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과 팜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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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방구석디제이

방구석 D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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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구석디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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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ngkokd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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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장을 수여합니다'

여러분은 언제 상을 마지막으로 받았는지 기억하고 계시나요? 저는 고등학교 때나 대학교 때 상을 한 두 번 받은 것도 같은데, 잘 기억은 안 납니다. 상을 받고 환희에 차 신나게 집에 갔던 것은 아마도 초등학교 정도가 마지막이지 않나 싶은데요.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하던 저였지만 전교생 앞에서 상을 받는 순간은 항상 꿈꿨던 것도 같습니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어 조용한 가운데 "... 이 상장을 수여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박수를 받는 그 순간! 지금도 그렇게 상을 받던 몇몇 순간들은 기억에 꽤나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 같네요. 어떤 성과나 결과에 대해 인정 받는다는 것은 정말 큰 성취감을 주곤 합니다. 

하지만 금세 찌들어버린 저는 상을 받는 데에 흥미를 잃고 말았습니다.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보다 겁이 많아졌다고나 할까요? 상을 받고 싶은 마음에 온 노력을 다해 열심히 했다가 인정을 못받게 되었을 때의 그 좌절감을 느끼고 싶지 않아서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척, 열심히 하지 않은 척만 열심히 했던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마음 한 켠에서는 그 상을 받을 때의 기쁨, 그리고 상을 받기 위해 쏟았던 열정 이런 것들을 그리워하고 있긴 합니다. 앞으로 제가 상을 받을 수 있는 것들에는 뭐가 있을지 갑자기 궁금하군요! 아무튼,, 상을 받을 때의 순수한 기쁨만을 누리고 싶어 오늘은 저에게 상을 하나 주고 싶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주말,,, 저에게는 '끼니 잘 챙김 상'을 주고 싶군요! 주말 내내 배고플 때마다 열성적으로 밥을 먹은 저에게 이 상장을 수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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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소감을 듣고 싶어

그런데 갑자기 왜 이런 '상' 얘기를 하냐구요? 최근에 우리나라에서는 엄청난 '상'과 관련된 사건이 있었죠! 바로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저는 그 당시에 학교에서 밤 늦게 머리를 쥐어뜯고 있었는데요, 머리를 식히려고 유투브를 켰다가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찌저찌 영어로 된 말들 사이에 들리던 익숙한 이름? 전혀 예상치 못했기에 처음에는 실감이 안 났어요. 하지만 확실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그 쾌감이란! 제가 상을 받는 것도 아닌데도 상을 받을 때의 그 기쁨이 온전하게 저에게도 전달되는 것 같았습니다. 누군가의 수상소식에 이렇게 순수하게 기뻐할 수 있다니, 이런 경험이 참 오랜만인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죠. 저는 지금도 등교할 때마다 한강의 수상을 축하하는 현수막들을 계속 보고 있습니다. 지금은 조금 익숙해졌지만, 또 그 플랜카드들에 시선을 두다보면 다시금 믿기지 않게 다가올 때가 있기도 해요.

그래서 그러한 경사를 축하하는 마음에 저희 DJ들도 '상'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기로 했습니다. 문학계에 노벨문학상이 있다면, 영화계에도 다양한 상들이 있죠! 하지만 오늘은 조금 특별한 상에 대해 소개해 보고자 합니다. 이전에 <추락의 해부>를 소개해드릴 때 잠시 언급한 적이 있는 '팜도그 상인데요', 칸 영화제에서 시상되는 상으로 그 해 가장 열연을 했다고 생각되는 강아지에게 수여되는 상입니다. 이제 영화에서 '강아지'가 등장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 되었는데요, 점점 더 많은 비인간 배우들이 등장할 수록 그들이 받을 수 있는 상들도 늘어나겠지요, 기대가 됩니다!

아무튼, 작년에는 <추락의 해부>의 '스눕'을 연기한 '메시'가 상을 받았다면, 올해에는 <법정에 선 개>에서 '코스모스'를 연기한 '코디'가 상을 받았습니다. 수상을 한 만큼 코디의 수상소감이 정말 궁금하지만, 제가 알아들을 수 없다는 점이 참으로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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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 세워진 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재판에 오른 개>라는 제목으로 상영되었던 이 영화는, 서울동물영화제에서는 <법정에 선 개>라는 이름으로 소개되었습니다. 저는 이번 동물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접했기 때문에 <법정에 선 개>가 더 익숙한데요, 원제는 'Dog on trial'입니다. 이 영화는 실화를 기반으로 구성되었는데요, 개가 사람을 3번 물게 되면 안락사 당하게 된다는 스위스의 법으로부터 이 영화는 시작됩니다.

사람을 3번 물었다는 죄목으로 재판에 서게 된 개. 재판에서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죽게 되는 이 '코스모스'라는 개는 '아브릴'이라는 변호사를 만나 수차례 재판에 서게 됩니다. 그저 '강아지 한 마리'가 안락사를 면하기 위해 열린 이 재판은  처음에는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만, 원고측 변호사가 정치계에서 활동을 하는 사람이라 점점 이 재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합니다. 법정에 '세워진' 개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싸우고, 또 집중합니다.

법정이라, 이만큼 인간 중심적인 공간이 있을까요? 모든 것이 인간의 원리대로, 인간의 언어대로 이뤄지는 이 공간에서 아주 이질적으로 보이는 '코스모스'. 무엇 때문에 자신이 이 공간에 있는지도 모르고, 무엇을 변호해야 할지도 모르지만 이 재판에서 이겨야만 죽음을 면할 수 있는 이 존재에게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쏠리기 시작합니다. 판결을 내려야 하는 사람들과 판결을 자신의 편에 유리하게 이끌어야 되는 사람들이 모여 이 강아지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그리고 '코스모스'의 언어를 어떻게 인간의 언어로 변환시킬 것인지 골머리를 앓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이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충격적으로, 때로는 슬프게 영화를 채우고 있습니다.

80여 분에 불과한 짧은 러닝타임이지만, 감독은 꽤나 큰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비인간 존재를 다루는 것뿐만 아니라, 페미니즘, 장애인권, 이민자, 아동과 관련된 이슈들에 대해서도 비중있게 다루려고 시도합니다. 물론 아주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하지만 짧은 러닝타임과 명확한 주제에는 다소 부족하고 성급하게 그려졌다는 아쉬움도 있긴 합니다. 아무튼, '코스모스'의 변호인을 맡은 아브릴은 끊임없이 코스모스를 이해하고 그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려고 노력합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뉴스 한 줄로 지나갈 수 있을 해프닝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세상 전부를 바꾸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수많은 호평을 받은 영화이기도 하고,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영화이기도 해서 조만간 한국에도 정식 개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그래서! 결말은 숨겨두고 여러분에게 맡겨둘게요. 정식개봉으로 다시 한 번 여러분과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혹여 결말이 너무 궁금하시다면 '법정에 선 개', 혹은 '재판에 선 개'로 검색하시면 여러 리뷰들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의 노래: Colde - Your Dog Loves You(Feat. Crush)

저번에 이어서 또 '개'와 관련된 노래를 소개해드리게 되었네요, 아마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실테지만 그래도 좋아하실 것 같아서 들려드립니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둔 어느 날

지난 호에 짧게 언급했던 한강 작가님의 노벨 문학상 수상 이야기를 길게 하게 되어 기쁩니다.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저는 회사에서 야근중이었는데요. [속보]말머리를 단 뉴스가 포털에 도배됐을 때 온몸에 돋던 소름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내가 살아서 이 광경을 보다니,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거든요. 내가 살아서, 한국인 작가가 한국문학으로 노벨 문학상을 타는 것을 보다니. 정말로 살아있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노벨 문학상을 탄 작가의 작품은 보통 수상 뒤 전세계 nn개 국어로 번역돼 팔리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례적으로 이번만큼은 제가 그러기도 전에 벌써 모든 작품을 다 읽은 뒤였습니다. 모국어로 된 글의 힘은 얼마나 강하고 감사한지요. <흰>이라든가 <검은 사슴>부터도 저는 작가님의 글을 참 좋아했습니다.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이 한강 작가님의 글을 읽게 되어 더없이 행복합니다. 

원래는 그래서 <소년이 온다>를 메인으로 다루려고 했습니다만... 

작가님이 직접 입문작으로 추천한 <작별하지 않는다>를 놓칠 수 없었습니다만...

소설만 다루자니 아쉬워서 시집인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를 욕심 내게 됐네요. 하하. (🔒사실 소설은 다른 곳에서도 추천사를 많이 보실 것 같아 전 시집을 골라보았습니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두었다>에는 아름다운 시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는데요. 저는 시인이 세상을 보는 눈은 그의 시에서 오롯이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시를 읽으면 그 사람을 더 잘 알게 되는 것 같아 좋아합니다. 이 시집에 실린 다른 유명한 시들도 많지만, 제 픽은 뭐니뭐니해도 <서울의 겨울 12>라는 시랍니다. 함께 읽어볼까요? 

『어느 날 어느 날이 와서

그 어느 날에 네가 온다면

그날에 네가 사랑으로 온다면

내 가슴 온통 물빛이겠네, 네 사랑

내 가슴에 잠겨

차마 숨 못 쉬겠네

내가 네 호흡이 되어주지, 네 먹장 입술에

벅찬 숨결이 되어주지, 네가 온다면 사랑아,

올 수만 있다면

살얼음 흐른 내 뺨에 너 좋아하던

강물 소리,

들려주겠네 」

"내가 네 호흡이 되어주지, 네 먹장 입술에 벅찬 숨결이 되어주지 " 라며 결의에 찬 고백을 건네는 화자의 목소리가 큰 울림을 주는 시입니다. 이 시의 청자가 오기만 한다면, 다시 돌아오기만 한다면 말이죠. 짧은 문장이지만 절절하고 애절한 고백이라, 날씨가 쌀쌀해지면 이 시가 계속 생각이 나더라고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다른 시들도 좋으니 시집도 한 번 정독 해보시는 것도 좋을 거예요! 

한편만 소개하긴 아쉬우니 마지막으로 한 편 더 보고 갈까요? 바로 <어느 늦은 저녁 나는> 입니다. 이 시는 위에 등장한 시보다도 더 유명해서, 어디선가 보셨으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

공기중으로 빠르게 사라지는 김처럼 삶에서도 잡을 수 없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때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것. 밥을 먹고 또 살아가는 것. 그것이 우리의 최선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이 시를 읽을 때마다 해봅니다. 해석은 각자 다르게 할 수 있겠지만, 두 편 다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군요! 그럼 오늘의 편지는 여기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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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노래: Oasis - Wonderwall

너무 많이 들었지만 들을 때마다 왠지 모를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곡들이 있습니다. 고향에 온 듯한 기분도 들고 말이죠. 제게는 이 곡이 그런 곡이라 추천드립니다. 노벨문학상 소식이 제게는 묘한 자극과 감동과 영감과 용기를 주었듯... 여러분들께도 그런 일들이 종종 기쁜 선물처럼 찾아가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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