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을 말하고 싶지 않을 때
작성자 방구석디제이
방구석 DJ
끝을 말하고 싶지 않을 때

✂️끊어내지 않으려는 노력
여러분, 안녕하세요. 긴급한 휴재 이후 오랜만에 돌아온 징징입니다.
변명을 하자면, 올해 연말은 정말 정신이 없고 휘몰아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사실 얻는 건 딱히 없는데 정신 놓고 있다가 잃어가는 것들을 부랴부랴 끌어안느라 바쁘다고나 할까요.. 이 '방구석 DJ'도 그 중 하나인데요. 세상엔 좋은 영화나 책이 넘쳐나고, 또 그것을 널리 알리고픈 사람들도 많습니다. 요즘은 여러 방법을 통해 이런 컨텐츠들이 빠르고 거대하게 만들어지고 있어요. 저보다 더 큰 애정과 더 좋은 글빨(?)들을 접하다보면 조금 작아지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특히 지금처럼 시간이 없을 때는 이걸 이어가는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럼에도 매정하게 끊을 수 없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요. 그 중 하나는 그냥 그러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여기서 끝내고 싶지 않은 마음, 조금은 더 해보고 싶은 마음. 별 거 아닌데 이 마음이 계속 밟혀서 지금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이런 긴급한 휴재가 없게끔 좀 더 노력을 해봐야겠지요! (하지만 마음의 세계와 능력의 세계에는 다소 괴리가 있음을 알려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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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을 말하고 싶지 않을 때
주변에서 좋다고 노래를 부르던 한 영화를 최근에야 봤습니다. 아버지 '류이치 사카모토'를 따라 '소라 네오'보다는 '네오 소라'라고 더 많이 불리는 감독의 <해피엔드>입니다. 곧 다가올 어느 날의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영화에서는 학생들이 주인공입니다. '유타', '코우', '아타', '톰', '밍'은 음악으로 모인 5명의 친구들로, 이 날 밤에도 클럽에 몰래 잠입하여 음악을 감상하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역시 모든 것은 계획대로 되지 않고 갑자기 나타난 경찰의 단속을 피해 교복자락을 휘날리며 밤거리를 달려나갑니다. 이때 카메라는 질주하는 5명의 청춘의 뒷모습을 비추는데요, 문득 화면이 정지합니다. 레터메일 상단에 있는 포스터가 바로 그 장면인데요. 달리고 있는 아이들의 발을 희미하게 처리함으로써 마치 공중에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오프닝 시퀀스는 이른바 '프리즈프레임'으로 시작되는데요, 영화에도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우리의 마음속에도 멈칫- 균열을 준 이 장면은 이윽고 다시 재개되는 움직임에도 여전히 오묘한 느낌을 줍니다.
동아리실에 모여 서로 좋아하는 음악을 나누며 밤을 꼴딱 새는 것, 친구를 축하해주기 위해 깜짝 파티를 준비하는 것, 내 생각을 이해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미래를 도모하는 것 - 어떤 순간들은 영원히 한 장면에 가두어 간직하고 싶은 순간들이지만 영화가 그러하듯이 우리의 삶 또한 프리즈프레임으로만 그려낼 순 없을 것입니다. 영화 속 아이들은 저마다의 열병을 앓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의 열병은 동시에 사회의 열병이기도 합니다. 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거리에는 외국인 추방을 부르짖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네오 파시즘을 지향하는 총리가 당선되고, 학교에서는 '순수 일본인'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을 차별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재일교포 출신으로서 앞으로의 진로에도 많은 고민을 안고 있는 '코우'가 가장 큰 열병을 앓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코우는 참 입체적인 인물인데요. 자신이 겪는 부조리함에 큰 분노를 느낀 코우는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후미의 도움으로 거리에 나가 시위를 하기도 하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교류를 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대학생으로서의 미래를 꿈꾸는 코우는 장학금 지원이라는 현실적인 문제 또한 맞닥뜨립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벽을 부수고 나가야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테지만, 동시에 그 벽 속에서 조용히 있어야만 안전한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것이죠.
이런 그의 흔들림을 알아채는 것처럼 계속해서 '지진'이 등장합니다. 모든 것이 흔들리고 떨어지고, 그리고 아직 찾아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경보음으로 불안을 자아내고야 마는 이 지진. 세상의 모든 것들이 흔들리고 있는 것 같은데, 코우가 보기에 이른바 절친 '유타'는 그저 홀로 멍하니 서 있습니다. 매일 장난칠 생각만 하고, 아직도 음악에만 빠져 사는 철부지인 것 같은 유타. 아주 어릴 적부터 친구로 지냈건만 왜 자신만 훌쩍 어른이 되어 버린 것 같을까요? "유타는 예전이랑 똑같아." 심지어 유타는 '순수 일본인'이라 그런지 코우의 이러한 복잡한 상황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만 같습니다. 결국 코우와 유타는 점점 멀어지지만, 코우가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 유타는 코우에게 지진과 같은 흔들림을 선사합니다.
얼마 전 유타와 코우는 교장을 골탕먹이고자 차에 '못된 장난'을 저질렀는데요. 이에 격분한 교장은 범인을 찾고자 전교에 AI 감시 시스템을 도입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는 '판옵티콘'에 분노한 학생들은 결국 전쟁을 선포하고, 지난한 투쟁 끝에 교장은 그 일을 저지른 범인만 색출된다면 이 시스템을 철회해주겠다며 범인의 자수를 종용합니다. 불의를 위해 목소리를 내려고 했던 코우, 그러나 여기서 자신이 범인임을 들킨다면 장학금도, 대학도, 나아가 자신의 미래에도 큰 이상이 생길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때, 유타는 갑자기 훌쩍 강단에 올라가 이렇게 말합니다. "제가 그랬고요, 다 장난이었어요~~!" 철없는 유타의 성격을 그대로 담은 듯한 이 말의 무게는 사실 제법, 아니 매우 무겁습니다. 결국 유타는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고 이내 집에서 쫓겨나 강제 독립을 하게 됩니다. 불의에 분노하며 그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유타에게 화를 내던 코우, 그리고 그런 코우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행동하는 유타. 이분법적으로 나뉘지 않는 이 복잡한 관계와 생각들이 영화 내내 지진처럼 우리의 머릿속을 흔들어댑니다.
유타를 제외한 아이들은 졸업을 맞이하고, 이제는 성인이 되어 각자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졸업식이 끝나고, 아버지의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다며 일본에서의 생활을 접고 미국으로 떠나는 '톰'을 마지막으로 배웅한 뒤, 코우와 유타는 영화 초반에 함께 걸었던 육교 위를 또 다시 함께 걷습니다. 육교의 저편에는 마지막 갈림길이 놓여있습니다. 유타와 코우는 미적미적 걸어갑니다. 영화 초반 이 육교에서 떠나가라 '사랑한다'고 말하던 유타의 외침은 이미 희미해졌습니다. 지금 이 육교의 갈림길을 나선 뒤에도 코우와 유타는 아마도 계속 만날 것입니다. 그리고 서로의 '어른'으로서의 일상을 공유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 무엇도 이전과는 같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육교의 끝에 다다르고, 끝을 말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왔습니다. 이때, 감독은 시간을 잠시 멈추어둡니다. 영화의 오프닝에서처럼 프리즈프레임으로 이 순간을 담아냅니다. 물론 이 잠깐의 멈춤의 시간은 지나고 둘은 갈림길을 지나 각자의 길을 걸어가겠지만, 그 수많은 지진조차 방해할 수 없는 아주 찰나의 멈춤이 선명하게 빛을 발합니다. 끝을 말하고 싶지 않은 순간, 그리고 그런 순간을 유예하고 싶은 마음. 우리 또한 때때로 마주하는 이 무언가에 대해 잘 담아낸 이 영화를 오늘 여러분께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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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노래: 솔리드 - 이 밤의 끝을 잡고
끝을 잡고 싶은 마음을 가득 담은 이 노래를 추천드립니다!
1995년의 솔리드 버전도, 2015년 황치열과 리싸의 버전도 좋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