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편: 누가 나한테 이렇게 해달라고 했어? | 감수성과 공감능력의 차이
위의 갈등 상황이 발생한 이유는 감수성의 문제일까, 공감능력의 문제일까? 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이 둘의 차이를 알아보자.
감수성과 공감능력은 다르다. 감수성이 풍부한 것과 공감능력이 뛰어난 건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감수성은 일반적으로 자기지향적(자기중심적)이고 공감능력은 타자지향적이다. 그렇다고 감수성이 곧바로 이기적이고 공감이 이타적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보자.
감수성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감성에 조금 더 가깝다. 어떤 동일한 외부 자극에 대해서 누군가는 별로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누군가는 그것에 대해서 매우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그 차이는 분명 무의식적인 부분들과도 당연히 관련이 깊겠지만, 이 핵심적인 차이를 만드는 것은 결국은 "가치 기준(가치관)"이다. 사람들마다 무엇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지는 모두 다르다. 그래서 좋아하는 것 역시 다르고 취향도 역시 다르다. 나와 강한 관련성을 갖는 것이 공격을 받게 되면 분노하게 되고, 나와 아무 연관성이 없으면 무관심하거나 아무렇지 않게 느끼는 것도 여전히 감수성의 영역이 되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내 몸이 감정적으로 반응한다면, 그 무의식에는 나와 특정 대상과 강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감수성은 그렇기에 나의 "독특성"을 형성한다. 타인과 나를 구분할 수 있는 개성과 개별성이 된다. 그렇게 나는 나만의 소중한 것들을 조금씩 키워나가고 싶어하고, 그 기준으로 가치판단을 하며 나에게 좋은 것들을 계속 해나가고 싶어한다.
이제 이 감수성이 타인에게 확장되면 그것이 곧 공감능력이 "될 수 있다." (*공감능력이라고 곧바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능력이 "될 수 있다"라고 표현한 부분에 주목해 보자.)
여기서 작동 원리는 굉장히 단순하다. 나에게 좋고 나쁜 것들이 있으니까, 나에게 좋은 것들이 타인에게도 좋지 않을까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여기에는 상상력과 공감능력이 필요하다. 만약에 나에게 좋은 것이 결과적으로 타인에게도 좋다면 그것은 공감이 성공한 거고, 이것은 곧 공동선(Common Good)이 될 수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공통분모는 서로 간에 감정을 교류하고 이야기하고 함께 행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도덕의 기반이 된다.
다만, 나에게 좋은 것이 타인에게는 그다지 좋지 않은 것(혹은 나쁜 것)이 되면 어떨까? 이건 공감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가 된다. 아래 예시를 보자.
위 사례들에서 A는 B에 대한 공감에 실패했다. 그 이유는 A가 자신의 감수성에만 취했기 때문이다. 즉, A는 B에 대한 공감보다는 자신의 감수성을 훨씬 우선순위로 두었으며, 타인도 나와 동일할 거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감수성을 상대에게 곧바로 투사한 것이다.
글의 서두에 언급한 위의 예시도 이와 동일한 관점으로 볼 수 있다. A는 자신의 감수성에 좀 더 우선순위를 두었기에 B를 제대로 공감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결과적으로 A는 B에 공감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MBTI의 관점에서 바라봐 보자. 우리가 MBTI를 이야기할 때 F는 공감을 잘한다고 이야기하고 T는 공감을 잘 못한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A를 MBTI F로 두고, B를 MBTI T로 둘 수 있다. 이때 F는 T에게 공감을 했다고 볼 수 있는가?
진짜 F가 공감을 잘한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T에게도 공감을 해야 할 것이다.
여기까지 논의를 따라왔을 때, 완전한 공감이 가능하려면 나의 감수성이라는 테두리에서 벗어난 공감도 가능해야 한다. 내가 타인과 주파수를 맞추기 위해서는 나의 감수성을 넘어서서, 타인의 감수성에 공감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당연히 타인의 감수성(관점, 가치관)에 온전히 공감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나는 나이고 나의 삶을 살아왔지, 결코 타인이 될 순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누군가에게 100% 공감 받고 이해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듯 말이다.
더 나아가, 만약에 특정 타인에게 감정 이입을 하고 그 사람의 감정에 내 마음을 정확히 일치시키는 공감이 실제로 가능하더라도 이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형태가 될 수 있다. 이것은 마치 메소드 연기와도 같다. 자기 자신의 주관, 관점, 가치관 등이 사라지고 타인,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무지성 공감"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도 그저 타인의 감정에 그대로 맞춰주기 때문이 아닌가? 여기에 자기 진실성이라고는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온건한 공감이란 무엇일까? 나의 감수성과 타인의 감수성이 모순되고 충돌할지라도 이를 잘 연결하여 결합해내는 방식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이는 나의 감수성을 타인에게 들이밀어 타인의 감수성을 무(無)화시키는 형태는 아닐 것이다. 또한, 타인의 감수성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며 자기 자신을 무화시키는 형태 또한 아닐 것이다.
온건한 공감은 오히려 나의 감수성에 타인의 감수성을 통합하고 종합하는 지성적인 작용이 수반되는 것을 말할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타인과 교류할 수 있다. 나의 감수성, 더 나아가 나의 관점과 가치관을 타자와 만나면서 지속적으로 연결하며 나의 세계를 확장해 나갈 수 있다. 이 지점에서 감수성과 공감능력은 그저 부딪히는 것이 아니다. 감수성과 공감능력은 서로가 상호작용을 하며 함께 키워갈 수 있는 영역이 되는 것이다.
만약에 위 사례의 A가 이러한 건전한 방식의 공감을 깨닫게 된다면(A가 지금보다 더 성숙해진 상태를 전제한다면) A는 다음과 같은 태도를 취할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