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無酌定)(2)

무-작정(無酌定)(2)

작성자 방구석디제이

방구석 DJ

무-작정(無酌定)(2)

방구석디제이
방구석디제이
@bangkokd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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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 잘했다!

요즘 단축 근무가 끝난 저는 우울한 주중을 보내고 있습니다. 꾸역꾸역 6시까지 간절히 퇴근을 기다리는 마음가짐 하나로 하루하루를 나고 있는데요. 그런 와중에도 저의 오랜 취미인 '극장에서 영화보기'를 하려면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가야만 하죠. 사실 영화라는 것은 가서 즐기는 모든 취미 중 단연코 취소가 가장 쉬운 편이라, 너무 피곤하면 1시간 전에도 쉽게 취소를 하곤 합니다.

이 영화, <스탑 메이킹 센스>를 보기로 한 날도 그랬습니다. 꽤 피곤했고, 심지어 영화 시작 시간이 8시 20분이었기에, 6시에 퇴근 후에도 2시간이나 기다렸다가 영화를 봐야했기에 취소 가능한 시간까지 내내 고민을 했더랬죠. 하지만 항상 영화를 보고 난 후의 감상은 동일합니다. "보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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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흔들어 봐

늦은 저녁인데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극장은 아주 사람들로 꽉 찼고 왠지 모르게 활기가 넘쳤습니다. 아무래도 이 영화가 '토킹헤즈'의 무대를 담은 영화이기 때문이겠죠! 영화가 시작하고 데이비드 번이 홀로 기타를 맨 채 등장하자 곳곳에서 열광적인 박수가 터져나왔습니다. 스크린 너머가 아닌, 바로 제 앞 뒤에서요! 싱어롱 상영회도 아닌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처음엔 어색하고 조금 낯선 느낌을 받았지만, 이윽고 무대가 시작되자 이 또한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영화는 마치 연극무대 같았습니다. 처음 데이비드 번이 아주 유명한 노래 '사이코 킬러'를 열창한 뒤, 멤버들이 무대마다 한 명씩 추가되었죠. 아무것도 없던 단출한 무대가 가득 차고 이윽고 벌어지는 무대들은 극장의 의자들이 모두 들썩거리며 춤을 추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거대한 슈트를 입은 데이비드 번이 등장하는 장면이나, 멤버들이 함께 무척이나 특이한 춤을 절도있게 추는 장면에서는 아주 열광적인 환호성들이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오곤 했습니다. (나중에 영화가 끝난 뒤 받은 잡지를 살펴보니, 이러한 춤은 일본의 연극 영향을 받은 것도 같더군요!)

몇 년 전, '퀸'을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아주 큰 인기를 끈 적이 있었는데요. 거기서도 우리가 아는 다수의 무대들이 등장하긴 했지만, 그때의 퀸은 배우들이 재연을 했으며, 무대 이외의 퀸의 여러 모습들을 보여주기 위한 이야기들이 삽입되어 있었죠. 하지만 이 <스탑 메이킹 센스>는 제작 당시 오직 '토킹 헤즈'의 실험적인 무대에만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열광하는 청중들의 모습도 거의 비추지 않은 채 오로지 무대만을 보여주며 80여 분을 이끌어갑니다. 호흡이 굉장히 빠르기에 점점 기분이 고조됨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제가 종종 콘서트장에서 느낄 수 있었던 그 열기가 이렇게 스크린을 통해서도 쉽게 전달된다는 점이 아주 놀라웠던 것 같습니다.

저는 함께 영화를 본 다른 사람들처럼 크게 몸을 움직인다거나 환호성을 지르기에는 다소 소심한 성격이라 손가락이나 발가락만 까딱거리면서 영화를 즐겼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의 일부를 아무렇게나 흔들어보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신이 났고 또 공간 내의 사람들과 그 즐거움을 잘 공유한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비록 2020년대의 '토킹헤즈'는 더 이상 없고, 그들의 새로운 노래가 나올 일도 없지만 그래도 과거의 아주 살아있는(?) 토킹헤즈의 무대를 보고 있자니 마치 제가 경험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지독한 향수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이 영화를 상영하는 곳은 이제 별로 없고, 또 상영 시간도 즐기기에 적당한 시간이 아닐 순 있겠지만, 무작정 아무런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이 영화, 꼭 극장에서 보실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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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노래: Talking Heads - Take Me to the River

제가 영화를 보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무대가 바로 이 노래였기에 추천드립니다!

(사실 토킹헤즈 노래 중 제 최애 노래는 'What a day that was'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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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과 질투

무언가를 잘 하는 사람을 보면서 질투를 느낀 적 있나요? 저도 당연히 살아오면서 그런 감정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열등감이나 질투를 느끼는 분야야말로 당신이 정말 잘 하고 싶은 일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떠올립니다. 맞는 것 같아요. 왜냐면 전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을 늘 부러워했거든요. 잘 쓴 문장을 보면 질투가 났고요. 가장 부러운 건 '솔직하게 쓸 줄 아는' 사람들이었어요. 숨기지 않고, 거침없이 뻗어나가는 글을 보면 진심으로 동경했습니다. 저는 절대 쓰지 못할 것 같단 생각이 들어서가 아니었을까 해요. 적당히 정제된 언어로 서사를 이끄는 게 작가의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한 말이죠. 

예전부터 북마크 해두었던 책을 하나씩 꺼내 읽는 요즘, 날것의 언어로 쓰인 글을 볼 때마다 아주 솔직한 부러움을 느낍니다. 상당히 자기고백적인 서두가 되어버렸군요. 저도 언젠가는 내면의 억압(?)을 탈피해서 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할 수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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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긋한 오렌지와 날이 무딘 빵칼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작품을 골라서 선보이는 무-작정(無酌定) 큐레이팅 기회를 두 번이나 얻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이번 호는 청예 작가님의 <오렌지와 빵칼>을 소개하려고 해요. 이 책이야말로 정말 거침없이 쓰인 소설인데요. 우리 모두 선하고 바른 길을 택해야 한단 건 알지만 쉽지 않을 때가 있잖아요. 이를 테면 마트에서 공정 무역 커피와 일반 커피의 구매 사이에서 갈등하게 될 때라든가. 플라스틱 빨대가 환경을 해치는 건 알지만 솔직히 편리하다는 생각 때문에 남몰래 몇 번 쓴 적이 있다든가. 다회용기 포장을 하는 타인을 보고 '멋지다'고 생각하지만, 스스로 실천하진 못해서 자괴감이 들었다든가 하는 경험들이요. 주인공 '영아'는 그 '선함'의 밧줄에 묶여 자유롭지 못합니다. 이는 영아에게 끊임없이 어떤 행동을 바라고,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 '실망이야' 반응을 내비치는 '은주'란 인물이 옆에 있기 때문이기도 한데요. 은주는 영아가 재밌게 보는 웹툰 작가가 11년 전 표절 사건에 휘말린 적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 (소설 속에서 이 사건은 당사자들 간의 대화와 사과로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 영아를 나쁜 사람 취급합니다. 그간 영아는 은주가 서명하라는 모든 국민청원에 동의하고,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들을 후원했어도 웹툰을 본 5분이란 시간 때문에 죄책감에 사로잡히죠.

이 소설은 그런 '경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입체적인 존재잖아요. 단면만 보고 타인을 판단할 수 없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고요. 은주는 영아를 다면체로 인식하지 않고, 영아는 그로 인해 결국 뇌에 '자유'를 부여하는 시술을 받습니다. 이렇게 하면 안 돼, 저렇게 하면 안 돼 라는 머릿속 판사님의 입을 다물게 해버린 거죠. 그리곤 엄청난 해방감을 느낍니다.

읽으면서 저는, 이야기 속 '은주'가 저와 닮은 인물이어서 스스로의 행동을 많이 돌아보게 됐습니다. 작가의 말에서 청예 작가도 "나는 오랜 시간을 '은주'라는 인물로 살았다. '영아'는 그런 내가 만든 스스로의 안타고니스트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뒤이어 "어떤 분은 이 글을 '배설'이라고도 했다. 통제와 자유라는 상반된 가치를 세련되게 표현하는 길이 있었을 것이다. 건드려봣자 욕밖에 더 먹지 않는 코드는 최대한 배제하고서. 얼마든지 안전하게 쓸 방법이 있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내가 쓰고 싶은 글은 결국 <오렌지와 빵칼>이지 다른 무언가가 아니었다." 라고도 밝혔습니다. 솔직하고, 과감한 문체로 쓰인 글을 보고 질투가 나는 건 바로 그 글이 하고 싶은 말을 망설이지 않고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글을 읽고 어떤 생각을 하실지 궁금하군요! 

끝으로 작가의 말 마지막에 나온 구절을 함께 바칩니다. "당신이 조금 덜 도덕적이어도 나는 당신을 좋아할 수 있다. 이해할 수도 있다. 나 또한 그런 인간이니까. 그러니 타인을 마주하는 일에 괴로움이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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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노래: 기현(MonstaX)-SURF

최근 종영한 드라마 <트라이>의 OST였던 곡을 소개합니다. 스포츠물 가뭄인 시점에 내린 단비같은 작품이라 유치한 부분이 있어도 함께 울고 웃었던 좋은 드라마였어요. 청춘 드라마가 그리웠던 분들에게 추천드립니다! 

🔮오늘의 행운 메시지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