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편: 현대 개인주의의 역설 (Feat. 자기표현)
작성자 모엘
모엘의 단상
10편: 현대 개인주의의 역설 (Feat. 자기표현)
"자기표현"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당연히 인간을 다루고 있는 인문· 철학에서 핵심 개념이기도 하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하는 자아실현(자기실현)도 자기표현의 과정으로써 달성될 수 있는 것이고, 민주주의에서의 자기표현은 마땅한 권리이자 정치적 주체로서의 정치 활동이기도 하다. 내가 나를 표현하지 않는다면 내 주변의 상황과 세상은 나와 전혀 상관 없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고, 나는 그 시류에 그저 휩쓸리게 될 것이다.
결국 윤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윤리적 주체라는 것은 능동성·주체성·자발성·자율성을 이미 전제를 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인간을 말하는 것이다.
지난 글 8편: 약자 혐오 문화, 그리고 루저가 되기 싫어 행위하지 않는 현대인에 어느 정도 언급했듯이, 행위하지 않는다는 건 어쩌면 자기표현을 하지 않는 것과 같을 수 있다. 내가 나를 표현하는 것엔 어쩌면 막대한 책임이 따라붙을 수 있는 것이고 그만큼의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표현하는 순간 타인들은 나의 말에 대해서 평가하기 시작할 것이고 나는 언제든 간섭을 당하고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위치가 된다. 나로 인해서 내 주변의 상황적 분위기가 흔들리고 뒤바뀔 수 있다는 건 때로는 너무나도 무섭기도 하다. 내가 아니었다면 빠르게 진행될 일들이 내가 무언가를 말함으로 인해 늦어지게 되었다면, 그 사람들에게 죄송스럽기도 하고 동시에 따가운 눈초리를 느낄지도 모른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라는 표현은 이 상황을 적나라하게 이야기한다.
결국, 우리가 타인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회적 동물이자 정치적 동물이기 때문에, 나의 말과 행위는 타인에게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의 말과 행위는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다른 사람들에 의해 다양하게 해석이 되고 곡해될 수 있다. 나의 말과 행위가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에게 큰 피해를 끼칠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 역시 나의 책임(Responsibility)이 된다. 그 책임은 예측도 불가능할뿐더러 매우 무겁기도 하다.
다만 이와 반대로 내가 안전한 위치에서 누군가의 말과 행위에 대해서 판단하고 평가하는 건 다소 쉽다. 내가 공을 들여 무언가를 만들어 주장하는 것보다는, 타인의 생각에 대해서 가차없이 비난하고 손가락질하는 것이 훨씬 쉽고 꽤 직성이 풀리는 일이다. 양비론자들 역시 여기에 위치해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양비론자의 문제는 모든 것들을 비판하기에 자기만의 주장과 소신이 생기기 어렵다는 점이다. 앞서 말한 안전한 위치는 보통 인터넷 같은 익명 속 공간을 이야기한다. 익명 속에 숨어 모든 걸 깔아뭉개는 건 분명, 책임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리고 그와 같은 방식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어떠한 변화도 주지 않으면서, 그저 내 선입견 내에서 모든 것을 규정 짓는 판단만 하게 된다면, 막상 이후에 내가 맞닥뜨릴 상황에 어떠한 대처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것이 어떠한 행위도 없이, 마치 게임 경기를 보는 것처럼 거리를 두어 "무엇은 무엇이다."라고 판단만 하는 관망자·방관자가 내포하고 있는 또 다른 위험성이다.
이렇게 볼 때 자기표현은 결코 쉬운 일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는 마치 예술가처럼 자기 자신을 타자 앞에서 당당하게 드러내고 싶지만, 이는 필연적으로 타인의 평가를 전제한다. 그래서 우리 역시 행위자에서 벗어나 그저 관찰자로서의 타인이 되어, 누군가를 평가만 하게 되기 쉬운 역설이 지금의 개인주의 안에 깊숙이 들어와있는 것이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개인주의는 나쓰메 소세키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내 안의 고독 속에서 자신의 개성과 독특성을 찾아서 이를 스스럼없이 표현하며 타인과 함께 확장해 나갈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기반을 말할 것이다. 그 안에서는 기존의 타인의 평가를 뒤집어버릴 수 있는 주체의 힘을 전제한다. 그러나 현대의 개인주의가 타인의 눈치를 보면서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고, 타자에 의해 그저 끌려가는 방식으로만 흘러간다면 여기에 문제가 있다. 이건 더 이상 개인주의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 나아가 익명 속에 자신을 숨겨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을 배설하는 건 "솔직한 자기표현"이 아니라, "자기기만적 행위"이다.
알베르 카뮈는 부조리 앞에서의 반항(Revolt)을 말했다. 카뮈는 세상은 나에게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는 부조리의 형태로 다가올 테고 그저 그 부조리에 의해 휩쓸리는 것보다는, 그에 맞서 자신의 참된 자유를 드러내는 것을 이야기한 것이다. 이때 부조리를 전제했을 때, 부조리한 상황 속에서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결국 저항과 반항의 형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에 따른 예기치 못한 결과들 역시, 내가 나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마땅히 져야 할 책임이 된다. 어쩌면 그게 실존철학자들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지 않는가? 어차피 한 번뿐인 내 인생, 남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만의 선택과 책임을 통해 나의 삶을 살아가는 거라면, 나의 주체적인 말과 행위를 통해 나를 표현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꾸준히 구축해 나가는 주체를 "자기확신"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