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일어나는
작성자 방구석디제이
방구석 DJ
병원에서 일어나는
🏥병원에 대한 추억(?)
물론,,, 병원이라는 곳을 좋아하는 분들은 아마 드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저는 그 중에서도 유달리 병원을 싫어하는 사람에 속합니다. 병원을 구성하는 그 조명, 온도, 습도 모든 것이 참 싫습니다! 제가 아파서 병원을 갔던 건 올해 초 코로나에 걸렸을 때가 마지막인 것 같군요. 이렇게 극도의 아픔을 겪는 게 아니고서야(?) 저는 대체로 병원에 가지 않는 편입니다. 언제부터 이렇게 병원을 싫어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병원을 싫어할 만한 이유는 꽤 많습니다. 대체로 병원과 관련된 기억들이 좋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중에서도 뭔가 웃음을 지으며 넘어갈 수 있는 저의 개인적인 추억이 하나 있습니다. (오랜만에 TMI를,,,)
저는 유치가 날 때부터 영구치까지 '이'로 고생을 많이 했는데요, 입안 공간이 굉장히 작은 편이데도 불구하고 나오는 이들은 전부 크기가 큼직해서 저들끼리 자리싸움을 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저는 양치를 하다가 문득 입천장이 가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입을 앙 벌리고 거울을 보니, 이럴 수가! 제 입천장에서 이가 나고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혼비백산하여 대학병원 치과에 가게 되었는데요, 수술을 해야 한다는 소견을 듣게 되었습니다. 일주일 뒤로 수술날짜를 잡고 돌아온 후, 저는 일주일 동안 내내 마치 불치병 판정을 받은 사람처럼 우울해하고 불안해하며 눈물로 밤을 지새야 했습니다. 입천장에 이가 나다니,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수술일, 아빠의 손을 잡고 터덜터덜 병원에 갔는데요. 저의 울상인 얼굴을 보고 의사 선생님은 한달에도 몇 번씩 입천장에 이가 난 아이들이 온다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 말 한 마디에 놀랍게도 진정이 된 저는 의젓하게 인생 첫 수술을 받게 되었고, 중간에 마취가 풀리는 등 다소 소동이 있긴 했지만 무사히(?)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병원과 관련해서 극적인 감정의 변화를 겪은 추억들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물론 그것들이 다 좋은 결말로 끝났기를 바라면서, 병원에 대한 영화를 하나 소개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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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둥지를 벗어나
영화나 책은 일종의 '명작 100선'과 같이 꼭 반드시 봐야만 한다는 이미지를 가진 목록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항상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병원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하나 있는데요. 바로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입니다. 기존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 중에서는 그닥 좋은 평을 받지 못했습니다만, 영화 자체는 이 100선에 들어갈 정도로 유명한 작품입니다.
제목에서 '뻐꾸기 둥지'는 정신병원을 가리키는 일종의 은어로, 제목에 걸맞게 이 영화의 배경은 정신병원입니다. 한 죄수 '맥머피'는 감옥에서의 생활이 100일도 채 남지 않았는데요, 그 와중에도 감옥에서보다 병원에서 보내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는 판단에 사고를 일으켜 정신병원으로 이송됩니다. 진짜로 맥머피가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일단 맥머피는 정신병원에서 계속 생활하게 되는데 이는 맥머피가 바라던 바였습니다. 이 정신병원은 엄청난 포스를 가진 한 간호사('래취드'라고 불리는)가 가장 강력한 권력을 가지고 운영하고 있습니다. 둘의 갈등으로 시작되는 이 영화는 결국 맥머피가 병원을 탈출하려는 계획을 갖게 된 순간부터 절정으로 치닫게 됩니다. 1970년대 영화라 스포주의를 달 필요는 없겠습니다만, 그래도 제가 생각한 방향과는 전혀 달라서 꽤나 놀랐던 작품이기도 합니다.
해당 영화에서 간호사 래취드는 엄청난 악역으로 평가받기도 하는데요. 저는 솔직히 영화를 보면서 수많은 영화들 속 빌런들을 떠올리며, 과연 래취드가 이러한 악역들과 같은 선상에 서 있는 인물인가?를 계속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실지 궁금하군요! 영화를 보셨거나 이 편지로 보실 계획을 가지신 분들은 꼭 저에게도 알려주세요😃
주인공 맥머피는 죄수이고(심지어 죄질도 매우 최악입니다) 또 이 평화로워 '보이던' 정신병원에 온갖 사고를 불러오는 장본인입니다만, 그래도 그의 비극적인 결말에는 안타까움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정신병원에서 과잉치료가 만연했다고 하는데요, 소위 '전두엽 절제술'과 같은 수술들이 무차별적으로 진행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 영화를 계기로 그러한 치료들에 대한 의문이 꽤나 대두되었고 이후 병원의 과잉진료나 처치에 관한 목소리들이 높아졌다고도 합니다. 여러분은 '병원'에 대한 영화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저는 드라마를 즐겨보는 편이 아니라 드라마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병원'과 관련된 드라마들도 많이 떠오르실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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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노래: 선우정아 - 백년해로
이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랑하는 사람들과 살아가셨으면 싶은 소망을 담아 노래를 추천해드립니다😘
📗청춘 시절을 까먹기 전에 청춘의 혼란스러움에 관한 얘기를 하고 싶단 마음
이번 호의 주제는 위에서 말씀드렸다시피 '병원'인데요! 특수한 공간으로서 영화나 문학 속에서 다양한 사건들이 벌어지는 곳이니만큼, 병원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소개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중 마침 박상영 작가의 <대도시의 사랑법> 영화화 소식이 들리더라고요! 해서 이 작품을 여러분께 이야기 해드리려고 합니다.
소제목의 "청춘 시절을 까먹기 전에 청춘의 혼란스러움에 관한 얘기를 하고 싶단 마음"이라는 구절은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이언희 감독님의 인터뷰에서 따왔는데요. 바로 이 마음이 이유가 되어 <대도시의 사랑법>을 영화로 만들기로 결심하셨다고 해요. '완전하고 안정된 20대는 없다'는 말처럼, 20대를 지나는 청춘들의 대다수가 겪는 내면의 어지러움이나 불안 같은 보편적 정서를 녹여냈다고 합니다. 게다가 영화의 주연을 김고은, 노상현 배우가 맡아서 더욱 화제가 됐어요! 저도 좋아하던 소설이 영화로도 제작된다고 해서 기대중인데요. 개봉은 10월 1일로 예정돼 있으니 관심이 생기셨다면 개봉 후 감상해보시는 것도 추천해요!
영화는 수록된 소설들 중 <재희>라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만, 오늘 제가 소개드리고 싶은 소설은 수록집에 실린 다른 단편인 <우럭 한점 우주의 맛> 입니다.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많은 구절을 소개할 예정이라 큰 ⚠️스포주의⚠️딱지 먼저 달고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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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럭에서는 정말로 우주의 맛이 날까
<우럭 한점 우주의 맛>은 주인공인 '영'이 전애인에게서 온 편지를 받으면서 시작됩니다. 더 정확히는 5년 전, 영이 전애인에게 건넸던 일기가 무수한 교정부호와 함께 되돌아오면서요. 이 전애인이 바로 제목인 '우럭 한 점, 우주의 맛'을 영에게 알려준 사람입니다. 우럭 한점은 비단 우럭의 맛이 아니고, 우주의 맛. 우리 자신도 우주의 일부이므로 우주가 우주를 맛보는 과정이라며 영에게 이야기를 늘어놓던 사람이죠. 그가 마지막장에 짧게 덧붙인 쪽지에선 '작가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축하합니다.'를 비롯한 인사말이 이어집니다. 뒤이어 편지의 주인은 곧 급히 출국하게 됐다면서 영에게 만남을 청합니다. 꼭 줄 것이 있다고요. 영은 뒤늦게 그의 존재를 재정의합니다.
5년 전에 엄마에게 '그'를 소개하려 했었다고.
영과 엄마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이 바로 병원입니다. 영의 어머니가 암 투병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은 그곳에서 엄마를 돌보는데, 둘의 관계가 참 어렵습니다. 엄마는 자궁암에 걸린 사실을 아들에게 통보하면서도 쾌활하게 '엄마 자궁암이래! 할렐루야다.' 외치는 강인함과, 동시에 친척들도 암에 걸렸으니 너도 백퍼센트 암환자가 될 거라며 영의 명의로도 암보험 두어개를 더 계약하라고 부추기는 현실적인 면모를 가졌습니다. 기독교인이며 아빠와 이혼 후 결혼정보회사에서 일하며 아들인 영을 키웠고.... 여기까지만 말해도 어떤 인물인지 감이 오시죠? 그런 엄마에게 영은 낯설디 낯선 존재로 각인됩니다. 영이 학생이었던 시절, 아들이 퀴어라는 사실을 최초로 목도한 후 그것을 정신병으로 정의하며 아들의 손목을 움켜쥐는 대목에서도, 의도치 않게 아들에게 큰 상처를 입힙니다.
영은 작품 초입에서 최초로 언금된 전애인과의 관계가 끝난 뒤, 그에게서도 마음의 상처를 입고 농약을 마십니다. 아메리카노에 부어서요. 그런 뒤 눈을 뜯는 장소도 병원인데요. 공교롭게도 엄마와 같은 병원에서 영은 눈을 뜹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중환자실이었다. 공교롭게도 엄마가 입원해 있던 아산병원이었다. 위세척을 마친 뒤 혈액투석을 하고 있는데 발치에 엄마가 서 있는 게 보였다. 내가 바랐던 얼굴은 아니었다. 내가 아는 우리 엄마는 이런 상황에서 소리를 지르며 나를 때리거나, 냅다 울어버리거나, 주님으로 시작하는 기도의 형식을 띈 한탄을 시작하거나 일단은 뭐가 됐든 아침드라마처럼 감정을 터뜨리고 보는 사람이었는데, 그날의 엄마는 그저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말했다.
- 너무 애쓰지 마, 어차피 인간은 다 죽어.
그게 엄마가 할 말이냐고, 묻고 싶었다. 왜 이렇게 됐는지 묻는 게 순서 아니냐고....(중략) ]
재회한 모자의 상봉 순간을 보면 이들 사이에 벌어진 간극을 메울 수는 있을까 의구심이 듭니다.
🤧커다란 미지의 세계를 인정해야 하는 때
그렇지만 그녀의 삶이 겉잡을 수 없는 위기에 직면한 후, 둘은 서로 붙어 있는 시간만큼 투닥거리며 조금이나마 서로를 이해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니, 그런 것도 같습니다. 영은 끝까지 관조의 태도를 이어가거든요. 부모-자식간의 관계를 단편적으로 정의할 수도 없거니와 사랑과 증오는 지겹지만 함께 가는 감정이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우리 아들 다 컸네. 주사를 많이 맞아 혈관이 툭 불거진 엄마의 손이 보였다. 피부가 마른 골판지 같았다. 엄마의 모든 것들이 낙엽처럼 바스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주머니에서 쪽지 하나를 꺼냈다.
네가 너를 바라듯 주도 너를 바라고 있다.
잠시도 불쌍해할 틈을 주지 않는 여자였다, 엄마는.]
[예전부터 내가 좀 남자 같고 그랬잖니. 간도 크고 후회같은 건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너를 낳고 보니까 그게 아닌 걸 알겠더라. 아기 때, 너를 안고 있으면 막 지갑이 뚱뚱한 것처럼 배가 부르고 행복하고 그랬어. 그래서 자꾸만 겁이 나더라, 다치거나 부서지거나 없어질까봐.…허겁지겁 너를 찾는데 멀리 네 뒷모습이 보였어. 나는 가만히 네 뒤를 따라 갔다. 네가 두 발쯤 걷다 자꾸만 멈춰서기에 뭐하나 봤더니, 거리에 있는 모든 가게 앞에 서서 일일이 들여다보고 관찰하고, 때로는 만져도 보고 그러고 있더라.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그 모습을 뒤에서 보는데 화가 나는게 아니라, 덜컥 무섭더구나. 네가 더이상 내가 아는 아이가 아니라는 생각에. 네가 보고싶은 것을 보고, 네가 걷고 싶은 길을 너의 속도로 걷는 게, 너만의 세계를 가진 아이라는 게 그렇게 섭섭하고 무서웠다.]
마지막 부분에서, 영과 엄마의 대화 장면이 나오는데요. 이 대목에서 엄마는 그간 하지 않았던 속얘기를 영에게 털어놓습니다. 누구보다 강건하고 직진밖에 모르던 존재도 유약하게 만드는 병 때문이라고 영은 생각하죠. 그렇기에 영도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고 맙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 정말 미안한데 영영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아." 하고요. 단 한번만이라도 사과를 해줬으면 좋겠다는 영의 마음이 언젠가는 가 닿을 수 있을까요? 그러나 적어도 이 소설에서는 이런 평화주의적인 결말은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영이 바라는 것은 엄마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편안히 눈을 감는 일이니까요.
[핏줄이 연결된 것처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존재가, 실은 커다란 미지의 존재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인생의 어떤 시점에는 포기해야 하는 때가 온다는 것을. 그러니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생각을 멈추고, 고작 지고 뜨는 태양 따위에 의미를 부여하며 미소 짓는 그녀를 그저 바라보는 일. 그녀의 죽음을 기다리는 일. 그녀가 아무것도 모른 채 죽어버리기를 바라는 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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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노래: Creespy-Bruiseboy
영은 사랑을 지긋지긋해하면서도 사랑에 열정적인 인물이기에 '사랑'을 전면에 내세운 크리스피의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인생이 항상 동화같지는 않지만, 순수하고 투명한 감정을 내비치는 일마저 주저하지는 말자는 메시지를 담은 이 앨범을 추천드려요. 그 중에서도 오늘은 Bruiseboy를 소개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