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편: 인간은 모두 모순적이다? | 진실성은 어떻게 가능한가
작성자 모엘
모엘의 단상
13편: 인간은 모두 모순적이다? | 진실성은 어떻게 가능한가
지난 글에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의미에서의 선과 악은 존재하지 않고, 선과 악은 시대적·문화적 관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개념이라는 걸 이야기했다. 더 나아가 모든 인간에게 선함과 악함이 공존하며, 아무리 선한 선택일지라도 인간의 모든 선택은 불완전하기에(의도와 다르게 흘러갈 수 있기에) 항시 선과 악이 개입될 수 있다는 부분을 이야기했다.
그런 지점에서 보면 인간은 모두 모순적일 수 있다. 내가 나의 내면 심리를 있는 그대로 기술하면 모순이 일면 없어 보일지라도, 타인의 관찰자 시점을 전제한다면(누군가가 내가 내린 선택만을 보게 된다면) 일관성을 찾아보기 다소 힘든 것이다.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정확히 이 지점일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조금 더 다루도록 하자.)
조금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해보자. 인간은 왜 모순적일까? 인간이 불완전하기 때문은 아닐까?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관점을 전제했을 때 가장 모순적일 수 있는 사람을 나는 종교인이라고 말하고 싶다. 특히 기독교인은 사랑과 용서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면서 살아간다. 그들이 믿고 있는 기독교의 교리에 따른다면 사랑하기 싫은 사람도 사랑해야 하며,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용서해야 한다. 여기서 모순이 가장 크게 발생한다. 내 내면의 욕망은 그를 미워하거나 처절하게 복수하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내가 믿고 있는 신앙은 그를 사랑하고 용서하라고 말한다. 그런 계율적 삶이 종교인의 삶에 들어와있다면 이미 종교인들은 모순적인 상황에 처해 있으며, 남들이 보지 못하는 곳에서 악행을 저지를 수 있고(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때로는 고해성사를 하는 과정을 통해 이 모순을 드러내고 신에게 용서를 받으면서 해결을 하려고 한다.
종교인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역시 모순적일 수 있다. 나 또한, 내가 합리적으로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타인뿐만 아니라 나 또한 온전히 이해할 수조차 없는 엉뚱한 선택을 하기도 하며, 기분에 따라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는 변덕스러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여기에 스스로의 상반되는 생각들에 휩쓸려 내적 갈등을 하다가 올곧지 못한 선택을 하기도 하고, 자신이 분명 입 밖으로 내뱉었는데도 말한 그대로 행위하지 못한 것도 포함된다. 마음이 진정으로 내키지도 않는데도 불구하고 타인, 혹은 공동체가 요구하는 것을 따라서 행동하는 것도 누군가가 보기에는 모순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종교인들이 모순적인 이유는 인간이 불완전하고 나약하기 때문으로 생각할 수 있다. 내가 어떠한 신앙을 믿고 지키려하더라도 외적인 상황에 얼마든지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확장하여 우리의 일상적인 모습에서마저도 이렇게 모순적인 부분들을 찾아볼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의 욕망이 워낙 다양한 층위에서 매우 복합적으로 작동하여 때로는 충돌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아가 인간은 자기 자신조차 잘 알지 못하고 자기 내면에 깊게 자리하고 있는 무의식을 완전히 이해하기 힘들다. 우리가 종교인만큼의 굳센 신념과 신앙이 없다면 더더욱 외적 조건에 의해 휘둘리기 쉬울 것이다. 그리고 내가 정말 믿고 확신하고 했던 것들이 결과적으로 배신을 당해서, 홧김에, 나답지 않게, 충동적인 행위를 하는 것도 이런 모순을 만들 것이다. 또한, 인간은 과거-현재-미래의 시간선상에서 계속 변화하는 존재라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 해당된다.
만약에 모든 인간들이 이처럼 모순적이라면 지난 글에 이야기 한 진실성은 어떻게 가능할까? 여기서 선과 악을 새로운 지평에서 다시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 핵심은 "내가 전혀 모순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과 "내가 모순적일 수 있다고 인정하는 사람"으로 구분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자신이 전혀 모순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마치 자신이 완벽하다고 말하는 사람과 같을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의 발화에는 정직함이라거나 겸손함보다는 자기기만적인 요소가 숨어있다. 그것이 자신이 언제든지 과오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로 흐르게 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뻔뻔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자신이 모순적일 수 있다고 인정하는 사람, 더 나아가 자신이 언제든지 과오를 저지를 수 있고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을 타인 앞에서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을, 우리는 진실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나의 모순적인 부분을 이미 인정하고 반성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그 사람은 분명 전자의 경우보다는 훨씬 믿음직스러울 것이다. 우리는 그런 사람에게 조금 더 마음이 간다. 더 나아가 내 안의 모순을 모두 인정한 상태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가 정말로 할 수 있고 하고 싶다는 확신을 이야기한다면 그것을 우리가 진정성이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새로운 의미에서의 선함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분명, 우리는 시간 속에서 살아가기에 미래에는 나의 진실한 부분이 바뀔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내가 진실하다고 말하는 것과 미래에 내가 진실하다고 말하는 것은 또 다를 수 있어 그게 또 모순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미래에는 미래의 변화할 그에게 맡기고, 적어도 현재적 시점에서 진정성 있는 이야기를 하는 그 사람을 믿어주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일 것이다. 우리는 현재의 대화 속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모순이라는 건 나쁜 것도 잘못된 것도 아니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누구나 모순적일 수 있고 때로는 나약할 수 있다. 이러한 나약함을 인정하는 것은 곧 다른 사람의 나약함 역시 인정할 수 있기에 타인과 조금 더 진실된 관점에서 만날 수 있는 하나의 새로운 조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모순이 완전히 없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자기 자신의 모순을 괴롭다고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늘 직시하려는 삶이 조금 더 윤리적일 것이다. 분명, 현재의 모순을 해결한다 하더라도 또 다른 모순이 내 삶에 파고들 것이다. 모순을 끊임없이 대면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같은 모순을 반복하지 않는 삶의 태도가 훨씬 더 진실할 것이다. 그게 나답게 사는 방법이자, 스스로에게 진실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