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알고 너는 모르는
작성자 방구석디제이
방구석 DJ
나는 알고 너는 모르는


-
🚶스쳐지나가는 사람들
이번주도 열심히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요, 저는 버스에서 보통 자거나, 핸드폰을 하거나 창밖을 보며 노래를 듣습니다! 이번주에는 좀 기력이 없었던 터라 창밖을 멍하니 보는 시간이 많았는데요. 그러다가 거리에서 두 명이나 아는 사람을 발견했습니다. 친한 사람이었다면 연락을 해서 반갑게 목격담(?)을 나눴겠지만, 한 명은 저만 알고 있는 유명인이고, 한 명은 이런 일로 연락하기에는 조금 공적인 사이인지라 아쉽게 저만 아는 사건이 되어버리고 말았죠. 누군가는 거리에서 걷는 저를 그렇게 발견하기도 했겠지만 차마 저에게 연락을 할 수 없는 사람도 분명히 있었을테지요. 서울 길거리에는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다니고 있지만, 그 속에서 아는 사람을 발견하는 것도, 그리고 그 발견이 서로를 향하는 것도 꽤 드문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이른바 나는 알지만 너는 모르는, 영화에서는 나아가 관객은 알지만 인물은 모르는 그런 사건들이 종종 하나의 거대한 플롯이 되기도 하는데요. 제가 이번에 소개해드릴 이 영화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 됩니다.
-
🛏️애정이 생기지 않는 세상 속에서 외치는 만세
저도 많이 본 것은 아니지만, 소위 '대만 뉴웨이브' 시기의 영화들을 저는 정말 좋아하는데요. 마침 '서울아트시네마'에서 그 시절 영화 중 하나인 차이밍량 감독의 <애정만세>를 상영한다고 해서 기쁜 마음으로 달려갔습니다. 많지 않은 대사에 대비되는 롱테이크 씬들이 인상적인 이 영화의 주인공은 총 3명인데요. 납골당 영업사원인 '소강', 부동산 중개업자인 '메이', 길거리에서 옷을 파는 '아정'이 그 주인공입니다. 소강은 영업을 다니던 중 우연히 열쇠가 꽂혀있는 한 아파트 집을 발견하게 되고, 그 열쇠를 훔칩니다. 그리고 그 아파트에서 몰래 생활하기 시작합니다. 빈집이라 부동산 중개업자만 조심하면 될 것 같은데, 바로 그 부동산 중개업자인 '메이'가 종종 이 집에 찾아오곤 합니다. 길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아정'과 소위 섹스파트너가 된 메이는 이 빈 아파트를 이용하곤 하죠. 방이 여러 개이고 층도 2층으로 되어 있는 이 집에서 알 수 없는 기묘한 동거가 시작됩니다. '메이'에 의해 이 집을 알게 된 '아정', 그 또한 이렇다 할 집이 없어 이 집에서 머물게 됩니다. 처음엔 서로 경계하며 갈등이 일어날 뻔 하다가도 서로 또래에다, 이 집을 이용하려는 목적이 같다는 것을 알게 된 '소강'과 '아정'은 '메이' 몰래 이 집에서 함께 살아갑니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여러 일들이 굉장히 코믹하게 그려지기도 합니다. 메이가 이 집에 들러 침대에서 낮잠을 자고 있을 때 메이가 들어올 떄 급하게 침대 밑에 숨어있던 '아정'은 급하게 나가다가 똑같은 처지의 '소강'을 마주치고 서로 깜짝 놀라는 장면에서는 저도 모르게 소리내서 웃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들이 왜 이렇게 살아가는 걸까요? 80년대의 대만에는 실제로 빈 아파트나 건물들이 많았다고 하는데요, 아무래도 차이밍량 감독은 그 시절의 대만의 사회상을 영화에 녹여낸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청춘을 상징하는 3명의 인물이 아주 공허하고도 단편적인 삶만을 영위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 어딘가 모르게 굉장히 슬퍼지고 쓸쓸해지기도 합니다. 3명의 인물 중 가장 먼저 등장했던 '소강'은 사실 이 빈 아파트에서 자살시도를 했었는데요. 갑자기 들이닥친 '메이'와 '아정' 때문에 그 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결국 '소강'은 나머지 2명과 함께 또다른 오늘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절대 희망적인 어조는 아닙니다) 이렇게 내일에 대한 기대가 완전히 사라져버린 듯한 3명의 모습은 마지막 메이의 롱테이크 씬에서 극대화되는데요, 마지막 씬은 5분 넘게 그저 메이가 울기만 하는 장면입니다. 참으려고 하지만 자꾸 터져나오는 메이의 눈물을 보고 있으면 같이 엉엉 울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나는 알고 너는 모르는' 사건으로 인해 생긴 이 영화의 결말은 우리에게 결국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는' 미래를 보여주는데요, 혹시 그 시절의 대만, 그리고 그 유명한 차이밍량의 영화에 도전해보고 싶으신 분들이라면, 이 <애정만세>를 먼저 보시는 것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
🎵오늘의 노래: 무한궤도 -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최근 빠져있는 이 노래를 소개해드립니다. 요즘 여러분의 최애 노래는 무엇인지도 궁금하군요!

-
👀거리 위의 사람, 사람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일은 남다른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더욱 깨닫는 요즘입니다. 이번 주는 갑자기 일이 몰아쳐서 쉴 새 없이 달렸는데요. 신기하게도 그러다보니 위에 징징이 쓴 것처럼 외출을 나가면 대중교통 안에 앉아서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일이 잦았습니다. 거리 위의 무수한 사람들을 구경하면서요.
어제는 재외국민 선거가 있어서 처음 가보는 동네에 트램을 타고 다녀왔습니다. 가는 길에 큰 공원이 있었는데요. 길게 뻗은 산책로를 따라서 한 사람은 주머니에 양손을 넣고 자전거를 타고, 뒤따르는 사람은 스마트워치를 보면서 러닝을 하더라고요. 둘은 서로를 모르겠지만 우연히 둘을 함께 본 저는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났답니다. 아마도 그 둘의 모습이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공원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라 그랬던 것 같아요. 그리고 나서 투표소에 도착했는데 간만에 모국어의 홍수 속에 서 있으니 참 신기했답니다. 아직 한국어가 어색해질만큼 이곳에 오래 있지 않았는데도 말이죠. 주말 동안 제가 사는 도시에는 투표를 위해 멀리서 달려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투표소에서 반가운 얼굴을 만나서 '어!' 하고 소리치는 이들 사이에 섞이는 경험도 좋았네요.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일이 많아서 좋은 한 주였다고 회상해봅니다.
-
🔗<피프티 피플>과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
책이든 영화든, 그 안에서 독자는 알고 등장인물은 알지 못한다거나 혹은 등장인물 중에서도 서로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나뉘는 일들. 그런 작품들을 한 번 떠올려봅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정세랑 작가의 <피프티 피플>입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책에 나오는 NN명의 사람들의 삶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여 있습니다. A라는 인물이 겪은 사건이 그 다음에 나오는 B라는 인물의 삶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식으로요. 그 때문에 소설 속에선 어떤 살인사건의 피해자 A가 B가 자주 가던 단골 가게의 직원이기도 한, 씁쓸한 해프닝이 다뤄지곤 합니다. 물론 이런 부정적인 에피소드만 있는 소설은 아니고요! 저는 우리네 삶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엮여 있는지 실감할 수 있는 책이라 느꼈습니다. 가끔 '세상이 참 좁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일들이 더러 있잖아요. 그런 일들을 풀어낸 이야기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다음 작품은 조예은 작가의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입니다. 이 작품은 자세히 다루면 핵심 내용을 스포하기 때문에 최대한 말을 잘 골라보겠습니다. 핵심 줄거리는 엄마의 죽음을 막기 위해 타임루프를 반복하는 아들의 이야기...로 봐주시면 되는데요. 엄마의 죽음을 막았다고 생각한 순간, 또다시 이 비극이 반복되는 점이 관전 포인트입니다. 왜냐하면 이 드라마는 아들 뿐만 아니라 엄마도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려 시간을 되돌려 운명에 대항하는내용이거든요. 바로 이 지점에 이 이야기의 '지독한 반전'이 숨어있거든요. 단편이고 후루룩 빠져들어 읽을 수 있으니 너무 긴 책은 부담스러우실 때 추천합니다! <칵테일, 러브, 좀비> 단편집에 함께 수록되어 있는데 다른 세 편의 이야기도 굉장히 재밌으니 함께 즐겨주세요. 약간은 오싹한(?) 반전이 있으니 다가오는 여름에 읽으시기도 좋을 듯 해요.
+ 책보다 영상물을 선호하신다면 드라마 스페셜로도 제작된 적 있으니 즐겨주시기를! 2023년도에 제작되었는데 찾아보니 왓챠에서 감상 가능하신 것 같아요.
-
🎵오늘의 노래: 악동뮤지션 - 인공잔디
날씨가 점점 더워져서 여름이 빨리 오는 건가? 싶은 요즘입니다. 다가오는 여름의 초록과 잘 어울리는 노래를 추천드려요! 멜로디는 청량한데 가사는 또 곱씹을수록 심오하고 매력적인 곡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