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편: 나도 맞고 너도 맞아 -> 상대주의 | 정치인은 왜 싸울까

19편: 나도 맞고 너도 맞아 -> 상대주의 | 정치인은 왜 싸울까

모엘
@dorimo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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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 "취존(취향존중)할게."라는 표현은 어쩌면 진정한 소통을 방해하고 갈등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해보았다.

이런 방식의 화법은 어떻게 보면 '모두의 생각과 의견이 옳다'와 같이 우리에게 아무렇지 않게 통용되고 있는 의식과도 관련이 있다. "나도 맞고 너도 맞아."라는 발화는 분명 모든 사람들 각각 서로 다른 상황과 환경에 놓여있고, 가치 기준이 다르다는 걸 인정하는 표현이다. 어떤 관점에서는 이것이 맞고, 저런 관점에서는 저것이 맞다는 걸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는 각자에게 정답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더 나아가 이것은 인생에는 정해진 정답은 없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는 이것을 상대주의(Relativism)라고 이야기한다. 상대주의는 일반적으로 고정불변한 절대적인 진리가 없다는 것을 전제한다. 얼핏 보면 이런 주장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 테제가 담긴 문제를 찾아보자.

사람과 사람 간의 대화에 있어서 "나도 맞고(옳고) 너도 맞아(옳아)."라고 퉁치고 넘어가는 방식은 지난 글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상대를 깊이 이해하려고 하는 진정한 소통으로 나아가지 못할 수 있다. 이런 표현 자체가 처음부터 모종의 갈등을 회피하고자, 더 나아가 타인에게 간섭하거나 해를 끼치지 않고자 하는 모종의 방어기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질문을 던져보자.


만약에 타인과 이해관계의 갈등을 말할 때도 우리는 이 태도를 유지할 수 있는가?

서로 간에 입장 차가 팽팽한 상황일 때, "나도 맞고 너도 맞아."라는 상대주의적 태도는 여기서 어떠한 해결책도 제시하지 못한다. 이해관계의 갈등을 확장해보면 이는 곧 정치적 문제가 될 것이고 그것은 곧 한정된 선택지 안에서 결단(Resolution)이 필요하다는 걸 전제한다. 공동체에 있어서, 정치적 선택이라는 건 모종의 폭력적인 성격을 띤다. 모두에게 좋은 건 불가능하니 누군가는 희생해야 하는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런데 모두의 입장이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동등하다면 카를 슈미트가 자유주의에 대해 비판한 것처럼, 책임을 서로 회피하여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방식의 "영원한 대화"만이 이어질 뿐이다.

그렇기에 "정치인들에게 상대주의적 태도를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명확해진다. 그들은 다양한 집단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사람들이자, 논쟁과 토론을 통해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합의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정치인들이 죽자고 서로 덤벼들며 싸우는 이유는 이미 여기에 갈등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이상적인 정치는 서로 간에 단순히 이해관계 내에서 합의하는 것이 아닌,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판단과 행위까지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 또한 이미 대립과 논쟁이 내재돼 있다.)

정치인들 이야기는 우리와는 너무 먼 이야기 아니냐고 누군가는 물을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부모와 왜 싸울까? 부모님은 기성세대적 관점에서 그들에게 좋았던 것들을 우리에게 조언해주지만, 우리는 그들에게 좋은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좋은 것들을 찾아나가고 싶어한다. 여기에 이미 가치(부모vs나)의 대립과 충돌이 예정되어 있다. 여기서 부모님도 맞고 나도 맞다는 식의 나이브한 상대주의로 갈등을 종결시키는 건 불가능하다.

그리고 우리도 결국은 사회생활과 집단생활을 필연적으로 하게 된다. 공동의 지향점과 선택을 모색하는 과정 속에서 모두에게 좋을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건 정말로 어렵고, 가장 논쟁적인 것은 이러한 부분들이다.

그렇다. 선택(Choice)과 행위(Action)가 전제되어 있다면 상대주의는 기능할 수가 없다. 역설적으로 모두가 동등하고 모두에게 좋은 상대주의 자체가 이상적인 것일지도 모르게 되는 것이다.


또한 상대주의의 예전의 글 5편: 평등을 말하기 이전에 알아야 하는 것 ㅣ 민주정을 혐오한 플라톤에서 역시 문제점을 분명하게 지적하고 있다. 상대주의라는 것이 평등 위에서 성립한다면 그 안에는 도덕과 윤리의 척도가 붕괴되기 쉽다. 다음의 케이스를 보자.

상대주의라는 건 본질적으로 1)과 2)를 "나도 맞고 너도 맞다."라는 도식 앞에서 동등하게 만들어 버린다. 물론 위 케이스에는 특정 행위만 가져다놓았고 구체적인 맥락과 내러티브가 없기 때문에, 1)의 케이스 역시 열심히 일하다가 회복하기 위해서 잠깐 충전하는 시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로지 1)만 일삼는 사람의 행위가 2)를 하는 사람의 행위와 동등하다는 건 우리는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1)은 본인의 즉각적인 쾌락만을 만족시키는 행위고 2)는 타인의 행복마저 증진하려고 하는 이타적이고 도덕적인 행위라면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 위계의 본질을 흐리고 상대주의를 지지하도록 만드는 2가지의 흐름들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2)의 케이스의 사람들의 위선을 비판하는 방식이다. 실제로 특정 국제구호단체에서 벌어지는 비리나 성착취 등의 사건은 영리 추구가 아닌, 적어도 이타적 행위 그 자체가 본질인 국제구호단체에서만큼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만약에 우리가 이러한 사건들로 인해 이타적인 행위를 추구하려는 사람들을 모두 싸잡아 묶어 그들에게 "위선자"라는 프레임을 걸게 된다면, 여기에는 어떠한 도덕도 성립하기 어렵다.

두 번째는 과학주의(과학지상주의)가 작동하는 방식과 관련 된다. 자연과학적으로 접근하면 인간은 동물과 전혀 다름이 없다. 인간 역시 이기적인 동물이라는 테제는 현재 우리에게 자연스럽다. 2)의 케이스의 이타적인 행위조차도 결국은 자신의 뿌듯함과 보람을 얻기 위한, 곧,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심으로 환원이 되어 버리면 1)과 2)는 동등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의 민주주의 상황에서의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평등의식이 만연화된 가운데, 이러한 과학주의와 강하게 결합을 해버리니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사리사욕만을 추구하고 이기적이게만 행동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것이다.

첫 번째와 두 번째가 강하게 작동할 때 도덕적인 행위, 윤리적인 행위, 고귀한 행위를 하는 영웅은 성립하기 어렵다. 그들의 숭고함이 평등함이라는 이름으로 질적으로 격하되는 것이다. 어쩌면 "나도 맞고 너도 맞아"라는 표현을 통해 우리는 자기 자신의 현상황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만약에 그렇다면 여기에도 역시 자기기만(Bad-faith)이 들어와있다.


도덕(Moral)과 윤리(Ethics)를 구분할 때 윤리라는 말은 조금 더 자기진정성에 입각한, 자기진실성에 입각한 태도적인 부분이 조금 더 들어와있다. 상대주의를 아주 긍정적인 의미로 활용한다면 모두가 자신이나 타인을 기만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있어서 늘 진실하고자 했을 때 모두가 동등하다는 관점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진실성만으로는 아직 부족하다. 그 진실성을 바탕으로 한 대화를 통해 더 합리적이고 타당한 방식의 관점을 이끌어내야 한다. 그리고 그 관점이 집단적 선택이 되어야 하고 공동체적 선택이 되어야 하며, 정치적 선택이 되어야 한다.

"나도 맞고 너도 맞아"라는 방식이 분명 서로 취향을 알아가는 정도의 형태로는 쓰일 수 있다. 그 사람의 취미를 알아가기 위한 단계라면 이러한 방식은 적절할 것이다.

그러나 타인과 관계를 지속하여 함께하는 과정 속에서 공동의 선택을 하는 논의까지 들어오려면 의견 대립이나 충돌은 필요하다. 여기에 "나도 맞고 너도 맞아."라는 상대주의적인 방식은 함께함에 있어서의 진실한 소통이 아니라, 그저 책임을 회피하고 기만하는 요소로 환원될 것이다.

공동의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조금 더 옳은지에 대한 숙고와 논쟁이 필요하고 결단이 필요할 것이다. 이 과정 속에서 서로 간에 지성적인 공감이 함께하여 조금 더 포괄적인 관점을 끌어내는 소통(이해관계를 초월할 수 있는, 공동의 의미를 드러낼 수 있는)이 이루어진다면 이러한 선택에는 누군가가 피를 흘리거나 희생할 확률이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나아가기 위해서 상대주의적 태도보다는, 그래도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방안(선택)을 도출해내기 위한 소통(Communication)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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