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경험을 AI에게 인수인계할 수 있나요?
작성자 브루스
10년 경험을 AI에게 인수인계할 수 있나요?
요즘 가장 주목받는 AI 중 하나인 클로드를 활용해 퍼스널 페이지를 만들어봤다. 개발 배경지식은 거의 없었지만, 클로드와 GPT를 오가며 교차 검증하듯 붙여보니 생각보다 빠르게 결과물이 나왔다. AI가 없던 시절이었다면 이런 간단한 페이지 하나를 만드는 데에도 개발자와 협업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텐데, 이제는 그 단계를 개인이 직접 넘어설 수 있게 됐다. 새삼 정말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는 걸 실감했다.
내가 만든 퍼스널 페이지: https://bit.ly/4bW4GRJ
AI의 가능성을 몸으로 느끼고 나니 자연스럽게 다음 생각이 이어졌다. 그렇다면 이걸 내 업무에도 붙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하고 있는 일 중 일부라도 AI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정리해준다면, 업무 생산성을 분명히 높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GPT와 클로드를 붙들고 업무 자동화를 위한 여러 질문을 던져봤다. 그런데 막상 시작해보니 문제는 툴이 아니었다. 내 업무를 어떻게 정리해서 AI에게 넘겨야 할지부터가 막막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유는 분명했다. 내가 하는 일은 반복 업무의 비중이 높지 않다. 오히려 해석하고, 제안하고, 조율하는 일의 비중이 더 크다. 기존 데이터를 단순히 가공하는 것이 아니라 협력사와 고객사의 반응을 살피고, 여러 제안 사이에서 가장 적절한 방향을 찾는 일에 가깝다. 특히 그 판단의 근거가 매뉴얼보다 과거의 경험과 감각에 기대고 있다 보니, AI에게 무엇을 어떤 기준으로 지시해야 하는지 선명하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실제로 두 가지를 시도해봤다. 하나는 인플루언서 섭외였다. 팔로워 수, 참여율 같은 수치는 AI가 정리해줬지만, 정작 이 캠페인에 어울리는 사람인지는 판단이 안 됐다. 클라이언트 성향, 브랜드가 민감하게 보는 이미지, 과거에 함께 했을 때 호흡이 맞았던 크리에이터의 느낌 같은 것들을 AI에게 전달하려다 보니 결국 내가 그 기준을 먼저 언어로 꺼내야 했다. 당연하게 써왔던 감각인데, 설명하려니 막혔다. 다른 하나는 캠페인 메시지 설계였다. 브레인스토밍을 시켜봤는데 나온 문구들이 너무 작위적이고 어색했다. 맞는 말인데 아무도 안 쓸 것 같은 말들. 결국 AI가 못 만드는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게 뭔지를 내가 먼저 정리하지 못했던 거였다.
아마 이런 경험은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많은 사람이 AI의 속도에 놀라고, 함께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낀다. 하지만 막상 업무 영역에서 자동화를 시도하면 금세 허들에 부딪힌다. 데이터 권한 문제, 협업툴과의 호환 같은 기술적 이슈도 물론 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더 본질적인 어려움이 있다. 정작 내 업무를 AI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정리해 전달하려고 하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구조화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사실 그동안은 그래도 괜찮았다. 뛰거나 걷는 법을 굳이 생각하면서 하지 않듯이, 수년간의 경험으로 쌓아올린 일의 감각은 문장으로 정리하기 어렵다. 특히 마케팅처럼 변수가 많고 트렌드 변화의 영향을 크게 받는 일은, 모든 업무를 체계화하기보다 그동안 축적된 감각과 노하우를 잘 활용하는 것이 더 중요한 자산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AI와 함께 일하는 시대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제는 스스로 자신의 업무를 정리하고 구조화할 수 있어야 한다. 마치 신입사원에게 인수인계하듯, 내가 어떤 순서로 일하고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는지 AI에게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구조와 기준이다. AI가 잘 작동하려면 단순한 지시가 아니라, 따라갈 수 있는 순서와 판단 기준이 필요하다. 결국 내가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있는지, 무엇을 보고 선택하는지, 예외 상황에서는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먼저 내가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숨 쉬는 것을 의식하지 않듯, 익숙한 업무를 일부러 꺼내어 정리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색하고 어렵다. 사람은 수많은 변수를 자연스럽게 반영해 판단하지만, AI에게 그것을 전달하려고 하면 사소해 보이던 기준까지 일일이 언어화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굳이 AI를 쓰기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AI는 우리의 일상과 업무 안으로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우리가 기존에 쓰던 오피스 툴 안에도 AI가 들어오면서, 기초 작업 단계에 들어가는 시간을 빠르게 줄이고 있다. 앞으로 더 큰 차이를 만드는 사람은 AI 툴을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일을 설명 가능한 구조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퍼스널 페이지를 만들 때는 AI가 시키는 대로 따라가면 됐다. 내 일을 맡기는 건 달랐다. AI에게 넘기기 전에, 내가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를 내가 먼저 알아야 했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툴을 얼마나 아느냐가 아니라, 내 일을 얼마나 설명할 수 있느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