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가 있어야 빈틈도 매력이 된다
"빠뜨롱 나오라고 하면 돼요."
2024년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침착맨 채널에 초대된 불어 박사가 컬트적인 인기를 얻었다. 바로 60대에 전성기를 맞은 정일영씨 이야기다. 2년 전 침착맨 출연 콘텐츠는 도합 1억 뷰의 조회수를 기록했고, 이후 웹예능에 꾸준히 출연해왔으며, 최근에는 〈악성 내성인 정일영〉이라는 단독 웹예능까지 꿰찼다.
사실 정일영은 흔히 말하는 호감형 인물은 아니다. 1961년생, 올해 만 64세. 목소리가 크고 소리를 지르는 경우도 많다. 직업도 대학 강사여서 누구보다 '꼰대'라 불릴 요소를 다 갖췄다. 그래서 나도 그가 인기를 끌 때 의아했다. 왜 사람들은 저 사람이 화내는 걸 좋아할까.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생각이 바뀐다. 이 사람은 교수나 어른이 할 법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 기세로 우기라고 말하고, 안 되면 남 탓을 하라고 말하고, 센강 깊이를 재보지도 않고 그냥 7m라고 대충 말했다고 털어놓는다. 기존의 어른들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잘 들어보면, 웃기면서도 묘하게 위로가 된다.
정일영은 요즘 Z세대가 원하는 '자기를 내어주는 어른'의 모습이다.
꼰대는 자신을 내어주지 않는다. 멀리서 본인의 권위를 활용해 타인을 훈계할 뿐이다. 그러나 정일영처럼 Z세대에게 사랑받는 어른들은 자기를 내어준다. 부끄러운 모습까지 오픈해 동질감을 느끼게 하고, 때로는 기꺼이 놀림감이 되어준다.
하지만 그가 인기 있는 이유는 단순히 우스운 사람이라서가 아니다. 방송에 나와 그렇게 망가질 수 있는 건, 역설적으로 실력과 자존감이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 10년 유학과 박사학위로 이미 권위를 갖춘 사람이기에, 스스로 놀림감을 자처하는 모습이 비굴함이 아니라 친근함으로 읽힌다.
권위를 내려놓는 건, 권위가 진짜 있는 사람만 부릴 수 있는 여유다.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탄탄한 권위가 잡힌 브랜드는 가끔씩 놀림감을 자처할 필요가 있다. 브랜딩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인플루언서나 임플로이언서를 활용해 '놀릴 수 있는 판'을 깔아주는 것. 그렇게 빈틈을 보여줄 때 소비자는 오히려 그 브랜드에 호감을 느낀다.
대기업 브랜드들이 자기 브랜드를 패러디한 밈을 SNS에 공유하고, 임직원들을 활용한 콘텐츠를 만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권위 있는 브랜드일수록 자기 권위에서 한 발 비켜설 때 소비자와의 거리가 좁혀진다. 제안서에서 '이 정도는 자처해도 됩니다'라고 설득하기 가장 어려운 곳이 대기업이지만, 가장 효과가 큰 곳도 거기다.
단, 이 여유도 정일영과 같다. 브랜드의 권위가 단단할 때만 빈틈이 매력이 되고, 바닥이 없으면 그냥 가벼운 브랜드로 전락한다. 특히 하이엔드를 추구하지 않는 일상 소비재라면, 단단한 브랜딩을 먼저 쌓은 뒤에 빈틈을 설계해야 한다.
브랜딩의 목적은 결국 소비자가 그 브랜드에서 의도된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을 가장 깊게 만들어내는 건, 빈틈을 보여줄 수 있는 단단함이다.
우리 브랜드는, 사람들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하고 있는가?
사진= 침착맨, 몰토 유튜브 채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