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작성자 방구석디제이
방구석 DJ
제21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바다는 바다로
저는 이번주(여러분이 보시는 시점에서는 지난주)에 한 화상세미나에 참여했는데요, 숙명인문학연구소에서 <비인간 혐오와 그 너머: 한국에서 동물, 사물, 기계와 함께 살기>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학술대회였습니다. 여러 주제들에 대해 흥미로운 강연과 발표들이 이어졌는데요, 제가 가장 관심을 가졌던 부분은 바로 '간척사업'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간척'은 특히 저에게는 꽤나 가깝게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본가 창밖으로 보이는, 부산에 위치한 '한국해양대학교'는 '조도'라는 섬 전체를 캠퍼스로 사용하고 있는데요. 바로 이 조도, 소위 갈매기섬이라고 불리는 이 섬은 본래는 바다였던 곳으로 간척사업으로 만들어진 섬입니다. 꽤 커다란 공간이 간척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어릴 때는 꽤나 놀라기도 했는데요. 어떻게 바다를 막아 땅을 만들 생각을 한 거지?라는 놀라움과 더불어 그걸 어떻게 성공했을까?하는 놀라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갈매기섬의 규모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한국에는 국가에서 주도하는 거대간척사업이 여럿 있었는데요. 역사적으로 한국 땅에서는 고려 시대부터 소규모 간척사업이 진행되어왔고, 대규모 간척사업의 경우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박정희 정권에 들어서면서 일제강점기 시대의 간척 관련 법을 모방한 <공유수면매립법>이 제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정부주도사업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흔히들 간척사업을 떠올리면, 없던 것이 생겨나는 이른바 '생산'의 이미지를 가지기 쉽습니다. 그건 우리 인간이 자신의 생활 터전을 배경으로 육지 중심적인 사고를 하기 때문인데요. 그것도 사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틀린 말이기도 합니다. 땅이 만들어지는 만큼 바다가 사라지는 것이며, 그것은 바다를 자신의 생활터전으로 삼고 있는 많은 생물들 - 여기에는 어민들도 포함이 되겠습니다 - 이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공유수면매립법>에서 공유수면이란 '주인 없는 수면'이며, 갯벌이 이런 공유수면이라고 정의될 수 있는 이유는 갯벌을 땅이 아니라 바다로만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갯벌은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중간이자 육지에서 바다로 이어지는 길목이며, 하루에도 몇 번이고 온전한 '땅'으로 변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갯벌을 다룰 때 이를 완전히 땅으로만 본다거나, 바다로만 보는 것은 문제를 낳게 될 수 있는 것이죠.
한국에서 '간척'하면 가장 먼저 떠올릴 수밖에 없는 '새만금'은 일제강점기때부터 본다면 무려 3번이나 간척이 진행되었던 - 그리고 진행되고 있는 공간인데요. 본디 간척의 가장 큰 목적은 농촌의 생산력을 높이기 위함, 즉 농경지를 추가로 조성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정말 간척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토지는 농경지가 될 수 있는 걸까요? 레터메일을 시작하던 초기에 소개드렸던 영화 <수라>에 따르면, 사실상 성공한 경우는 그렇게 많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모든 흐름이 존재했던 공간에 해수를 차단하고 땅을 만들면서 그 공간은 썩어들어가죠. 결국 다시 해수를 유통하게끔 하거나 불모지가 되기도 합니다. 경혜영 선생님의 말을 직접적으로 인용하자면, "이미 투입된 자본 회수의 불가능성에 더하여 방조제나 댐 제거에 들어갈 자본은 부정하면서도, 새로운 기술과 인공물을 덧붙일 때 들어가는 자본에 대해서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늘날 거대 간척사업이란, 천문학적 자본을 투입하여 인공물로 자연을 뒤덮으면서 농업·공업용수로도 쓸 수 없는 썩은 물과 염분이 올라와 농사를 지을 수 없는 황무지를 만드는 작업이라고 해야 한다." 이것이 거대 간척사업이 만들어내는 결과라고 할 수 있겠네요.
** 위 단락은 해당 세미나에서 경혜영 선생님이 발표하신 '인공물, 연합 환경, 폐기물: 인류세 시대에 다시 보는 한국의 거대 간척사업'을 바탕으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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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알지 못했던 것들
분리수거나 빨대 사용 문제와 같이 환경친화적인 동참을 권유하는 메시지를 대할 때 우리는 종종 이런 반응을 보이곤 합니다. '우리 개인이 겨우 이 정도 일을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있을까?' 예전의 저는 당연하게 확신했습니다. 무엇이든 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뭐든 행한다면 당연히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지금도 이 생각이 변하지 않은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더 확실한 변화를 위해서는 보다 큰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들'도' 건드려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2026년부터 쓰레기 직매립이 금지되고, 여러 수도권 매립지들이 포화상태에 이르게 되면서 쓰레기에 대한 문제가 자주 거론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쓰레기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게 무엇인지 아시나요? 육지에서 발생되는 쓰레기에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건설 폐기물'이고, 해양에서는 어업에서 사용되고 남은 폐기물들이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저희 두 DJ가 이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가장 큰 이유인 '2024 환경영화제'가 6월 30일까지 진행되는데요. 제가 지금까지 이 영화제에서 본 영화들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는 바로 <문명의 끝에서>였습니다. 온갖 쓰레기들의 장면들이 계속 이어지는 가운데, 저에게는 건설 폐기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재개발'에 대한 부분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재개발은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짧게는 10년, 길게는 몇 십 년도 걸리는 (이익집단들의 충돌로 쉽게 무마되기도 하는) 이 사업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지 몰라 해당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본인의 집에 대한 애정을 점차 꺼뜨립니다. 무언가가 부서지고 고장나더라도 언제 이 집을 나가게 될 지 모르기 때문에 굳이 비용을 들여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에 공을 들이지 않는 것이죠. 결국 더 발전하기 위한 재개발 때문에 공간은 더욱 빠르게 폐허가 되고,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을 지키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 재개발로 인해 이익을 보는 건 도대체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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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영화제와 생츄어리
결국 이 시대 이 사회는 '돈'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간척을 바라는 사람들은 결코 바닷가에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은 아닐 겁니다. 재개발로 인해 이익을 보는 사람들도 절대로 그 지역에 원래 살고 있던 주민들은 당연히 아니겠죠. 원주민들이 불합리함을 막기 위해 벌이는 투쟁들은 세상에 너무 많고, 또 거대 자본집단에 비하면 미미해서 우리는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잦습니다.
'오류시장'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환경영화제에서 동명의 이름으로 출품된 이 영화는 재개발로 인해 몇 십 년 동안 고통을 받은 오류시장의 상인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는 상황들을 지켜보다 보면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고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답답함이 올라옵니다. 이건 대한민국만의 상황이 아니기도 한데요. 브라질의 광산회사 '발레(Vale)'와 댐 수몰위험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갈등을 다룬 <해제이투(Rejeito)>에도 이러한 문제는 잘 드러납니다. '헤제이투(Rejeito)'는 동사로는 거절하다, 명사로는 가공 과정 중 발생한 잔여물, 재사용이 불가능한 폐기물을 의미합니다. '발레'의 댐은 이미 두 번 붕괴된 이력이 있고 그 과정에서 그 마을의 주민들은 자신의 생활은 물론이고 자신의 주변 사람들, 혹은 본인의 생명까지도 잃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발레의 댐은 지속되고 있으며, 바로 댐 코앞 20M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살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말이죠. 영화를 보다보면 더 기막힌 사실도 있는데요, 댐 붕괴와 관련한 영향이 미미할 지역에도 이러한 위협을 가해 일부러 마을을 비우게 하고 싼값에 그 땅을 매입하여 광석을 채굴하는 뻔뻔한 일도 쉽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사실들을 알게 되면 가슴이 답답하고 해결되지 않는 찝찝함만 남습니다. 앞에서 제가 언급했던 '이런다고 바뀌는 게 있을까?'에 직접적인 해결방법이 아닐 수도 있죠. 하지만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그저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위협이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최근들어 종종 하게 되었습니다. 제 시야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조금 볼 수 있게 되면서, 이 레터메일을 읽어주시는 여러분께도 꼭 소개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제가 계속 언급했던 제 21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는 6월 30일까지 진행되는데요, 무려 온라인 상영관으로 쉽게 영화를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짧게는 20분짜리 영화부터 길게는 120분짜리 영화까지 다양한 환경과 관련된 영화를 편하게 접할 수 있으니 추천 드립니다.
또 지금 영화관에서 따끈따끈하게 개봉한 <생츄어리>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비인간 동물에 대해 관심이 많으시다면, 그리고 '안락사'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공유하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꼭 한 번 보시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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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노래: Coldplay - Hymn for the Weekend
평소에도 친환경적인 행보로 많은 주목을 받던 '콜드플레이'가 최근 소식에 따르면 현재 돌고 있는 투어에서 친환경 전력생산, 태양열, 재활용배터리 등으로 이전 투어에 비해 직접적 탄소 배출량을 50%넘게 줄였다고 합니다. 마침 이번 주제와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제가 좋아하는 콜드플레이의 노래 하나를 추천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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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에 앞서...
이번 호는 두 DJ 모두 영화를 보고 작성한 글을 레터로 보내드리게 됐습니다. 예전부터 서로 메인으로 소개하는 분야를 바꿔보자는 제안을 하곤 했는데요. 마침 환경재단에서 주최하는 서울국제환경영화제가 진행 중이어서, 영화제에 올라온 영화를 보고 각자 글을 쓸 수 있게 됐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도서전이나 영화 행사 등을 함께 소개해드리는 특집호를 보내드릴 예정이에요! 전문적인 해설..보다는! 언제나 그랬듯 여러분들만의 재기발랄 도슨트 느낌으로요. 그럼 이번 호도 잘 부탁 드리겠습니다 🤝
🌃새벽의 백사장
얼마 전 저는 강릉에 다녀왔는데요. 오랜만에 본 바다가 반갑고 또 여전히 좋았습니다. 강릉은 안목/강문/사근진/경포 등등 이름만 들어도 유명한 해변이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숙소가 경포해변 근처에 있어서 낮과 밤, 새벽까지의 바다를 실컷 볼 수 있었어요. 사람이 많은 여름의 해변답게 불야성을 이룬 가게들과 늦은 시각까지 끊임없이 터지는 폭죽이 시선을 끌었습니다.
그날 일행들과 해변을 걸으며 '해양 쓰레기'를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했던 울산 정자 해변은 관광지로 입소문을 탄 뒤 많이 더러워지고 수질도 나빠진 곳입니다. 그래서 여전히 좋아하는 장소긴 하지만 예전만큼 자주 가게 되지는 않는다는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에 비해 강릉은 깨끗한 것 같다는 감상을 나눈 것도 잠시... 이른 새벽에 바다로 산책을 나온 저희는 모두 놀라고 맙니다. 😂 어젯밤 터졌던 무수한 폭죽들은 쓰레기통이 아닌 모래사장 위에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고, 그 옆으로 함께 밤을 불태웠을 술병들과 음식물 쓰레기들이 갈 곳을 잃고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죠. '깨끗하다'고 표현했던 바다를 위해 아침부터 많은 분들이 쓰레기를 치우며 고생해주고 계셨습니다. 저희도 플로깅하는 셈 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쓰레기를 함께 주웠습니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역시 애초에 버리지 않는 것이 최고다! 라는 감상이었달까요.
비단 폭죽 뿐만이 아닙니다. 다 마신 일회용 커피컵부터 플라스틱 테이크아웃 용기와 버려진 낚싯대까지. 해양 쓰레기 (바다 쓰레기 등의 용어로도 통칭됩니다)의 종류는 무궁무진합니다. 그중에서도 미세 플라스틱의 존재감이 어마무시한데요. 매년, 세계 바다에 버려지는 플라스틱의 양이 최대 1천만t에 달한다고 합니다. kg으로 환산하면 100억 kg이나 되고, 이는 카타르라는 국가 하나를 덮을 수 있는 양이라고 합니다. 플라스틱은 특유의 난분해성 (쉽게 분해되지 않는 특성) 때문에 해양 생태계 악화의 주범으로 꼽힙니다. 이를 줄이려는 국제사회와 국내 지자체들의 노력은 늘고 있지만 역시 그에 앞서 개인의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곧 무더운 한여름이 다가오고 있는 만큼, 바다나 계곡으로 휴가 계획을 잡아두신 분들이 많을 텐데요. 조금 귀찮더라도 내가 가져간 쓰레기는 올바르게 처리하려는 노력! 함께 실천해봅시다.
(너무 공익광고 톤 같나요? ㅎㅎ 그치만 필요한 잔소리므로 꼭꼭 눌러 적어보았습니다)
🐋해녀와 돌고래
이렇듯 환경에 인류가 미친 영향은 고스란히 다시금 인류의 몫이 됩니다. 이번 호에서 소개할 서울국제환경영화제에서는 그러한 환경 문제의 파급력을 비롯한 다양한 주제의 영화들을 상영하고 있습니다.
제가 선택한 영화는 <숨비소리>인데요.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영화 줄거리를 간단히 설명드리겠습니다. (스포주의)
영화의 주인공인 '쟈민'은 한국으로 국제 결혼을 해서 이주를 온 존재로, 시어머니 '순옥'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쟈민은 한국어 교실에서 해양 생물을 이르는 한국어 단어들을 배우다가 '돌고래'를 알게 됩니다. "해녀라면 돌고래를 봐야 한다."는 말을 들은 쟈민은 그날부터 쭉 돌고래를 만나고 싶어합니다. 순옥은 그런 쟈민을 이해하기 어려워하지만, 결국 둘은 점차적으로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게 됩니다.
맞습니다. 영화 자체는 해양 생태계 파괴보다는 사실 새로운 환경에 자리잡은 이방인의 낯섦과 적응, 소통과 이해에 대한 내용을 담았습니다. 다만 그에 앞서 쟈민이 꼭 보고 싶어하는 '돌고래'에 잠깐 포커스를 맞춰보려고 해요. 이맘때 울산 장생포에 가면 돌고래 떼를 볼 수 있다는 사실! 혹시 알고 계신가요? 맨눈으로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는데, 울산에 있는 고래바다여행선 (ㅋㅋ) 이라는 귀여운 존재가 탐사와 야간 연안 관광을 진행하면서 돌고래 떼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있답니다. 기사를 검색해보니 최근에도 참돌고래 약 200마리가 떼로 헤엄치는 광경을 발견했다고 하네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돌고래 떼가 '연안에서' 잦은 빈도로 목격되는 것이 좋은 소식만은 아니랍니다. 해수 온도 상승으로 먹잇감이 많아졌기 때문에, 점차적으로 육지와 가까운 바다에서 자주 발견되고 있어서예요. 2021년도 기준으로 울산 인근 앞바다의 해수 온도는 이전 년도에 비해 약 8도 가량 상승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러면서 돌고래가 좋아하는 난류성 어종이 다량 서식하게 되었죠. 이같은 현상이 올해까지 쭉 이어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대로 수온이 더 높아져 28도가 넘으면 돌고래가 살기 힘들어집니다. 당연히 발견율도 현저히 낮아질 테고, 쟈민의 바람처럼 '돌고래'를 만날 수 있는 일도 없을 거예요.
<숨비소리>에 다음과 같은 대사가 등장해요. "쟈민아, 아까 혜자할매 봤제. 아무리 눈앞에 좋은 기 있어도 숨이 다 되면 나와야 하는 기다." 저는 이 대목에서 인간의 탐욕을 떠올리게 됐어요. 아무리 눈앞에 좋은 게 있어도, 우리가 발 딛고 선 지구를 위해선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 곧 미덕이라는 사실을 상기해봅니다.
🌍우리가 서로의 호흡을 이해할 때
영화의 제목인 <숨비소리>의 의미는 "해녀들이 물질할 때 깊은 바닷속에서 해산물을 캐다가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 물 밖으로 나오면서 내뿜는 휘파람 소리"를 이릅니다. 저는 이 숨소리를 영화 내내 이어지는 쟈민의 간절한 호흡으로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영화를 통해 우리는 쟈민과 순옥이 서로에 대해 느끼는 낯섦을, 또 쟈민이 이방인으로서 이 땅에서 느끼는 낯섦과 외로움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왜 쟈민은 돌고래를 만나야 '한다'고, 혹은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영화의 사운드에 집중해보면, 물에 들어갔다 나오는 소리, 찰박찰박 파도가 치는 소리 등을 자세히 담고 있습니다. 쟈민의 궁극적인 목표로 대두되는 해녀라면 돌고래를 봐야 한다는 말. 이는 곧 돌고래를 보려면 잠수를 잘 해야 하고, 잠수를 잘 한다는 것은 해녀로서 이 땅에 안정적으로, 제대로 정착한다는 부분과도 이어지는데요. 쟈민이 깊은 심해까지 물질하는 것을 어려워하며 밭은 호흡을 토해낼 때 우리는 곧 그 뒤에 숨은 쟈민의 '간절함'을 감히 이해해볼 수 있습니다.
한국어 공부를 하면서 보이는 곳에다 견출지로 이런 저런 단어를 붙이고 외우는 그이지만, 붙일 수 없는 것들에 '가족' 같은 단어가 포함되는 삶. 저는 이 대목에서 쟈민의 삶이 '52헤르츠 고래'를 닮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라고도 불리는 52헤르츠 고래는 말 그대로 다른 고래들과 다른 헤르츠로 소통하기 때문에 그 존재 자체도 실재하는지 분명하지가 않은 고래입니다. 만약 해당 고래가 선천적 결함이나 혹은 기타 이유로 이 음역대의 음파밖에 발신할 수 없다면, 이 고래는 다른 고래들과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것이죠. 다행히도 쟈민에게는 순옥과 동네 어르신들이라는 존재가 있어 고립되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쟈민이 처한 환경이 그의 외로움을 완벽히 해결해주지는 않지만, 서로가 서로의 호흡을 이해할 때 우리는 각자의 삶을 향해 한발짝 더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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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노래: 짙은 - 고래
이번 호를 쓰면서 예전에 좋아했던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가사보다는 제목 때문에 이 곡을 추천곡으로 넣게 되었지만... 글을 쓰며 오랜만에 다시 들으니 또다른 느낌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