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편: 뻔뻔함을 솔직함으로 착각하는 사람들ㅣ 인터넷 커뮤니티의 문제
작성자 모엘
모엘의 단상
11편: 뻔뻔함을 솔직함으로 착각하는 사람들ㅣ 인터넷 커뮤니티의 문제
지난 글에 자기표현을 하지 않는 현대인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았다. 누군가는 인터넷이 자기표현의 통로가 되지 않냐고 문제 제기를 할지도 모른다.
대표적으로, 가장 먼저 SNS를 생각해볼 수 있다. 나의 화려한 외모를 뽐내고, 내가 먹었던 맛있는 음식을 자랑하고, 내가 갔던 멋진 여행지를 소개하는 것들이 자기표현의 일부일 수 있겠다. 다만 여기에 자기 자신의 섬세한 독특성과 개성이 담겨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그저 남들이 좋다고 멋지다고 여기는 것들을 흉내내며 사람들의 좋은 반응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과시하고 연출하는 건 아닐까? 여기엔 내가 어떤 생각(Thought)을 하고 있는지는 중요하지가 않다. 그저 타인들의 눈에, 시각적으로 좋아 '보이는' 것만을 업로드하면 된다. 그리고 여기에 이미 "자기기만"이 들어와있다.
그러면 인터넷 커뮤니티는 어떤가? 인터넷 커뮤니티는 기본적으로 익명성을 기반으로 하기에 우리가 조금 더 솔직하게 자기표현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우리가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동시에 인터넷 실명제를 거부하는 것도 이것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는 현실에서는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하지 못했던 말들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풀어내기도 한다. 어쩌면 현실에서는 도덕적으로 규칙들을 지키면서 살다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나에게 쌓인 울분들을 표출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쌓여있는 혐오는 이런 것들에 대한 누적일 수 있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인터넷 커뮤니티에 방금 새롭게 입성한 A가 있다. A는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순수한 의도로 게시판에 업로드하고 사람들의 반응을 기대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A는 수많은 조롱성의 악성 댓글들로 인해 상처를 입게 된다. 이에 따라 A는 이 커뮤니티가 악플을 달아도 되는 공간이라는 걸 납득함과 동시에, 내가 현실에서 받은 스트레스들을 또 다른 악플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표출한다. 그렇게 커뮤니티의 혐오 문화는 하나의 순환을 그린다.
인터넷 커뮤니티는 분명, 익명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솔직"할지도 모른다.
현실에서 때로 우리는 어떤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마치 '그 상황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회피하곤 한다. 이는 더 큰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게 하기 위한 모종의 전략일 수 있다. 우선 여기에는 어떠한 자기표현도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에 이것을 나에게 처한 상황을 직시하지 않고 외면하고 회피한 것으로 본다면 오히려 자기기만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불리한 상황을 회피하지 않고, 순간적으로 드는 생각들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말할 수 있는 조건이 주어진다. 나는 얼마든지 나의 힘든 것들과 스트레스들을 분출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정확히 이러한 자기표현을 "솔직하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힘듦과 스트레스가 A의 일화처럼 전혀 엉뚱한 곳으로 불똥이 튀게 되는 것이다.
여기엔 연예인들에 대한 악플도 해당된다. 개개인의 누적된 스트레스들이 악플화되어 애꿎은 연예인들이 그 공격들을 온몸으로 받고 있다. 지난 글 7편: 도덕의 붕괴+강력한 도덕주의=현대 사회?ㅣ수치심이 혐오가 된다에 토대를 둘 때, 자신의 자존감 붕괴로 인한 사회적으로부터의 수치심을 타인에게 전가하여 혐오로 나타내는 것이다.
인터넷 뉴스의 연예 파트는 졸지에 댓글들을 못 달도록 막아버렸다. 그리고 지금도 이러한 악질적인 전통은 변함이 없다. 연예인뿐만 아니라 수많은 인플루언서들, 정치인들, 시사·경제 뉴스를 논하는 커뮤니티에는 온갖 악플들이 하나의 문화처럼 형성되어 있다.
더 나아가 인터넷 커뮤니티는 다수의 의견 속에 "숨기"도 쉽다. 위에 언급했듯이 인터넷 커뮤니티 안에서의 감정은 특정 대상을 낙인 찍어버리는 형태로 이어지기 쉽다. 그리고 이러한 낙인 속 혐오 감정은 익명 커뮤니티 집단 속에 늘 표상화되어 있고 이러한 문화가 커뮤니티 분위기 안에 고착화되어 있다. 이때 내가 특정 대상에 대해 남들과는 다른 어떤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집단 속에 이미 표상화된 다수의 감정에 의해 내 감정은 사라지게 되기 쉽다. 이에 자기 자신은 표현되지 못하고 억눌리게 된다. 나의 이러한 독특하고 특별한 의견이 그 커뮤니티 내의 여론이 아니라는 것이 두렵고, 사람들에게 공격을 받는 게 두려워 입을 꾹 닫게 되는 것이다. 알렉시 드 토크빌이 이야기했던 것처럼, 유별난 의견을 내는 사람들을 아래로 깎아내리며 표준에 맞추길 강요하는 '천박한 평등에 대한 열정'도 이러한 인터넷 커뮤니티 문화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제 생각해보자. 우리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어떤 필터도 끼지 않고, 아주 솔직하게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있는가? 혹시 그것이 특정 자극에 대해서 그저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방식의 1차원적인, 동물적인 표현은 아닌가?
어쩌면 자기 자신은 마치 깨끗하고 문제가 없는 것처럼 스스로를 숨기면서, 동시에 타인을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폄하하는 "뻔뻔함"을 "솔직함"으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가? 나는 내가 솔직하게 말한다고 생각하지만 거기에도 역시 이미 자기기만이 강하게 들어와있진 않는가?
어쩌면 인터넷 실명제를 실시하더라도 이 인터넷 커뮤니티의 고질적인 혐오 문화는 해소되기 어려워보인다. 이미 현실에서는 예의와 규칙을 지켜왔고 그 속에서 안 좋은 것들을 인터넷 커뮤니티 속에서 배출하는 문화적 악순환이 오랜 시간 형성되었다면 말이다. 우리가 단순히 그들의 인터넷상 표현의 자유를 통제하는 것도 물론 좋은 해법이 아니다. 이미 인터넷 속에서 자유를 맛본 이들이 적절한 배출구를 잃게 된다면 이에 대한 반발 심리도 무시 못할뿐더러, 오히려 그들이 자기 자신을 더욱 적절히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을 마련해 주는 것이 더 윤리적일 것이다.
더 나아가 이렇게까지 인터넷 커뮤니티가 본래의 목적과 다르게 변질될 수 있었던 건 인터넷 실명제가 아니라는 문제보다는, "관계"의 문제일 것이다. 우리가 타인과 실제적으로 대면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있어서 우리는 타인에게 싫은 점들, 보완할 점들을 이야기하곤 한다. 즉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대면 관계에 있어서는, 상대방에게 '이것이 싫으니까 고쳐줬으면 좋겠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방향성, 서로가 개선해나갈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이러한 대면 관계에는 나의 감각 기능(특히 촉각)이 복합적으로 개입을 하기 때문에 여러 다양한 감정들과 책임들이 생겨난다. 관계에 있어서 이러한 다양한 층위의 감정들은 나를 드러내고 행위를 교정할 수 있는 장치로서 기능한다.
그러나 인터넷은, 특히, 비대면을 중심으로 하는 인터넷 커뮤니티는 타인과의 관계를 깊게 유지해야 할 필요도 이유도 없으니 1차원적인 감정의 파편들만 남게 된다. 그 속엔 부정적인 감정들만이 남기 너무나도 쉽다. 나의 사유도 이러한 인터넷의 한계에 가로막혀 함께 축소된다.
(이러한 점들은 일회성의 대면 관계 역시, 인터넷의 비대면 관계와 별 다를 게 없다는 위험성을 암시하기도 한다. 누군가가 입맛에 맞지 않고 싫으면 그 이후로는 보지 않으면 그만이다. 누군가가 내게 쓸모나 유용성이 없으면, 카카오톡 친구창에서 차단 버튼을 누르면 그만이다. 그리고 특정 누군가는 이러한 단발적인 관계를 이용하며, 특정한 타인을 하나의 인격체가 아닌 수단으로 여기며, 인연을 가볍게 맺고 끊어나갈 것이다. 여기에도 똑같이 나의 진솔함(솔직함)보다는 뻔뻔함만이 들어와 있을 것이다.)
이제 다시 질문을 던져보자. 당신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하는 자기표현은 여전히 자기기만이 없이, 무결하고 솔직하다고 말할 수 있는가? 자신을 다수에게 숨어버리면서 남을 내려깎는 방식은 솔직한 것이 아니라 뻔뻔한 것은 아닌가?
어쩌면 누군가는 그런 방식이 여전히 솔직하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성(진실성)이 담겨 있느냐는 물음에는 Yes라고 쉽게 말하지 못할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의 글에서 좀 더 이야기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