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전세 내셨어요?
작성자 방구석디제이
방구석 DJ
여기, 전세 내셨어요?


🗑️아마도 'FROM ME TO ME'
나는 서울의 어느 빌라에서 2명과 함께 살고 있다. 집에 있는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은 이 조촐한 3인 가구는 일주일에 적어도 한번은 20L짜리 종량제 봉투를 꽉꽉 채워 버린다. 이 쓰레기봉투를 꽉꽉 채워 집 밖으로 내보낼 때 뭔가 모를 후련함을 느끼곤 한다. 아마도 내 눈앞에서 더러운 것들이 사라졌다는 것으로부터 오는 상쾌함 같은 것. 그러나 이것들은 정말 ‘사라질’ 수 있는 것일까?
작년 겨울 여느 때처럼 7720번 버스를 타고 돌아가는데, 연희동 길가에 가득 쌓인 종량제 봉투 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그저 분리수거일의 흔한 풍경일 뿐이었는데 아무렇지 않았던 일상적인 광경이 갑자기 숨 막히게 다가왔다. 연희동에는 사람이 몇 명이 사는 걸까? 연희동 – 서대문구 – 서울 – 대한민국 – 아시아 – 그리고 지구! 겨우 3명이서 일주일에 20L의 쓰레기를 버리는데, 이 지구 위 사람들이 일주일에 버리는 쓰레기의 총량은 어떻게 되는 걸까? (수학을 못해서 계산을 시도하지는 않았지만,, 당연히 무시무시하겠지!)
물론 이 쓰레기들이 재활용되고, 매장되고, 태워지는 과정이 있음을 알고는 있지만. 근데 정말 ‘안다’고 해도 되는 걸까? 도시 한복판에 사는 나는 수거 차량이 내 손을 떠난 쓰레기를 싣고 출발하는 그 순간부터 그것에 대해 까마득하게 잊어버린다. 심지어 볼 일도 없다. 당연하겠지만 이건 아마 사라지는 것이 아닐테지. 그저 떠돌다가 다시 우리에게 다른 형태로 돌아오는 무언가가 될 것이다. 며칠 전 친구들과 옷을 뜯어 먹는 소, 플라스틱을 먹는 물고기에 대해 얘기했다. 그 다른 형태가 된 쓰레기는 어느날 문득 우리의 식탁에서 다시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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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을 본 것도 죄라면
내가 사랑하는 영도에는 조그만 섬이 하나 더 있다. 조도라고도 불리고, 갈매기섬이라고도 불리는 이 섬은 간척으로 만들어졌다. 아주 어릴 때부터 조도에 들락날락했던 나에게 ‘간척’이란 것은 단지 가치 중립적인 과학 기술에 불과했다.
올해 서울 동물 영화제에서 나는 황윤 감독의 <수라>를 보았다. <수라>의 포스터는 정말 예뻤다. 키보다 큰 갈대들에 둘러싸인 두 인물이 마이크를 들고 붉은 태양을 향해 서 있는 모습.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다큐겠거니 생각했다. 그리고 내 추측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그 ‘자연의 아름다움’을 지키려는 사람들의 노력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진행되었던 ‘새만금 간척 사업’. 영화의 제목인 <수라>는 이 새만금에 거의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갯벌의 이름이다. 감독은 여기서 이 갯벌을 힘겹게 지키려는 ‘동필’을 만난다. 그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이 질문에 ‘도요새’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한때 여기는 도요새가 따뜻한 곳으로 날아가기 위해 들르는 정거장 같은 곳이었다. 그는 도요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하늘을 뒤덮는 그 황홀한 순간을 여전히 잊지 못한다. “도요새들이 그렇게 무리 지어서 날면 갑자기 바람이 불어요. 그 수많은 날갯짓들이 나를 스치면서 만들어내는 바람.” 그의 아들 ‘승준’ 또한 경험한 적이 있다. 하지만 ‘승준’보다 더 어린 감독의 아들은 평생 볼 수 없다. 여기에는 더 이상 도요새를 위한 갯벌이 없기 때문이다. ‘동필’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이렇게 수라 갯벌을, 새만금을 되돌리려고 하는 건 아마도 죄 때문인가봐. 아름다운 것을 본 죄. 그런데 아름다운 것을 본 것만으로도 죄가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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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가 우리에게 보내는 하나의 사랑의 메시지
아버지를 따라 갯벌을 지키기 위해 ‘승준’은 마이크를 들고 새벽마다 ‘수라’에 간다. 법적보호종인 ‘쇠검은머리쑥새’의 쏭(Song)을 녹음하기 위해서. (새들이 번식에 내는 소리는 ‘Call’이 아니라 ‘Song’이라 부른다고 한다.) 여기에 살지 않는다고 판정되었던 그 새의 노래가 다시 들린다면 이 갯벌의 시간을 되돌릴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 실패를 거듭하다 마침내 ‘승준’은 그 사랑의 노래를 담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이어서 ‘동필’ 또한 놀라운 발견을 한다. 10년 전에 이 갯벌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흰발농게’를 찾은 것이다. 그들은 바다에게 그저 돌려주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다. 그저 바닷물이 다시 땅으로 들이친다면 갯벌은 틀림없이 돌아올 것이라고. 모든 생명들은 그저 그 순간을 기다릴 뿐이라고. 그리고 그 증거를 명확하게 두 부자는 발견하고야 말았다.
서울에 산지 벌써 꽤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힘들 때마다 고향의 바다를 찾는다. 물씬 느껴지는 바다 내음을 맡고 있노라면 조금 더 숨을 쉬기 편한 기분. 나는 그 섬으로부터 수많은 아름다움을 경험했고 그 추억들에 기대어 사는 나날이 많다. 아름다운 것을 본 것이 정말 죄라면, 그렇다면 나도 사실은 죄인인 것이다.
사실 이전과 비교해서 크게 변한 것은 없다. 쓰레기를 버릴 때 더 이상 후련하지 않다는 것과 무언가를 사거나 쓸 때 가끔 나도 모르게 멈칫하게 된다는 것. 그 정도가 전부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미미한 변화는 가끔 나를 우울하게도 한다. 어떤 날은 내가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어떤 날은 이런 건 다 쓸데없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속해서 조금씩 변화해야 하는 이유를 맞닥뜨리게 된다. 우연히 영화 <수라>를 보게 되었을 때처럼, 바닷가를 산책할 때처럼, 문득 ‘우주가 우리에게 보내는 하나의 사랑의 메시지’를 마주하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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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노래: 선우정아 - 고양이
영화 <수라> (상영중) 외에도 정재은 감독의 <고양이들의 아파트>를 추천합니다. 재건축으로 곧 사라질 아파트에서 살던 고양이들은 이제 어디로 가는 걸까요? 고양이들의 발자국을 담은 귀엽고도 조금은 서글픈 이 다큐멘터리와 함께 들으면 좋을 선우정아의 '고양이'입니다! (저는 선우정아의 목소리가 고양이를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한 팬의 사심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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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 다 망해버렸으면 좋겠어…가 진짜가 되는 소설이 있다고?
학교 가기 싫어서, 회사 가기 싫어서, 수업 듣기 싫어서, 발표 하기 싫어서, 일하기 싫어서. 창밖을 보면서 어디 멸망 같은 건 가까이 안 왔나 중얼거려 본 경험. 다들 한번쯤은 있지 않으신가요?
조예은 작가의 <스노볼 드라이브>도 그와 비슷한 맥락으로 시작한다. 백영시에 살고 있는 주인공 ‘모루’는 창밖으로 내리는 눈을 보며 세상이 이대로 영영 망해버렸으면, 하고 빈다. 한없이 쏟아지는 흰 눈이 온 세상을 덮어버렸으면 하고 말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스노우볼에 영원히 갇힌다면 어떻게 될까. 얼마 뒤 놀랍게도 모루의 상상대로 세상엔 종말이 찾아온다.
녹지 않는 눈이 내리는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포근하고 소복하게, 그래서 기분 좋게 내리는 눈은 더 이상 없다. 한여름에 내리는 눈을 보고 환호했던 사람들은 여린 살갗을 파고들어 상처를 내는 눈을 마주하고 절망에 빠진다. 전세계적으로 번져가는 이 이상한 ‘눈’의 정체는 실리카겔과 같은 보존제의 성분을 갖고 있으며, 소각 등의 인위적인 방법으로만 없앨 수 있다.
백영시에는 녹지 않는 눈을 태우는 소각장이 설립된다. 모루는 그곳에 취직해 하루하루 눈을 태우며 살아간다. 그러다 덤프트럭을 몰던 이모의 실종 소식을 듣게 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인 시작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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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영원이 되기까지
종말의 시대에 상실을 겪는 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일만은 아니다. 때에 따라 인간-인간의 이별보다 인간-동물의 이별이 더욱 극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여기, ‘모루’에 이은 또다른 주인공이 있다. 성은 이요 이름은 이월이라. 합치면 ‘이이월’이란 독특한 이름을 가진 소녀는 모루와 같은 학교 동창생이다. 이월은 어릴 때부터 키워온 ‘하루’라는 강아지가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근무하고 있는 연구소에 갔다가, 그만 하루를 잃어버리는 사고가 일어나게 된다. 차에서 기다리라는 말을 어기고 연구소 내로 숨어들어갔다가, 하루가 짖게 되면서 경비 병력들에게 발각되었기 때문이다. (이월의 아버지는 연구소의 소장으로서, 실은 녹지 않는 눈이 내리는 이 모든 일들과 연관이 있는 인물이다.)
이후 이월은 하루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하루의 환영을 보며 살아간다. 이월의 새엄마는 하루의 환영과 산책까지 하려는 이월을 그대로 받아주는 등 이월을 있는 그대로 보듬어주지만, 그럼에도 이월에게 하루의 빈자리는 여전히 크기만 하다.
이월과 하루의 이야기는 이후 모루가 소각장의 동료와 잔뜩 쌓인 눈을 치워내다가, 그 속에서 말라 죽은 강아지를 발견하는 씬과도 미약한 연결성을 갖는다. 실리카겔과 같은 보존제 성분의 눈 때문에 미라처럼 남아 있는 강아지의 모습. 거대한 눈 더미 속에서 수분이 모조리 날아가 바싹 말라 비틀어진 죽음의 모습은 그를 목격한 모루의 눈을 통해 독자의 뇌에도 강렬하게 각인된다.
혹시 ‘기억의 몸집’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아마 없을 겁니다. 제가 만들어낸 말이거든요. 어떤 기억은 덩치가 큰 반면에 어떤 기억은 왜소해서 그게 내 안에 있었나 한참 더듬거려야하기도 하잖아요. 이렇듯 몸집이 큰, 부피감 있는 기억에 짓눌린 시간을 우리는 필연적으로 오래 괴로워하는 것 같습니다.
마침내 이 종말이 모두 지나가고 녹지 않는 눈이 녹기 시작한다고 해도, 이월과 이별한 하루의 눈빛은 이월의 기억 한 켠에 영원히 실재할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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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서지지 않는 것
“세상에는 어쩔 수 없는 흐름이라는 게 있고, 우리는 그저 휩쓸릴 뿐이다.”
아포칼립스, 즉 세상의 종말이 찾아온다면 하는 상상에서 꼭 묻게 되는 질문이 있다. 포기할 것인가, 포기하지 않을 것인가. 수용할 것인가 저항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악착같이 살아남는 쪽을 택하는 것과 천천히 다가오는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쪽. 어느 쪽을 택하든 틀린 답은 없다.
다만 가장 강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감을 택하는 쪽이라고 생각한다.
“모루. 모루야.백모루. 나는 자주 내 이름을 떠올렸다. 모루, 가공할 쇠를 올려놓고 망치를 두드리는 받침대를 뜻하는 모루가 바로 내 이름이었다. 매일같이 망치에 부딪히더라도 꿋꿋이 그 자리에 서서 물건을 다듬는 모루처럼 살아가라고, 어차피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없는 세상이니
그럴 바엔 흠집을 무늬로 만들어버리라고,
단단히 존재하라고.
망치는 오래 때리면 머리가 빠지고 말지만 모루는 절대 부서지지 않는다고.”
종말의 끝에 좌절 대신 질주를 택하는 두 주인공의 모습이 더욱 환하게 빛나는 것은 그래서일것이다. 해보기 전에 ‘안 될거야’ 하고 손을 떼는 일. 그 일이 몇 배는 쉽고 매력적이게 느껴질 때가 있다. 희망보다도 절망을 말하는 일이 배로 힘들게 느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고. 하지만 자리에 가만히 주저 앉아서 세상이 ‘싹 다’ 망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너무 기니까. 우리는 그 과정을 각자의 모습대로 견뎌나갈 필요가 있는 게 아닐까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내면서. 실은 가끔 일상이 종말에 가까운 것처럼 느껴지더라도, 하루하루 각자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내던져버리지는 말기를 바란다.
다들, 각자의 멋들어진 무늬를 가진 10월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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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노래: Lucy - 내버려
'처음 온 길이라 넘어진 걸 어쩌라고'. 제가 이 노래 가사 중에 가장 통쾌하다고 느끼는 부분이에요! 호쾌한 보컬과 합이 좋은 가사라 더 그럴지도. 처음 온 길인데 좀 넘어지면 어떤가요. 서툴더라도 하나씩 해나가보겠다는 마음이 중요한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