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편: 인문학(종교·예술)은 정치적인가? (Feat. 정치란 무엇인가)
작성자 모엘
모엘의 단상
4편: 인문학(종교·예술)은 정치적인가? (Feat. 정치란 무엇인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학문은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어떠한 것이다. 그렇기에 인간의 주관이라거나 가치가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현실에서 일대일로 관찰이 가능하고 검증될 수 있고 모두에게 보편타당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것이 학문이 된다. 여기에 정치적인 색깔은 일반적으로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정치는 일반적으로 정치인들이 가치판단을 통해 자신의 이념을 행동과 실천의 영역으로 끌고 나가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 관점을 그대로 대입시켰을 때 인문학은 학문이 아니다.
철학에 대한 오해라는 건 마치 그런 거다. 철학이 아무리 만물의 근본 원리나 본질을 이야기하며 보편적인 것을 다룬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철학자의 주관적인 생각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또한 철학, 인문학을 우리가 사상이라고 표현하면서 우리가 나아가할 이념을 제시한다고 했을 때 이러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사상가라고 이야기를 한다. 이념은 현실에서 관찰 가능하고 검증 가능한 무엇이 아니다. 이념은 미래에 우리가 구현해야 할 어떠한 것이다.
철학이 객관적이라는 말은 그래서 틀렸다. 인간이 각 개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유를 통해 만든 것이기에 주관적일 수밖에 없고 가치가 개입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주관적이고 가치가 개입된 해석이 사람들에게 동의를 얻느냐 얻지 못하느냐로 나아간다. 동의를 통해서 나아가야 하기 때문에 이를 객관적이 아닌, 상호주관적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인문학은 그래서 정치적이다.
(다른 학문들도 연구자의 해석에 포커싱을 두면 인문학과 만나는 지점이 많습니다. 다만 스펙트럼으로 놓고 볼 때 인문학은 가장 끝에 위치해있으며, 인간의 주관이 개입하는 걸 인정하고부터 출발합니다.)
이제 정치가 무엇인지, 정치적이라는 말이 무엇인지를 조금 더 면밀히 파악해야 한다. 정치인들만이 하는 것이 정치인가? 우리가 관계에서 쉽게 사용하는 정치질이라는 표현은 뭔가?
일단 정치인들 먼저 살펴보자. 정치인들은 앞서 언급했듯이 민감한 사안들이나 큰 문제에 대해서 정치적 판단(가치 판단)을 내리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사람들이다. 정책이라거나 제도는 이에 대한 결과가 된다. 그렇기에 정치인들은 끊임없이 미래에 대한 비전을 그리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위에서 언급한 사상가와 비슷한 부분이 있다. 다만 이들은 정치적 이념들을 현실에 구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발로 뛸 뿐이다. 그리고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시피 이미 여기서 가치의 충돌 및 투쟁적 성격이 강하게 들어와있다. 서로 다른 의견들이 만나면, 상반된 가치가 만나면 여기서 더 옳고 그름의 문제를 따져야 하기 때문에 갈등이 생겨난다. 가치 갈등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 감이 좋다면 알 수 있듯이, 일반적으로 토론이라는 건 정치에 가까울 수 있다. 어떠한 객관적인 정답이 있는 문제를 가지고 우리는 토론하지 않는다. 주관적일 수 있고 정답이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는 찬/반을 나눠 겨룬다. 토론은 사실 관계에 있어서의 맞고 틀림이 아닌(사실 판단이 아닌), 더욱 옳고 그름을 가려내기 위해(가치 판단) 우열을 가리고 위계를 세우는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 정치라는 것이 가치의 갈등적인 측면을 이미 상정하고 전제하기 때문에 벌써부터 피곤한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우리가 일상적인 관계에서는 위에서 말하는 것처럼 정치적일 필요까지는 없다. 우리가 대화를 할 때 갈등이 첨예해지기 전에 "나도 맞고(옳고) 너도 맞아(옳아)"로 다른 의견을 존중하는 식으로 끝맺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공동체, 국가의 중대한 선택을 담당하는 사람들이다. 모두 다 맞다고 해버리면 어떠한 선택도 할 수 없다.
우리가 정치에 대해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이런 갈등적인 측면(싸우는 모습들)이 클 것이다. 더 나아가 자신의 이권을 늘리기 위해 온갖 권모술수를 쓰는 모습을 정치인으로부터 봐왔다면 정치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은 강화된다. 우리의 일상적인 인간관계에서 정치질이라는 표현이 여기서 나왔다고 한다면, 우리는 정치라는 전반적인 영역에 대해서 매우 피곤해질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또한 사람들과 술자리에서 '정치 이야기하지 말아라', '종교 이야기하지 말아라' 라고 하는 것은 논쟁적이고 갈등을 유발하는 것이 관계의 파탄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이제 질문을 해보자.
당신은 당신만의 주장이 있는가? 당신은 당신만의 소신이 있는가? 당신은 당신만의 좋아하는 것, 취향이 있는가? 당신은 당신만의 호불호의 기준이 있는가?
여기서 '없다'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누구나 다른 사람의 생각에 그저 휩쓸려가면서 줏대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한다. 남들이 좋아하는 걸 그저 맹목적으로 따라가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러한 것들을 그저 표현하는 것이 정치적이라고 이야기를 한다면 어떻겠는가?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야기했듯이 인간은 곧 정치적 동물 아닌가?
정치라는 것이 조금 더 광의적인 측면에서 인간이 타인과의 가치들을 교류하고 공유하는 일련의 모든 활동으로 본다면 어떠할까? 내가 좋아하는 걸 타인에게 공유하고, 타인이 싫어하는 것 역시 내게 공유하면서 그걸 확대해나간다면 어떠할까? 그저 모두가 동등하게 옳은 상대주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차근차근 공동체로 확장해가면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을 찾아나서면 어떠한가? 이것이 지극히 정치적인 거 아닌가?
내가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순간 그것이 곧바로 정치의 문제로 들어오게 된다면 정치는 더 이상 남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미 관계 안에서 정치의 문제 안에 들어와있다. 타인과 더 가까워지며 가치를 교류해나가는 건 분명 갈등의 측면도 있겠지만, 그 과정을 통해 더욱 좋은 것들을 찾아나설 수 있다면 이 영역은 또한 무한한 가능성의 영역 아닌가?
인문학은 여기에 위치해 있다. 인문학을 이야기하면 곧바로 문사철이라고 이야기하기 쉽다. 철학은 앞서 언급했듯이 인간의 사상(가치가 반영된)을 다룬다. 문학은 작가(or 인간)의 가치를 예술적 표현을 통해 드러낸다. 역사는 분명 사실을 다루지만, 역사가가 사료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구성하고 해석을 한다는 것에 초점을 둔다면 이미 가치가 반영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세 가지 모두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글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참고
이제 좀 넓혀서 인문 영역에 포함된 종교와 예술을 살펴보자.
종교는 정치적인가? 실제적으로 그 사람들의 주장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종교단체에서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본다면 우리는 이것에 쉽게 수긍하기 쉽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종교(특히 기독교)에서 추구하는 것이 신이라는 가치를 최고로 두어, 사랑과 용서를 실천하려 하고 주장하려 한다면 이것 역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특정 종교에서 "우리는 깨끗하고 순수해", "정치적인 것이랑은 관련이 없어"라고 말하더라도 이미 그 말을 한 순간부터 정치적이 되는 것일 거다. (웃음)
예술 역시 앞에 언급했던 문학과 연결 짓는다면 명확하다. 예술은 인간의 감정과 사상의 표현이다. 그리고 예술이 가진 위대한 힘은 사람의 감정을 건드려서 변화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술가들이 자기 표현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우리가 이해를 한다면 예술가들 역시 민주주의적 관점에서 가장 정치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ChatGPT나 Gemini와 같은 LLM이 발달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어쩌면 타인과의 가치를 교류하거나 공유하는 활동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실질적으로 유용한 지식들을 무한하게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불확실한 타인들은 그다지 중요치 않을 수 있다. 그렇게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세계(타자)를 이해하려하거나 모험하려 하지 않고, 나의 이해관계 안에서의 세계만을 공고히 구축하려고 한다. 어쩌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은 혐오와 증오의 대상이 된다. 여기에는 지식(Knowledge)만 있을 뿐이지, 지혜(Wisdom)는 없다.
정치라는 건 무엇인가? 내가 나의 진정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타인도 타인의 진정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어 이에 대해 결합을 추구해가는 과정이라고 본다면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진 않는가?
우리는 정치적인 것이 논쟁적이고 피로하다는 이유로 인간의 가치를 배제하고 객관적인 사실만을 추구하고자 하는 과학주의를 더욱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학기술을 사용하는 주체가 인간이고 우리가 Ai가 가진 위험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면, 인간 주체가 갖고 있는 정치성은 과학적 지식보다 우위에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글 역시 그런 점에서 매우 정치적(Political)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