사회정치철학은 늘 실천이 전제되어 있거든요. 철학자로서의 "관조"는 늘 중요하지만, 관조는 늘 "행위"가 전제되어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용적인 부분에서는, 지니님은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라는 숙명을 전제로 이야기하시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결정된 삶 속에서 인간은 자유의지가 있다는 착각을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요. '운명적으로 타고난 세상'이라고 언급하신 걸로 보아,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도 내 자유의지가 아니라는 걸 언급하신 것 같아요.🤨 맞아요. 인간이라는 건 태어날 때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도 모르죠. 그리고 태어난 것도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닐뿐더러, 출생년도, 태어난 곳, 성별, 재능, 외모, 가족, 재력 모두 정해져있죠. 제가 이해한 게 맞다면, 지니님은 우리가 죽을 때까지 발버둥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지점을 강조하고 싶으신 것 같아요. 이에 대해서 동감합니다. 다만 쩨니님이 언급했던 것처럼 그저 허무주의로 귀결되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는 있을 것 같아요.😒 여기서 실존주의를 조금만 더 언급해보고 싶어요. 하이데거는 지니님이 말씀하신 시시콜콜한 고민과 선택들을 "잡담, 애매성, 호기심"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 같아요. 이때 삶의 유한성, 곧 죽음을 나의 사유로 끌어들이게 된다면 자기진정성(본래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본 거죠. 이때 일상성 속에 매몰된 내가 아니라, 진짜 나를 찾아나서는 '결단'을 할 수 있다고 이야기해요. 이때 결단은 나의 직접적인 이해관계(+감각적 쾌락, 기본 욕구, 경향성, 도구적 유용성 등)를 벗어던지고 나의 잠재성을 발휘하는 방향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러한 결단을 꾸준히 할 수 있다면, 어쩌면 모든 게 결정되어 있다는 결정론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도 강한 결정론을 지지한다면, 결정론에서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