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無酌定)
작성자 방구석디제이
방구석 DJ
무-작정(無酌定)
★무작정 프로젝트!
DJ 징징> 또 새로운 시리즈를 하나 준비해왔습니다! "무작정"이라는 말의 뜻 (얼마라든지 혹은 어떻게 하리라고 미리 정한 것이 없이)에 맞게, 이번 호에서는 두 DJ가 생각나는 작품을 다짜고짜 선보입니다! 그렇다는 말은,,, 또 TMI 파티라는 것이겠죠, 아무튼 무작정 시작해보겠습니다!
DJ 초마> 안녕하세요 여러분! 벌써 낮의 태양은 꽤나 뜨거운 유월입니다. 이번 호는 쉬어가는 느낌(?)의 자유로운 호가 될 것 같군요. DJ 징징이 좋은 제안을 건네줘서 '무작정' 좋아하는 작품에 대해 떠들 기회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 어떠한 형식이나 주제의 제한도 없다는 부분에서 즐거운 여름휴가를 덤으로 얻은 기분인데요. 읽을 때도 가볍고 편하게 즐겨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겠습니다!
💥이제 겨우 (아마도) 20%에 도달했는데!
사실 요즘 징징 DJ는 인생의 기로에서 번뇌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단순히 시간을 벌기 위해 도망쳐 들어왔던 대학원의 졸업이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죠. 주변에서는 이제 졸업하면 무엇을 할 예정인지를 물어오곤 합니다. 박사과정을 밟을 예정인지, 취업을 할 예정인지, 취업을 한다면 어디를 생각하고 있는지 등등 대체로 '앞으로 뭐 먹고 살거냐'는 말의 여러 변형인 셈입니다. 머리를 긁적이며 - 대충 망충한 표정을 지으면서 순간순간의 위기를 모면하곤 하는데요, 문제는 이 질문들이 성가신 날파리처럼 끊임없이 제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 어릴 때의 저는, 지금의 제 나이가 되면 '커리어우먼'이 되어 있을 줄 알았습니다. 물론 '커리어우먼'이 도대체 뭐냐고 물으신다면, 저도 한마디로 정리하긴 어렵습니다만, 모두들 아시잖아요? 약간 그 형용할 순 없지만 멋있는 여성!🤣 그런데 20대에 이루기는 커녕, 살면서 이룰 수 있을지 잘 알 수 없게 된, 허상과도 같은 목표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니, 도대체 제대로 한 것도 없는데 시간은 왜이렇게 빠른 걸까요?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도 그렇습니다. 아직 제대로 쓴 것도 없는데 새벽 2시쯤 의자에 앉아있었던 저는 지금 새벽 3시를 넘긴 시계를 바라보고 있군요!
아무튼, 너무 두서가 없어지긴 했지만 제가 하려던 얘기는 '뭘 하며 먹고 살아야할지'를 정하는 것이 참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제 제 주변 또래들도 각자 먹고 살 방향을 거의 잡은 것 같은데요, 그 무수한 방향들을 보면서도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는 기분입니다. "MBTI가 뭐야?"라고 누군가 물었을 때 아주 확실하고 단호하게 "INFJ"라고 답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확실한 답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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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의 역사도 역사는 역사
그런데 사실은 제가 너무 거창한 것들을 바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냥저냥 넋놓고 살다보면 자연스레 뭐든 하면서 살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요즘, 또다시 '워홀'을 가볼까 고민하며 이것저것 뒤져보고 있습니다만, 아직 졸업을 한 게 아니라 그런지 그 다음 스텝이 진지하게 와닿진 않아 건성건성 미래를 넘겨보곤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보니 인생의 (아마도) 20% 지점을 통과해 오면서 저는 사실 도망자의 정체성을 가장 크게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앞에 놓인 거대한 오르막길을 오르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자잘한 샛길을 강구하던 나날들이 스쳐 지나가는군요.. 그런데 이런 회피가 디폴트인 저 자신을 바꿀 수 없다면, 일종의 '정신승리' 사고방식이 필요한데요. 이를테면 '도망의 역사도 역사다!'가 있겠습니다. 사실 도망치는 것도 일종의 행위로서,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이긴 합니다. 생각했던 방향과 다른 방향으로 달리고 있긴 하지만 어찌 됐든 발자국을 남기고 있는 셈 치면 안 될까요? 과도한 자기방어처럼 느껴져 부끄러워질 수도 있지만, 이럴 때 비슷한 내용의 영화를 하나 곁들여주면 그럭저럭 또 이런 위기들을 잘 넘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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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는 것도 때때로 도움이 된다?
저는 이 드라마를 보진 않았습니다만, 이 대사만큼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바로 <꽃보다 남자>의 "흰 천과 바람만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어"라는 대사인데요. 이 드라마를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고, 이 대사에 아주 잘 어울리는 한 주인공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바로 <백만엔걸 스즈코>의 '스즈코'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에는 도대체 영화 제목의 뜻이 무엇인지 감도 잡지 못했었는데요, 영화를 본 후에는 이 영화의 제목이 참 기발하게 잘 뽑혔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이런저런 이상한 일들로 인해 순식간에 '전과자'가 되어버린 스즈코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들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을 시작합니다. 스즈코는 그곳이 어디든 자신을 알지 못하는 곳이라면 무작정 가서 일을 하며 지내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을 하며 '백만엔'을 모은다면, 또 다른 곳을 찾아 떠나기로 다짐하면서요. 발길이 닿는대로 이동하면서, 스즈코는 자신이 직접 만든 커튼을 달아 자신이 머무는 공간을 '집'으로 만듭니다. 거기서 머무는 시간만큼은 그 커튼이 있는 공간이 스즈코의 안락한 집이 되어줍니다.
하지만 처음의 다짐이 무색하게도 스즈코에게 '백만엔'이 생기기도 전에 계속해서 떠나야만 하는 시련들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스즈코는 계속해서 그런 시련들을 이겨내기 위해 또 도망을 다니기 시작하죠. 하지만 시작은 도망이었을지라도, 끊임없이 뭔가를 도전하는 스즈코의 모습을 봐왔기에 우리는 그런 스즈코에게 절대 나약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요. 결국 우여곡절 끝에 영화의 엔딩에 다다르게 되면, 우리는 스즈코를 통해 공감하게 됩니다. 도망치는 것도 때로는 도움이 된다는 것을요!
스즈코를 연기한 배우 '아오이 유우'의 패션, 알록달록한 색감 등으로 유명한 작품이지만, 보이는 것과 달리 꽤 무겁고 깊은 여운을 주기도 하는 <백만엔걸 스즈코>! 여러분도 도망치고 싶으시다면, 혹은 도망을 치는 중이시라면 이 영화를 통해 진정한 도망자의 기운(?)을 받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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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노래: 선우정아 - 도망가자
오늘 저의 글에 아주 찰떡인 노래가 하나 있어서 소개합니다! 여러 라이브 무대들이 있는데요, 혹시나 좋아하는 노래라면 라이브 무대를 보는 걸 추천 드려요!
🏃♀️도망도 일종의 생존본능이죠
정호승 시인의 '산산조각'이라는 시를 아시나요?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시구로 유명한 시인데요. 내/외부적 요인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거나 당장은 회복이 어려운 타격으로 힘들 때 이 문장을 떠올리곤 합니다. 심리적으로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거나, 생각하던 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요. 삶의 어떤 부분이 완전히 망가져버렸다, 고 생각하기 보다는 망가지면 망가진 채로 또 살아갈 수 있다고 사고의 전환을 한 번 시도해보는 것이죠.
놀랍게도 회피나 도망은 인류를 포함한 동물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 본능입니다. 놀랍게도, 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현대 사회를 살아가다 보면 꽤나 자주 그 사실을 잊어버리기 때문이에요! 무언가를 회피하려는 스스로를 발견하면 '또 시작이군...'하고 자책하는 경우도 왕왕 있거든요. 실은 아주 정상적인 방어기제의 작동인데도요. 정신건강의학에서도 이 부분을 종종 지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위험을 감지하고 피하려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도망치는 자신을 좀 봐주고 참아줘라... 등등.
바다 속을 바쁘게 휘젓고 다니는 물고기처럼 사는 때가 있다면, 또 반대로 해파리처럼 유유자적 존재하는 데에 의미를 두고 지내야 하는 시기도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무작정 잠수를 타버리라거나, 반드시 해야 할 일이나 대화를 앞두고 도망치라는 식의 충고는 아닙니다. 다만, 주어진 에너지가 소진됐을 때를 현명히 판단하고 적당히 거리를 둘 줄 안다면 '나'를 더 잘 지킬 수 있다는 뉘앙스에서 이런 사회적 조언들이 나온다고 느껴집니다. 어느 때의 나로 살아가든 나라는 사실이 달라지지 않는 다는 것과, 내가 잘 지낸다면 그만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실향과 귀향 사이에서
주제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작품을 골라서 선보이는 무-작정(無酌定) 큐레이팅 기회를 얻은 김에 저는 최근에 가장 재밌게 읽은 책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바로 천쓰홍의 소설 '귀신들의 땅'인데요! 이 이야기는 귀문(鬼門)이 열리고 귀신들이 출몰하는 대만의 음력 7월 ‘중원절’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천 씨 집안의 막내아들 톈홍은 중원절을 맞아 집으로, 그러니까 자신의 고향인 '용징'으로 귀향합니다. 그렇게 톈홍의 이야기와 천 씨 일가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넘나들며 사람과 귀신의 이야기가 다방면으로 전개됩니다. 줄거리를 다 설명해드리면 재미가 없을 책이라 번거로우시겠지만 직접 읽어보시는 것을 추천드려요!
책 두께가 얇지 않은 편이지만, 책장 넘어가는 속도는 굉장히 빠른 편이에요. 또한 제목과 다르게 정말 '귀신'들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이 땅에서 귀신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욱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어 공포물을 못 보신다고 해도 흥미롭게 읽으실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저는 책을 읽으면서 특히 소제목들이 굉장히 강렬하게 느껴졌는데요. 아래에 잠깐만 나열해보아도 귀기 어린 소설의 배경이 잘 와닿는 것 같습니다.
1부 엄마가 안 보여
1 첫 번째 타운 하우스 11
2 바닥 틈새로 비집고 들어가다 21
3 비닐봉지 없는 얼굴 32
4 천씨 성의 여성 호적원 37
5 양타오 나무 위의 막내 51
6 좋은 운명을 타고난 셋째 딸 64
7 귀신의 말 76
소제목에서 흥미를 느낀 당신 ! 지금 바로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를 방문하시면 이 책을 찾으실 수 있답니다. (광고 아님😂)
✍️언제나 실패자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천쓰홍 작가는 인터뷰에서 "제게는 실패자의 이야기가 더 큰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고 밝혔는데요. 좌절과 실패의 이야기를 계속 쓰고 싶다는 그의 각오가 책 곳곳에 드러나는 느낌이라 더욱 뭉클했습니다. 톈홍이 귀향해서 본 '용징'의 혼들은 자신처럼 망가진 모습들을 하고 있고, 과거의 유혼을 보는 그의 시선에서 독자는 작가가 하려던 말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처럼 망가진 사람들에게 더 큰 관심을 갖습니다. 저 자신도 망가진 작가이거든요. 영광스러운 귀향은 너무 재미가 없습니다. 망가진 배역, 온몸이 상처인 인물이 고향으로 돌아와야 유감의 매력이 가득할 수 있지요." 라는 작가의 말처럼, 좌절과 실패 뒤에 오는 것들을 이 책 '귀신들의 땅' 속에 나오는 인물들의 삶을 통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됩니다. 실패는 더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체험하게 해주기에, 좌절과 실패의 이야기를 계속 써나가겠다는 작가의 삶의 태도는 또다른 용기를 주기도 하고요. 유약한 살갗을 가졌지만 절대 약하지만은 않은, 자신만의 단단함을 지닌 존재라고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런 일들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우리가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를 지닌 인간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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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노래: 최유리 - 밤, 바다
위에서 도망가자를 추천했길래, 비슷한 느낌으로 한 번 선정해보았습니다. 실제로 고요한 밤바다 앞에서 이 노래를 들어본 적 있는데, 색다르게 들리더라고요. 서울에서 바다가 그리울 때도 효과가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잠이 오지 않는 밤 가만히 가사에 귀 기울이기 좋은 곡으로 추천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