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작고 귀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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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가 바뀌는 신기한 경험
여러분, 제 레터 썸네일에 있는 작고 귀여운 이 3인방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작년부터 알음알음 흥하다가 올해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먼작귀' 시리즈의 주인공들입니다. 일본의 '나가노' 작가에 의해 탄생한 이 시리즈는 원제가 '何か小さくてかわいいやつ'로, 이를 줄여 '치이카와'라고 부르는데요. 캐릭터들의 종족인 동시에 흰 햄스터처럼 생긴 주인공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번역하여 '먼가 작고 귀여운 녀석들'을 줄여 '먼작귀'라고 통용되고 있습니다. 트위터에서 몇 컷 만화로 시작했다가, 아주 짧은 애니메이션이 되고, 나아가 극장판까지 되었는데요. 사실 이렇게 작고 귀여운 녀석들은 이미 전세계에 넘쳐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먼작귀'가 이렇게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데에는 바로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전형적이면서도 특별한 점들 때문이겠지요! 특히 치이카와 종족은 우리가 한번에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를 쓰는 친구들도 있고, 어떻게 해도 인간은 번역할 수 없는 언어를 쓰기 친구들도 존재합니다. 바로 이 지점이 영상화가 되면서 큰 인기를 얻기도 했죠. 처음에는 저도 그냥 흔한 캐릭터겠거니 그렇게 생각을 하다가요, 점점 이 시리즈에 진심이 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이제까지 살면서 최애가 바뀐 적이 정말 손에 꼽을 정도였는데요. 이 시리즈와 관련해서는 거의 매일 최애가 바뀌는 것 같은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꼽자면 '랏코, 우사기, 쿠리만쥬'가 제 최애 3인방인데.. 여러분의 최애 친구들도 정말 궁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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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는 복수를 낳는다 ⚠️스포 주의⚠️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번 '먼작귀'의 극장판 <극장판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은 엄청난 흥행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데요. 이미 일본에서는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어쩌다보니 자막판과 더빙판을 모두 보게 되었는데, 두 번 모두 객석 대부분이 차 있는 걸 보니 한국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만약 이 영화가 그저 귀여움만으로 승부를 보았다면, 아마 이번 레터에서 굳이 다루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최근 마블 시리즈보다도 이야기 구성이 탄탄하다고 느꼈고, 영화를 보고 난 뒤의 만족감도 꽤 컸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영화의 줄거리를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하는데요. 아무래도 현재 상영 중인 영화인 만큼,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내용을 아껴뒀다가 다음에 열어보시는 것을 추천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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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주의⚠️
'먼가 작고 귀여운 녀석들' 대다수의 공통된 특성 중 하나는 바로 이들에게는 심각한 안전불감증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누가 보아도 수상하기 짝이 없는 '인어섬으로의 초대'에도 이들은 선뜻 응합니다! 그렇게 도착한 인어섬의 첫인상은 굉장히 화려합니다. 일본의 여러 축제(마츠리)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거리에는 포장마차 음식들이 가득하고, 섬에 도착한 치이카와 일행에게는 해변에 어울리는 패션까지 갖춰주죠. 하지만 마치 휴양지처럼 화려하고 평화로워 보이는 이 섬에는 무시무시한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바로 '세이렌'이라는 거대한 전설 속 존재가 살고 있다는 것이죠.
원래 이 세이렌은 3명의 인어와 함께 노래를 부르며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아끼던 인어 중 한 마리가 누군가에게 잡아먹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복수를 결심합니다. 범인이 밝혀질 때까지 섬의 주민들을 계속해서 잡아먹기로 한 것이죠. 물론 세이렌은 꽤나 포악한 존재였고, 주민들은 직접 요리한 음식을 세이렌에게 바쳐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세이렌은 작물이 빠르게 자라도록 돕는 등 주민들과 나름의 공생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요. 인어가 죽은 사건을 계기로 이 관계는 빠르게 무너집니다. 공생 관계는 순식간에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로 뒤바뀌고, 섬은 언제 누가 희생될지 모르는 공간이 되어버립니다. 결국 주민들은 세이렌의 학살을 막기 위해 다른 곳에 사는 치이카와 일행을 섬으로 유인합니다. 그렇게 꼬임에 넘어간 치이카와 일행이 세이렌과 직접 맞서게 되죠.
영화 후반부에는 마침내 인어를 잡아먹은 범인의 정체가 드러납니다. 그런데 그 사연이 꽤나 인상적입니다. 인어를 먹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말에 혹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영원한 생명을 필요로 했던 이유는 단순히 사사로운 욕망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세이렌의 부주의한 행동으로 목숨이 위태로워진 친구를 구하기 위해, 결국 세이렌이 아끼던 인어를 죽여야 했던 것이죠.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다른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고, 그 죽음이 다시 또 다른 생명을 앗아 가는 원인이 됩니다. 한 생명을 구하기 위한 선택이 또 다른 생명의 죽음을 불러오고, 그 죽음이 다시 복수의 명분이 되는 굴레. 익숙하면서도 좀처럼 벗어나기 어려운, 그리스 비극의 구조입니다.
마침 세이렌이라는 존재가 등장하기도 하고, 복수가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는 점에서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오디세이>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데요. 제가 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연상한 또 다른 작품은 바로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킬링 디어>입니다. 이전 레터에서도 짧게 소개한 적이 있는 것도 같은데요. 원제인 The Killing of a Sacred Deer는 '성스러운 사슴 죽이기'라는 뜻으로, 아가멤논이 아르테미스의 사슴을 죽인 죄로 자신의 딸 이피게니아를 제물로 바치게 되는 그리스 신화의 일화와 연결됩니다.
이처럼 세 작품은 모두 누군가의 잘못으로 발생한 피해와 그에 대한 보상,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반복되는 희생이라는 신화적 구조를 공유합니다. 특히 <킬링 디어>와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을 보면서 제가 비슷하다고 느낀 것은 세이렌이라는 캐릭터와 <킬링 디어>의 마틴이라는 인물입니다. 마틴은 자신이 아버지를 잃은 사건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이 제 가족을 죽이셨으니 선생님 가족 중 한 명도 죽어야 균형이 맞죠." 마틴에게 중요한 것은 단순히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그 죽음에 상응하는 대가가 반드시 치러져야 한다는 것이죠. 누군가가 생명을 잃었다면 다른 누군가의 생명 역시 희생되어야 하고, 그래야만 무너진 균형이 회복된다는 논리입니다.
이 지점에서 복수는 애도와 슬픔의 표현이라는 차원을 넘어섭니다. 물론 복수의 출발점에는 소중한 존재를 잃은 슬픔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수가 하나의 당위로 굳어지는 순간, 정작 그 슬픔은 뒷전으로 밀려납니다.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자신이 누구를 잃었는지, 그 상실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가 아닙니다. 자신이 입은 피해에 상응하는 대가를 누군가 반드시 치러야 한다는 규칙, 다시 말해 복수를 완수해야 한다는 의무가 남게 되는 것이죠. 세이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아끼던 인어를 잃은 세이렌의 슬픔은 분명 이해할 수 있는 감정입니다. 하지만 그 슬픔이 섬의 주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잡아먹는 행위의 정당성을 보장해 주지는 않습니다.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무고한 주민들까지 희생시키는 순간, 세이렌의 복수는 자신이 겪은 상실을 바로잡는 행위가 아니라 또 다른 상실을 만들어 내는 폭력이 됩니다. 그리고 그 폭력은 다시 새로운 복수의 명분을 제공하죠.
흥미로운 것은 이 과정에서 생명이 마치 계산 가능한 단위처럼 취급된다는 사실입니다. 한 생명이 죽었으니 다른 생명 하나가 죽어야 하고, 그래야 비로소 균형이 맞는다는 식입니다. 이처럼 생명을 저울 위에 올려놓고 그 무게를 계산하는 세이렌과 마틴은 단순히 복수를 수행하는 인물이라기보다는, 스스로 처벌의 규칙을 정하고 집행하는 초월적 존재, 나아가 신에 가까운 처벌자로 그려집니다. 이들에게 복수는 개인적인 감정의 표출을 넘어 무너진 균형을 회복하기 위한 필연적인 절차가 됩니다. (그렇기에 쿠키 영상에서의 세이렌의 모습은 더욱 기묘하게 다가오죠)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두 작품은 관객에게 익숙한 복수극과는 조금 다른 감상을 요구합니다. 복수를 행하는 자의 슬픔에 공감하고 그들이 응징에 성공하는 순간 카타르시스를 느끼게끔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복수가, 그 대가를 치르게 하는 일이 정말로 무너진 균형을 회복하는 것인지 되묻게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두 작품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복수의 출발점이 우리가 선뜻 '죄'라고 규정짓기 어려운 사건이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그 행위의 결과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며, 그 결과에 대한 책이밍 또 다른 희생으로 갚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두 작품은 바로 이 모호한 경계를 통해 계속해서 관객으로 하여금 고민하게끔 합니다. 누군가의 잘못을 판단하고 그에 합당한 대가를 정하는 일은 과연 누구의 몫일까요? 그리고 그것을 결정할 권리는 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귀여운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이토록 무거운 질문에 도달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어쩌면 <치이카와: 인어 섬의 비밀>이 단순히 귀여움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작고 귀여운 존재들의 모험 뒤편, 이 흥미로운 지점들에 집중한다면 영화가 품고 있는 또 다른 이야기들도 발견하실 수 있을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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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노래: 허윤진 - 해파리
오늘 마침 소개해드린 영화의 제목에는 '인어섬의 비밀'이라는 키워드가 있는데요. 마침 이 노래의 가사 중에서도 '고독한 바다의 비밀'이라는 부분이 있어 바로 연상이 되었습니다. 가을과도 잘 어울리는 이 노래를 추천드리며, 다음 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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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뽀시래기들
프랑스어로 '쁘띠'라는 단어는 작은, 귀여운 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요. 덕분에 이 단어가 장소나 물건의 이름 앞에 붙으면 원래 크기보다 작고 아기자기한 느낌을 더한답니다. 가평군에 위치한, 국내에 있는 작은 프랑스 마을을 쁘띠 프랑스라고 부르는 것처럼요. 비슷한 느낌으로 '뽀시래기'라는 말도 있는데요. 이는 원래 부스러기의 사투리지만, 작고 귀여운 사람이나 동물, 혹은 사물을 다정하게 이르는 신조어로 쓰이고 있습니다. 위에서 징징이 먼작귀 얘기를 했는데요. 이번 호는 뭔가 작고 귀여운 것들에 대해 편지를 쓸 예정이라 쓰면서도 벌써 즐겁네요. 이 편지를 읽는 구독자분들은 어떤가요? 굿즈나 이모티콘을 살 만큼 좋아하는 캐릭터가 있나요? 한교동이나 라부부, 몬치치 같은 유명 캐릭터들의 유행이 기억 나는데요. 저는 최근에는 푹 빠져있는 캐릭터는 없었지만 그래도 스테디하게 좋아하는 아이를 꼽으라면 농담곰인 것 같아요. 농담곰은 상기 이미지에 있는 캐릭터인데요! 하찮고 귀여운 이목구비를 갖고 있고, 꼬집으면 늘어날 것 같은 폭닥한 볼살의 소유자입니다. 또 썩소를 짓고 있는 표정이 인상깊어요. 농담곰과 치이카와(먼작귀)는 동일한 작가가 그린 캐릭터인데요. 탄생 배경이나 생김새에 약간의 차이가 있어서 개인적으론 구분하는 재미도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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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이 귀여운 것도 귀여운 것이니까
귀여운 것에 대해 쓰는 일은 언제나 즐겁습니다만 ... 막상 주제가 주어지니까 어떤 것을 얘기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더라고요. 최근에 읽은 책들 중에 귀여운 주인공이나 생명체가 등장하는 게 있었던가 싶기도 하고요. 그러다 떠오른 것이 이종범 작가가 운영하는 <스토리캠프>채널에서 진행했던 눈마새 설명회였습니다. 눈마새는 한국 판타지 장르의 거장, 이영도 작가의 시리즈 소설인 <눈물을 마시는 새>의 줄임말인데요. 세계관이 워낙 커서 피마새라고 불리는 <피를 마시는 새> 시리즈도 있답니다. 이야기가 조금 돌아갔는데 다시 토크 경로를 수정해보자면, 설명회를 듣다가 레콘 종족을 소개해볼까 떠올렸다는 일화입니다. 눈마새야 워낙 유명한 책이니 이미 읽어볼 분들은 읽어보셨을테고, 제가 굳이 나서서 영업하지 않아도 인연이 닿으면 언젠가 읽게 되실 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최근 프랑스 문학상도 수상했답니다! (틈새 영업)
레콘의 존재를 설명하기에 앞서, 이 세계는 인간과, 나가 그리고 레콘 같은 비인간 종족이 공존하는 세상입니다. 레콘은 쉽게 설명하자면 닭의 외형을 갖고 있구요.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몸은 인간형이나 어마어마하게 크고 얼굴엔 벼슬과 부리가 있고 온몸은 깃털로 뒤덮힌 종족이에요. 닭 인간(?)이라는 칭호가 더 어울리려나요. 우리가 눈마새 시리즈에서 가장 자주 접하는 레콘의 이름은 '티나한'인데요. 호승심이 뛰어나고 싸움 걸기를 좋아하는 종족입니다. 이들에게는 독특한 '성인식'의 방식이 있는데요. 바로 최후의 대장간이라는 곳에 가서 무기를 받아오는 것이에요. 평생 쓸, 매우 뛰어난 무기를 받는 것이 곧 레콘에게는 어른이 되었다는 의미인 거죠.
그 외에 한 가지 레콘만이 가지는 독특한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물'을 굉장히 무서워하는 건데요. 어느 정도냐면 물이 들어간 호리병만 봐도 공포에 벌벌 떨 정도고, '물'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기절하는 레콘도 있답니다. 마치 해리포터에서 볼드모트를 제대로 부르지 않는 것처럼, 레콘들 사이에선 물을 칭할 때 '그것', '녹은 얼음' 같은 완곡한 단어를 쓰기도 하는 점이 웃기지 않나요? 그런데 티나한은 레콘들 중 드물게 물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고 진정한 용사가 되는 인물입니다. 후속작인 <피를 마시는 새>에서는 가히 최고의 레콘이라는 칭송을 받기도 한다고 기록돼있어요. 이 극복의 여정은 정말 길고 긴 이야기라 직접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만, 저는 성격도 급하고 싸움을 걸면 절대 지지 않으려고 하는 이 레콘이라는 종족이 물을 무서워한다는 게 책을 읽는 내내 참 귀여운 포인트였거든요. 대장정이 워낙 길다보니 읽는 내내 이 인물, 저 인물에게 감정 이입을 하며 읽게 되는데도 그 부분만은 뚜렷하게 기억에 남았던 것 같아요. 아마도 그 부분이 주는 '갭 차이' 때문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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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노래: 그래쓰(Grass) - 와락
10월이 되면, 가을이 오면 들으려고 플레이리스트에 아껴놓은 곡. 드라이브나 산책을 하며 들으면 좋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