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불편을 살까?

사람들은 왜 불편을 살까?

브루스
@bruceheo
읽음 20

"브루스님 오디세이 봤어요? 전 아이맥스로 봤는데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최근 영화관이 다시 북적이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포츠 중계를 상영하고 낮잠관까지 만들며 모객에 어려움을 겪었던 것을 생각하면 꽤 큰 변화다. 그 중심에 호프, 스파이더맨, 오디세이가 있다. 특히 오디세이는 흥미롭다. 원작은 약 2,800년 전 호메로스의 서사시다. 전혀 새로울 것 없는 이야기다. 그런데 사람들은 굳이 더 비싼 아이맥스관을 찾아간다.

놀란은 유명한 아날로그주의자다. 대부분의 감독이 CG를 적극 활용하는 시대에도 필름과 실제 촬영을 고집한다. 인터스텔라에서는 옥수수밭 장면을 위해 실제 옥수수를 심었고, 테넷에서는 실제 비행기를 활용했다. 이번 오디세이는 상업 영화 최초로 전 장면을 아이맥스 필름 카메라로 촬영했고, 91일 동안 사용한 필름만 약 640km에 달한다.

훨씬 편한 방법이 있는데도 굳이 불편한 방식을 선택한다. 놀란이 원하는 건 필름 자체가 아니라, 그 방식으로만 만들 수 있는 체험이다. 관객도 그것을 안다. 같은 영화라도 노트북으로 보는 것과 아이맥스관에서 보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다.

최근 사랑받는 콘텐츠에서도 같은 흐름이 보인다.  리센느의 '안원잘부' 콘텐츠가 사랑받는 이유는 아이돌들의 세팅된 모습이 아니라, 그 나이대에만 나올 수 있는 친근함과 순수함 때문이다. 시청자는 자기 안의 향수를 대신 경험한다. 뜬뜬의 풍향중은 3040세대가 어린 시절 접했던 종이 지도로 국도와 지방도를 여행하는 감각을 소환한다. 팟캐스트도 마찬가지다. 예전 팟캐스트가 지적 호기심을 채우는 데 초점이 있었다면, 지금의 팟캐스트는 현대인에게 결여된 커뮤니티 경험을 채워준다. 과거 살롱이 하던 역할을 콘텐츠가 대신하고 있는 셈이다.

소비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2022년 LP 판매량(4100만 장)이 CD 판매량(3300만 장)을 1987년 이후 처음으로 앞질렀다. 국내에서도 예스24 기준 국내 대중음악 LP 판매가 전년 대비 262% 증가하며 판을 뒤집었다. 스트리밍만 있으면 되는 시대에 왜 굳이 LP인가. 사람들은 판을 꺼내고, 턴테이블에 얹고, 바늘을 내리는 그 불편한 과정 자체를 원한다. 음악이 아니라 음악을 듣는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다.

사진도 그렇다. 스마트폰이 흔들린 사진까지 알아서 보정해주는 시대에, 사람들은 굳이 필름 카메라를 사고 인생네컷을 찾는다. 손에 잡히는 사진 한 장의 물성이 주는 감각을 원하기 때문이다. 서점도 마찬가지다. 온라인이 더 싸고 빠른데, 사람들은 굳이 독립서점과 큐레이션 서점을 찾아간다. 책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라, 책이 놓인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다.

기술은 계속 불편을 없애고 있는데, 사람들은 오히려 돈을 내며 불편을 사고 있다. 그 이유는 효율이 너무 흔해졌기 때문이다. AI는 몇 초 만에 콘텐츠를 만들고, 알고리즘은 취향을 대신 골라준다. 편리함은 더 이상 특별한 가치가 아니라 기본값이 됐다. 그래서 반대편에 있는 것들이 희소해졌다. 직접 찾아가는 것, 기다리는 것, 손으로 만지는 것, 우연히 발견하는 것들 말이다. 

희소한 것은 프리미엄이 된다.  아날로그가 다시 사랑받는 이유도 단순한 복고 취향 때문이 아니다. 모든 것이 빠르고 편해질수록, 시간을 들여야만 얻을 수 있는 경험의 가치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브랜드도 같다. 클라이언트와 F&B 캠페인을 진행하다 보면 예전에는 '이 제품이 얼마나 맛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다. 이제는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맛있는 제품은 너무 많고, 맛은 사람마다 다르다. 소비자는 이 제품을 마셨을 때 어떤 시간을 보내게 될지, 어떤 감정이 남을지를 상상하고 싶어 한다. 친구들과의 유쾌한 저녁이든,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이든. 그 경험의 결이 명확한 브랜드가 결국 선택받는다.

브랜드가 팔아야 할 것은 제품의 USP가 아니라 경험의 상상이다. 제품을 소유했을 때, 그 제품과 함께했을 때, 소비자가 어떤 시간을 보내게 될지가 눈에 그려져야 한다. 이 감각이 일관되게 반복될 때, 소비자는 기꺼이 그 제품을 경험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다시 재해석한다. 브랜드는 그렇게 소비자의 일상 속 감정으로 자리 잡는다.

고객은 망치가 필요한 게 아니라 구멍이 필요하다는 마케팅의 오래된 격언이 있다. 우리가 팔아야 할 것은 제품이 아니라, 그 제품이 만들어주는 결과이자 감정이라는 뜻이다. 놀란이 관객에게 판 것도 오디세이라는 영화가 아니었다. 아날로그 연출을 통해 3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실제 오디세우스의 여정에 함께하는 것 같은 몰입 경험이였다.

브랜드는 이제 제품이 아니라 경험 뒤의 감정을 팔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브랜드가 진짜 남기는 자산이다. 우리 제품은 소비자에게 어떤 경험을 상기시키고 있는가. 우리 브랜드를 떠올릴 때, 함께 떠오르는 감정이 있는가.

🔮오늘의 행운 메시지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