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편: 청년 남성들이 우경화가 되는 이유 ㅣ 약자로서 남성의 서사 부재
작성자 모엘
모엘의 단상
9편: 청년 남성들이 우경화가 되는 이유 ㅣ 약자로서 남성의 서사 부재
지난 글 8편: 약자 혐오 문화, 그리고 루저가 되기 싫어 행위하지 않는 현대인에서 현대인들의 약자 혐오 문화가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무기력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다. 같은 맥락으로 무기력은 내가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것에 출발하는 것이고 이러한 나의 문제는 나 스스로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일 것이다. 그저 말뿐인 위로나 응원을 전하는 친구가 나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리가 전무하다. 쓸모 없는 타인은 현실적으로 나에게 전혀 필요치 않다. 약자와 소수자의 문제 역시 동일하다. 가뜩이나 나 또한 먹고 살기 힘든 상황에서, 나의 시야를 방해하고 나의 피 같은 세금을 걷어가 국비를 허투루 사용하게 하는 것들이다. 이 요소가 지금의 개인주의와 묘하게 결합하여 작동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서 핵심 중 하나는 청년 여성들보다 청년 남성들에게 이 현상이 더 심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분석은 앞서 이야기했던 논의에 덧붙여 한때 핫했던 성별 갈등과 관련된 담론이 들어가게 된다. 일단 거창한 설명은 차치하고 바로 윗문단의 논의와 연결을 시켜보면 기존의 관점에서 약자와 소수자에는 여성이 포함된다. 약자 혐오는 여성 혐오와 맞물리기도 쉽다. 왜냐하면 현대의 청년 남성들이 생각하기에는 과거의 전통 사회에서는 몰라도 지금은 성평등이 실현이 되었는데, 여전히 여성들을 약자와 피해자라고 이야기하는 담론을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성범죄 피해자 절대 다수가 여성이라는 담론은 현재 더 이상은 잘 먹히지가 않는다. 몇몇 가해자 때문에 나까지 남자라는 이유로 묶여 잠재적 범죄자 취급 받는 건 너무 억울하다.) 이외의 다양한 분석들 중에는 남성이 원래 기득권이었는데 여성들로 인해 자리를 잃어감에서 나오는 불안감도 있을 것이고, 진보 담론 측의 소통 실패와 위선적 행태에 대한 불신도 자리할 것이며, 연애 시장에서 남성의 불리한 위치 역시 이면에 숨겨진 분석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지점 중 하나는 청년 남성들은 여성들처럼 연대하여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적으로 남성들이 이처럼 위기 의식을 느끼고 있다는 내용은 온라인 곳곳에서 분산되어 이야기되어진다. 그렇기에 이런 위기 의식들이 학술적인 언어와 담론으로 나아가지는 못한다. 그저 온라인에서의 산발적인 분풀이에 그치기 때문에, 이들이 오프라인에 모여서 길거리 시위나 집회로 나아가는 일이 전혀 없게 된다. 즉, 청년 남성들은 사회에 어떠한 목소리를 내어 구조적인 개혁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자신의 권리들을 빼앗기길 원치 않기 때문에 각자의 영역에서 소극적인 저항만을 할 뿐이다.
그렇다면 왜 청년 남성들은 서로 뭉치지 못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청년 남성에게는 여성과는 달리, 약자로서의 서사(narrative)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남성들끼리 서로 간에 공통되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굉장히 빈약하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승리해 낸 성공담, 영웅담이 고작이다. 따라서 낙오되거나 실패했던 남성들에 대한 서사는 내적으로 배제하게 된다. 그런 생각들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형성되어, 남자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비극적인 이야기들은 대한민국에 거의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들은 어떤가? 여성들은 남성들과는 달리, 약자와 피해자의 서사와 늘 함께 해왔다. 이에 대한 수많은 아프고 참담한 이야기들이 내내 공유되어왔다. 여성은 늘 연대할 수 있는 조건에 있었다.
청년 남성들은 여성(또는 어린이, 노인, 장애인 등)에 비하면 당연히 (특히 신체적으로) 강자에 위치한다. 이들이 이미 강자의 위치에 있고 약자 집단도 이미 존재하기 때문에, 이들은 결코 약자가 될 수가 없다. 아무리 남성인 내가 사는 게 힘들고 아무것도 가진 게 없이 무기력하더라도, 사회적 관점에서는 나를 절대로 약자로 보지 않는다.
한편으로 잔혹한 몇몇 남성 가해자들 때문에 선량한 남성들 대다수가 마치 위험한 존재일 수 있는 것처럼 낙인 찍혀온 것도 분명 사실이다. 그리고 그 가해자들의 직접적인 피해자가 여성인 것도 명확하다. 그 중간에 끼어있는 대다수의 남성들은 약자라고도 피해자라고도 말할 수 없는 어중간한 위치에서 나름대로 겪고 있는 고통을 말하지도 못하고 혼자서 삼켰는지도 모른다.
무차별적 사고의 희생자들 앞에서 나의 고통을 말할 수 없듯이, 집안의 가장이 가족들에게 자신의 무거운 속내를 비추지 않듯이, 어느샌가 아무도 자신들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 거라고 믿어 청년 남성들은 스스로가 먼저 마음의 문을 닫게 된다. 그렇게 청년 남성들이 인터넷 커뮤니티 속에서 혐오 문화 속으로 들어가 그 거대한 심지가 파편화가 되는 것이다.
(남성들이 이렇게 다른 남성들과 잘 연대하지 못하고, 남성이 약자로서의 서사가 부재한 이유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과거에 남성은 바깥에서 사냥을 해야 하고, 다른 남성들과 경쟁해서 여성을 쟁취해야만 한다. 바깥 활동을 통해 돈을 벌어와서 내가 꾸리는 가정을 살려야 했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적인 시스템이 이미 남성들에게는 내재화되었다. 여성과는 다르게 남성들이 서로 친해질 때 욕하고 디스하면서 친해지는 이유도 이것 때문으로 볼 수도 있고, 나아가 남성이 여성보다 더욱 동성애자를 혐오하는 이유도 이것의 연장선일 수 있다.)
남성 역시 힘들다는 서사가 턱 없이 부족하다. 청년 남성이 약자일 수 있다는 촘촘한 서사는 거의 부재하다. 사회적으로 "너희 남성들이 뭐가 힘드냐?"라는 시각은 더더욱 그들이 마음을 닫아 약자로서, 때론 피해자로서의 남성의 서사가 나오지 않도록 틀어막을 것이다. 그러나 인문학이 해야 하는 일 중 하나는 이러한 남성의 서사들을 문학으로 풀어내는 것 아닌가? 우리가 여전히 문학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진 않는가?
단순히 성별 갈라치기를 하여 남성의 힘든 점만을 부각하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적어도 지금의 청년 남성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하는 이야기(narrative)가 사람들에게 공유되고 해석되고 인정받고 공감이 된다면, 어쩌면 그들이 자신의 마음의 문을 열고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충분히 생기게 된다면 조금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게 문화적인 것들을 넘어 구조적인 것들까지 닿아 시스템과 제도까지 바뀌게 된다면 우리는 서로를 조금 더 믿게 되지 않을까? 우리는 이 영역을 조금 더 모색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