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편: 사람은 판단하고 평가하면 안 되는 걸까요 | "인격 모독이야!"
지난 글에 "나도 맞고 너도 맞아."라는 태도를 취하는 상대주의에 대해 비판을 해보았다. 기본적으로 상대주의는 나와 상대방 간의 우위와 우열을 없애는 방식으로 작동하며 강력한 평등주의를 전제하기 때문에 여기서 어떠한 '평가'가 이루어진다는 건 매우 힘들다.
우리는 그런데 바로 이 지점, 사람을 평가하면 안 된다는 지점에 대해서는 공감하기 쉽다.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고 평가하면 안 된다."라는 말은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계속 들어온 말이도 하며 납득이 가는 말이다. 어떤 한 장애인을 보며 "저 사람 참 불쌍한 사람이다."라고 곧바로 판단하고 평가하는 건 그 장애인이 어떤 마음가짐과 태도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전혀 보지 못하고 있는 무례하고 주제 넘은 표현일 것이다.
위 예시처럼 누군가의 속마음이라는 건 보이지 않는 것이기에 내가 감히 어림 잡아 짐작할 수 없는 영역이다. 한편으로 타인 역시 하나의 동등한 인격체로서 존중을 받아야 하는데 내가 어떤 우위의 위치에 서서 평가할 수는 없다. 더 나아가 우리가 그 사람의 삶을 살아본 적 없고 경험해본 적 없기 때문에 함부로 나의 기준과 잣대를 타인에게 들이대서는 안 된다는 맥락과도 연결 된다.
그러면 우리는 사람을 평가하지 않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가? 조금 더 들어가 보자.
평가라는 건 뭔가? 평가(Evaluation)는 판단(Judgment)에서 더 나아가 특정 무언가에 대해 어느 정도 서열을 매기고 순위를 정하는 것과 관련이 된다. 그런 점에서 평가는 모두를 동등하게 대우해야 하는 "평등성"과는 거리가 멀다.
이는 흔히 우리가 중등 교육 혹은 입시 위주의 교육에 대해 비판하는 이유와도 연관이 된다. 다양하고 개성이 넘치는 학생들을 어떠한 일률적인 기준으로 점수를 매겨 순위를 매기는 양적 평가적인 방식은 다분히 폭력적일 수 있다. 나라는 자유로운 주체가 사회가 만들어 낸 기준에 의해 짜맞춰지는 건, 그 평가가 나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지도 못할뿐더러 그다지 윤리적이지 못하다. 어떤 학교의 수준별 수업에서 A반/B반/C반으로 학생들을 성적대로 나누게 하여 수업을 듣게 한다고 했을 때, C반으로 들어가게 된 학생이 자기 자신이 C밖에 안 되는 것으로 생각하여 이를 스스로에 대한 평가로 내면화하게 된다면 그 학생은 자존감 붕괴를 경험함과 동시에 또 다른 잠재력을 발휘하는 것에 스스로 제한을 둘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러한 양적 평가(Quantitative evaluation)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학창 시절부터 시작해 성적, 학벌, 학점, 기업 이름, 성과 등의 양적인 평가에 대해 노출이 되어있다. 그리고 어쩌면 지금의 세상이 결국 돈으로 돌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이기에 그런 방식의 서열은 당연하게 이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 평가"와 "사람(인격)에 대한 평가"가 다르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조금 다른 예시로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중 하나에는 "문화 상대주의"가 있다. 문화 상대주의는 각 문화가 갖고 있는 고유성과 특수성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고 보는 방식이다. 이 관점에 의하면 각 문화의 배경과 맥락은 존중해야 하는 것이기에 각 문화는 상호 동등하게 인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의 역사적, 환경적, 사회적 맥락을 존중하자고 이야기하는 문화 상대주의는 더 나아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훼손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서도 뭐라고 개입하고 지적할 수 없다는 담론도 이미 내포되어 있다. 중국의 전족이라거나 여성 할례 문화에 대해서 우리는 동등한 관점에서 그 문화의 고유성을 인정해 주어야 할까?
우리는 그런 문화들을 보고 인류적 관점에서 그리고 도의적 차원에서 "미개하다."라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미개하다는 말은 평가가 평등을 전제하는 우리에게는 매우 불편할 표현일 수는 있다. 그러나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최우선시할 때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방식의 이러한 폭력적인 전통은 더 큰 희생을 낳게 하기 전에 막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실제로 법(Law)이 작동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 판단(Value judgment) 혹은 질적 평가(Qualitative evaluation)가 필요하다는 것 역시 분명한 부분이다.
위 예시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양적 평가가 그 사람의 인격 그 자체를 평가하는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질적 평가(인류 보편적 가치의 관점에서)는 필요하다.
그렇다면 질적 평가는 한 개인의 '인격'에 대한 평가를 말할 수 있는가? 이 부분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해 보자.
방금의 질적 평가에 대한 예시는 이미 다수를 전제한 전통과 문화를 이야기한 것이기에 평가(집단에 대한 평가)가 쉬운 쪽에 속한다. 그러나 이게 특정 타인의 요소에 대해서 평가(특정 개인에 대한 평가)를 하는 거라면 조금 더 예민해지고 까다로워진다.
그러나 좀 더 솔직해져 보자. 우리는 타인을 (가치) 판단하거나 평가를 하지 않고 사는가? 나에게 좋은 사람, 나에게 친한 사람 등을 무의식적으로 배열하고 그런 사람들을 위주로 더욱 챙겨주려고 하지 않는가? '이상형'이라는 표현도 이러한 내 취향으로 인한 평가가 곧 반영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평가한 사람들 위주로 챙겨주는 걸 "편애"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사람에 대한 판단과 평가 역시 본능에 따라 이루어지는 영역일 것이다. 나에게 안전한 사람인지 위험한 사람인지를 판단하여, 위험한 사람이라고 판단된다면 더 긴장하고 주의를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진화생물학적으로 우리는 그 감각을 활용하여 내 생명을 위협하는 것들을 감지하여 피해왔다. (물론 타인에 대한 판단과 평가를 입으로 내뱉는 거랑 속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또 전혀 다른 맥락이다. 전자는 다소 무례하고 위험할 수 있지만 후자는 분명히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대놓고 말은 안 하지만 타인을 평가하고 있다.
타인에 대한 칭찬 역시 기본적으로 평가를 전제하고 있다. 다만 그 평가가 곧 긍정적인 표현으로 나오기에 일반적으로 거부감이 없게 느껴질 뿐이다. 그러나 현 시대에서는 이런 칭찬도 곧 평가라는 점에서 다소 민감하게 작동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 보인다. 내가 누군가에게 예쁘다고 말할 때 그 누군가는 기분이 나빠지면서 지금 나를 얼평(얼굴 평가)한 거냐고 화를 낼 가능성도 옳고 그름을 떠나 충분히 있다.
글의 서두에서도 언급했듯이 평가라는 것을 (평가의 내용을 입 밖으로 내어 상대에게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걸) 어떤 수직적인 위치에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만 하는 것만을 전제한다면 지금과 같은 평등주의에서 우리가 누군가를 판단하고 평가하는 표현을 사용하는 건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5편: 평등을 말하기 이전에 알아야 하는 것 ㅣ 민주정을 혐오한 플라톤에서 언급했듯이 이런 문화에서는 타인에 대한 연민조차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어떠한 평가도 이루어지지 않는 무차별적 평등 사회를 우리가 꿈꾼다면 거기에 비판(Criticism)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타인의 피드백을 통한 개선과 성장이 이루어질 수 있는가? 이 영역은 우리가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마련해야 한다.
다시 최초의 질문으로 돌아와보자. 질적 평가는 인격에 대한 평가를 말하는가? 분명, 누군가의 어떤 상습적인 범법 행위와 관련 짓는다면 이 영역은 인격에 대한 평가를 포괄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질적 평가가 곧 인격에 대한 평가는 아닐 것이다. 질적 평가 역시 행위 등의 특정 요소에 한정하여 평가하는 것이지, 그것을 그 사람의 인격에 대한 평가로 환원시키는 건 말도 안 된다.
어쩌면 우리가 타인에게 (특히 공적으로) 평가 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다. 내가 말하고 싶은 주관적인 생각들이 타인에게 틀렸다고 평가를 받을까봐 자신의 생각을 공개적으로 꺼내는 것을 어려워하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 비판과 평가를 내 안에서 확대해석하여 나라는 인격체에 대한 공격과 모욕으로 받아들였을 때 이 문제는 매우 심각해질 수 있다.
평가는 일종의 고정불변한 절대적인 척도를 통해서 누군가를 낙인 찍는 것이 아니다. 내가 어떤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면 1) 물론 고통스럽지만 좋은 부분들을 차용하고 받아들여 개선하는 방식도 있고, 2) 고작 그 평가의 잣대만으로 나를 담아낼 수 없다면서 거부하고 또 다른 자기 자신을 증명하는 방식도 있다. 우리는 고정불변한 존재가 아니 언제든지 변화할 수 있는 유동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평가 역시 사회적 기준 중의 일부로 나온 것이지, 그걸 나의 전부인 것처럼 해석하는 것은 매우 곤란할 것이다. 사회가 곧 정답은 아니다.
이 평가를 받는 과정에서 물론 오해라는 것이 수반될 수도 있다. 그리고 오해를 해명하는데서 굉장히 피로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신이라고 타인을 오해하는 일이 없을까? 자기확신이 있는 사람은 이런 오해도 그렇고 사회적 평가도 그렇고 이런 것들을 전제하고 받아들이면서도 동시에 그 이상을 보여줄 수 있는 삶을 개척해내는 인간상을 말할 것이다.
타인에 대해 어떠한 비판도 없이 그저 존중한다고만 말하고 그냥 지나치는 것을, 우리가 타인에 대해서 더 나아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무책임하다고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좀 더 다르게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인간이 타인(or 타인의 행위)에 대해 곧 판단과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면, 우리는 되도록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는 부분에 대해 비판하고 평가함으로써, 더 새로운 나를, 더 새로운 우리를, 나아가 더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