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장 變裝

변장 變裝

작성자 방구석디제이

방구석 DJ

변장 變裝

방구석디제이
방구석디제이
@bangkokd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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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장'이라는 것

비록 이 방구석 DJ의 공간은 80% 저희 DJ들의 지인으로 이루어진 공간이긴 합니다만, 한 DJ만 알고 있거나 혹은 두 명을 모두 모르지만 우연히 이 글을 읽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제 생각이나 글을 보이는 것을 순수한 기쁨이나 설렘으로 여기곤 했었는데요, 매주 글을 쓰게 되면서 어쩌면 조심스럽고 부끄러운 마음도 커지는 것 같습니다. 왠지 모르게 저는 어릴 때부터 일기에도 솔직한 마음을 쓰기가 어려웠는데요, 누군가 제 일기를 몰래 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정말 나쁜 생각이나 슬픈 마음들은 일기장에도 쓰지 못한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이 방구석 DJ에서도 사실 마찬가지예요. 날것의 제 생각을 옮겨쓰기보다는 조금 글을 굴리며 매끄럽고 안전한 무언가로 만들기 위해 매주 애를 쓰고 있어요. 어쩌면 제 글은 일종의 변장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것을 느낄 때마다 더욱더 '갈고 닦아져' 세상에 편입되고 있는 저를 발견하게 되는데요. 어릴 적 우스꽝스러운 콧수염이나 선글라스와 같은 변장도구를 친구들과 장난삼아 사서 가지고 놀았을 때, 순수하게 그저 웃기거나 웃고 싶은 마음뿐이었다면, 지금 와서 이런 변장도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는 저 자신을 숨기고 싶어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 제가 소개해드릴 영화, <토니 에드만>에서는 이 변장이 굉장히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는데요. 3시간에 가까운 아주 긴 러닝타임에다가, 간혹 보다가 소리를 지르고만 싶은 장면들이 이어지는 독특한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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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증이라는 단어로는 설명되지 않을

제가 아주 좋아하는 독일 명배우 '산드라 휠러'가 주인공인 이 영화는 보는 시각에 따라 정말 평이 달라지곤 합니다. 어디서는 '가족간의 화해'로 읽히지만, 다른 한 편에서는 '가족간의 넘을 수 없는 벽/강'으로 읽히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크게 2명인데요, 바로 산드라 휠러가 연기한 딸 '아네스'와 그의 아버지 '빈프리트'입니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설명하자면 사실 아주 간단합니다. 1달의 휴가를 받은 아버지가 루마니아의 국제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는 딸을 만나기 위해 독일로부터 여정을 떠납니다. 하지만 아주 바쁜 딸 아네스는 갑자기 찾아온 아버지를 맞이할 겨를이 없고 결국 며칠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다시 독일로 떠나고, 아네스를 루마니아에 남아 일상을 계속 살아갑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났다면, 러닝타임이 3시간이 되지 않았겠지요!

어느날 문득 아네스는 충격적인 사건을 맞닥뜨리는데요, 독일로 돌아간 줄 알았던 아버지가 '토니 에드만'이라는 사람으로 변장해서 자신을 따라다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항상 장난기가 가득하던 아버지의 또 다른 장난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 '토니 에드만'이 며칠이고 계속해서 자신의 생활에 사사건건 침입하면서 아네스는 점차 미칠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낍니다😅 이상한 더벅머리 가발에 뻐드렁니 가짜이빨을 끼운 '토니 에드만'은 자신이 독일 대사관에서 일한다고도 하고, 유명한 테니스 선수의 친구라고 하기도 하고, 컨설턴트 회사에서 일하는 프리랜서라고 자신의 신분을 바꿔끼우며 계속해서 아네스의 주변 사람들과 교류를 맺습니다. 커리어우먼으로서 성공하고 싶은 아네스에게 이런 아버지의 행동은 굉장히 부정적인 결과들을 연속해서 낳는데요, 그에 괴로워하는 딸을 보며 아버지는 "'너는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냐"며 묻습니다. 그런데 이 단순하고도 짧은 질문은 영화 너머의 우리에게 굉장히 복잡한 느낌을 주는데요, 사실 행복이라는 것이 굉장히 주관적이기도 하고 추상적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느라 아버지와 온전한 하루를 보낼 수 없다고 해서, 그건 불행한 삶일까요? 혹은 아버지처럼, 다른 모든 것들을 뒤로 한 채 장난과 유머로 가득한 일상을 산다고 해서 그것은 과연 행복한 삶일까요? 우리는 영화를 보다보면, 마치 아버지가 이상적이고 행복한 인생을 사는 것만 같고, 일에 치여 바쁘게 살아가는 딸 아네스를 보면 불행한 인생을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언제나 변장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 아버지 '빈프리트'입니다. 삶의 여러 무거운 면면 사이에서 결국 아네스는 자신의 생일파티를 '나체파티'로 개최하게 되는데요. 의도한 것은 아니고, 토니 에드만의 출현 이후 점점 꼬이기 시작하는 자신의 일상의 무게에서 벗어나고자 해본 일종의 '미친 짓'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민낯을 한 딸 아네스의 앞에 등장하는 것은 그저 우스꽝스러운 분장이 아닌,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갗은 전혀 볼 수 없는 털슈트로 무장한 아버지 '빈프리트'였죠. 자신이 누구인지도 밝히지 않고 아네스에게 생일축하 꽃다발을 건넨 채 떠나는 아버지를 아네스는 쫓아가 불러세워 껴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자신을 뒤덮은 털을 벗지 않고 자리를 뜨는 아버지, 그리고 그런 아버지의 눈물과 노력의 여정 속에서 우리는 굉장히 복잡한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앞서 솔직할 수 없거나 자기 자신을 숨기기 위해 변장도구가 필요하다는 말을 했었는데요, 아버지 빈프리트의 분장을 보고 있으면 계속해서 그런 생각이 떠오릅니다.

사실 아까부터 계속 복잡하다는 말만을 반복하고 있는 느낌이 드는데요, 저도 이 영화를 어떤 마음으로 마주해야 할 지 잘 갈피가 잡히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조금 긴 영화이긴 하지만, 아주 독특한 이 영화를 여러분도 한 번 도전해보셨으면 좋겠네요!

이 영화는 아버지와 딸의 관계에 대한 영화라고 볼 수도 있지만, 아버지가 속해 있는 '독일'과 딸이 일하고 있는 '루마니아'와 같은 국제 정세에 대한 은유가 가득 담겨 있기도 하고 또 아버지와 딸에 다른 무언가를 대입해서 해석하는 다양한 견해들이 있으니 자유롭게 영화를 감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 딸 아네스가 어쩌다보니 음악선생님인 아버지의 피아노 연주에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 'Greatest Love of All'이라는 노래를 열창하는데요. 이 순간에 대해서도 여러 방향으로 읽히곤 합니다. 저는 끝까지 강압적이고 일방적인 아버지의 빗나간 노력들 속에서 그런 아버지를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그런 아버지이기 때문에 괴로워하는 딸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는데요. 여러분은 어떻게 이 장면을 읽어내실지도 정말 궁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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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노래: 찬민 - 낙하

영화에서 아주 중요하게 등장하는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 'greatest love of all'와 함께 추천드리고 싶은 노래를 들려드립니다. 가사가 이 영화와도 좀 닿아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번 주는 두 개의 노래를 들려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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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기고 싶은 모습

저는 '변장'이란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도구가 있습니다. 바로 가면인데요. 제가 고등학생 때 한창 '복면가왕'프로그램이 유행했습니다. 학교 축제에서도 복면가왕이 열렸는데요. 무슨 용기였는지 그 코너에 제가 덜컥 참가 신청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공부에 너무 지쳤던 탓이었을까요? <오페라의 유령>에 나올 법한 요상한(!) 가면을 쓰고 축제 무대에 올라 신나게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노래를 불렀죠. 신기할 정도로 용기가 솟고 스트레스가 풀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느꼈던 것이, 익명 뒤에 숨으면 용기가 생긴단 사실이었어요. 변장을 하고 다른 존재가 될 때 생기는 대담함이 있구나! 그 사실이 묘하게 해방감을 주었답니다. 

저는 요즘 자주 <인사이드 아웃2>에 나오는 불안이가 되곤 하는데요.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여기서의 실패가 꼭 타인의 삶처럼 느껴져 아무렇지 않기도 하답니다. 외국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엔 단점이 훨씬 많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돌아갈 곳이 있어서 용기가 불쑥 솟기도 해요. 징징이 이야기한 것처럼 저도 이 글에 완전히 솔직한 마음을 담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여러분이랑 심적 거리가 가깝기에 쉬이 못 털어놓는 이야기들도 많이 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답니다! 언제나처럼 한 주의 시작과 함께할 이번 호도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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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로부터

이번 주엔 절판이 예정됐단 소식을 듣고 간만에 다시 꺼내 읽은 책, <어떤 물질의 사랑>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방구석DJ 글을 쓰면서 천선란 작가님을 많이 언급했고 이 책도 한번쯤은 이미 얘기를 했을 텐데요. 그럼에도 재차 소개해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전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 중 <레시>를 가장 좋아하지만, 오늘은 표제작인 <어떤 물질의 사랑>을 깊이 들여다 보려고 해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라현'은 자라면서 자신이 남들과는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우선 배꼽이 없고, 생식기도 없고요. 덕분에 라현은 사회에서 규정하는 남성/여성의 범주에서 벗어난 존재가 됩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주인공이 인간으로 '변장'하고 인간 사회에 녹아든 사랑스런 존재로 느껴졌습니다.

탄생부터 신비로운 우리의 주인공은 애정을 주고 받는 방식도 독특합니다. 사랑하는 이를 만나면, 그를 사랑하는 동안은 그 사람의 성별을 따라가게 된다는 설정도 아주 흥미롭습니다 ("너는 남자가 될 거야. 민혁이를 사랑하는 동안,") 엄마는 라현에게 이 모든 비밀을 알려줍니다. 저는 라현이 '정체성'을 고민하는 그 모든 과정이 참 아름답게 느껴졌는데요. 그건 옆에서 라현에게 '나'로 태어나 '나답게 사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차분히 알려주는 엄마라는 존재가 있어서였습니다. '나'라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일이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잖아요? 그래서 더욱 와닿았던 것 같아요. 

"라현아, 끊임없이 사랑을 해. 꼭 불타오르는 사랑이 아니어도 돼. 함께 있을 때 편안한 존재를 만나. 그 사람이 우주를 가로질러서라도 너를 찾아올 사랑이니까."

"응, 그럴게."

"너는 지구인이니까. 네가 이곳에서 태어났으니까. 지구인일 수도 있고 외계인일 수도 있지만 그건 걱정 마. 이곳에 있는 모두가 서로에게 외계인이니까."

"응, 알겠어."

"결국 너는 너야. 끝까지 무엇이라고 굳이 규정하지 않아도 돼."

무엇이든 규정 짓기 좋아하는 사회를 살아갈 때마다 '나는 반드시 이래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 쉽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럴 때마다 '결국 너는 너야. 끝까지 뭐라고 규정짓지 않아도 돼'라는 말이 큰 위로가 되어주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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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노래: 박문치 - 그 해 이야기

오랜만에 다시 꺼낸 책 처럼, 이 노래도 간만에 플레이리스트에서 발견해 돌려 듣고 있답니다. 전주가 인상적인 곡이에요.

🔮오늘의 행운 메시지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