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는 포용의 이유,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작성자 다온
절반의 영화들
무지는 포용의 이유,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남편의 이혼 선언, 딸의 사춘기는 에블린의 삶에 혼란을 부른다. 그 혼란은 과거의 선택에 따라 달라졌을 수많은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영화배우, 가수, 세상의 모든 것, 심지어는 돌까지도 될 수 있었던 에블린은 자신의 크고 작은 선택들에 대한 후회로 가득하다.
자신의 정체성을 흡수하지 못하는 가족, 있는 그대로 자신을 사랑해주지 않는 엄마는 조이 (또는 조부 투바키)의 삶에 혼란을 부른다. 그 혼란은 수많은 모습의 자신을 만들어낸다. 그 모습들에는 불안한 미래의 자신이 투영되어 있다. 조이에게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결국 모든 것이 부질 없다는 깨달음을 준다.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것은 동시에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이는 허무함으로 가득하다.
과거의 수많은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함이 만들어낸 멀티버스 안에서의 해답은 '다정함'이었다. 에블린의 남편이자 조이의 아빠인 웨이먼드는 멀티버스의 진실을 통달하고 있다. 그는 현재에 서 있다. 그리고 자신의 방법을 터득해 싸워 나간다. 그는 말한다.
"내가 유일하게 아는 것은 우리 모두 다정해야 한다는 거야. 특히 우리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를 때 말이야."
이는 어떤 사람의 과거와 미래를 전부 다 알 수 없다면 함부로 평가하거나 공격할 자격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누구에게도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말과 같다. 왜냐하면 우리는 타인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설령 그것이 가족일지라도.
결국 웨이먼드가 말하는 다정함은 단순히 '착한 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지에 쌓인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포용'일 것이다. 포용은 누군가를 이해할 필요도, 인정할 필요도, 평가하거나 재단할 필요도 없다. 그저 그 사람의 지금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에블린이 조이의 모습과 지금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그들은 현재에 안착한다.
모든 것이 부질 없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정말로 삶은 무의미하고 우리는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든 될 수 있다. 여기서 '어떤 사람'이란 마음만 먹으면 원하는 미래를 거둘 수 있다는 차원의 개념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든 될 수 있는 위기에 처해있다는 쪽에 가까울 것이다. 당장 1초 후에, 1시간 후에, 하루 후에, 1년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를 언제 어디로 어떻게 끌고 가 '어떤 사람'이 되게 만들지도 알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다정해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