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ㅍㅎ>: 평화 혹은 폐허

<ㅍㅎ>: 평화 혹은 폐허

작성자 방구석디제이

방구석 DJ

<ㅍㅎ>: 평화 혹은 폐허

방구석디제이
방구석디제이
@bangkokd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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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면서도 낯선

한국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으로서 6월은 익숙한 '호국보훈의 달'입니다. 초등학교 때는 군인 아저씨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행사도 하고, 중학교 때는 6월 25일이 되면 그때의 피난민들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급식에 주먹밥만 나오기도 하고, 전쟁과 관련된 영화들을 학교에서 틀어주어 하루종일 보던 기억도 있군요. 아주 어릴 때부터 '우리나라는 아직 휴전국이다'라는 말을 지겹게 들어서 그런지, 그리고 성인이 되고부터는 주위의 친구들이 입대를 하는 것을 보게 되어서 그런지 전쟁이라는 것은 제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이 있으면서도, 아직 제가 접해보지 않은 그런 미지의 것이기도 합니다. 지금 떠올려보니 꽤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요, 몇 달 전 핸드폰 경보가 울리면서 거리에 사이렌이 가득하고 이른 아침에 허겁지겁 그 소음에 놀라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실제로 들어본 그 시끄러운 소리들에 패닉이 왔고 집을 뛰쳐나가야 하는 건지, 아니면 집에 숨어 있어야 하는 건지 그 아무것도 알 수 없이 당황하며 핸드폰만 들여다보게 되었죠. 일종의 어이없는 해프닝으로 끝나버린 이 날은 그 주가 끝나도록 꽤 저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지금도 지구 어딘가에서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전쟁들이 벌어지고 있고, 가깝게 북한에서도 그 전쟁의 여파가 남아있는 와중에 저는 진짜 전쟁이 무엇인지 그 아무것도 알지 못했고 앞으로도 직접 경험하기 전엔 단 1%도 안다고 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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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혹은 폐허

전쟁이라는 것은 결국에는 누군가의 이득을 위한 싸움입니다. 누가 이득을 얻게 될지는 그 전쟁에 직접 참여하는 사람들은 알 수 없지만 말이죠. 그렇지만 전쟁은 그러한 진실은 뒤로 숨겨두고 마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분쟁으로 자신을 포장합니다. 분쟁을 없애기 위한 분쟁이라니, 너무 모순적이지 않나요? 정말 전쟁에서 이기면 평화가 오고, 전쟁에서 지면 폐허가 되는 것일까요? 그러한 전쟁의 모순을 꼬집기 위해 많은 문학작품과 영화작품들은 가해자의 잔혹한 행위-피해자의 처참한 현실을 대비하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작품들은 잔인하고도 노골적인 장치들을 사용해 감정을 이끌어 냈었죠. 하지만 오늘 소개드릴 작품은 그런 장면들 없이도 그 이상으로 그러한 감정을 끌어낸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바로 지금 극장에 걸려있는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인데요, 원래대로라면 이쯤 ⚠️스포주의!를 표시했겠지만, 아무래도 이 영화는 역사영화인데다가 조금의 설명을 곁들인 채 극장에 가시면 더 좋을 것 같아 과감히 스포주의를 생략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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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오브 인터레스트

'the zone of interest'란,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둘러싼 주변 지역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영화의 제목이니만큼, 이 영화는 이 지역에 살고 있는 한 군인 가족의 일상을 담고 있습니다.

영화는 기묘한 소리로 문을 엽니다. 스크린에서 나오는 빛나는 장면들을 위해 극장은 언제나 암흑을 가득 차 있습니다. 그렇기에 영화는 암흑이 지배하는 장면이 거의 없고, 우리는 영화관에서 마주하게 되는 암흑에 생각보다 낯선 감각을 느끼게 됩니다. 영화는 기묘한 소리로 문을 열지만 스크린에서는 아무것도 비춰주지 않습니다. 얼핏 뭔가 상영에 문제가 생긴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 때쯤 번쩍!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등장합니다. 바로 루돌프 회스(Rudolf Höss) 중령의 가족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 장면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중령은 사실 실존 인물로, 폴란드 아우슈비츠 소장으로 근무하며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한 혐의로 이후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그는 아우슈비츠 소장이었기에 바로 이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 살고 있었으며 그곳에서 끊임없이 그 수용소 운영을 고민하고 또 고민합니다.

영화는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햇살에 반짝이는 강물, 무성히 자라있지만 싱그러움을 유지하는 초록빛 식물들, 그리고 그 사이로 보이는 그림같은 회스 중령 가족의 집. 회스 중령의 아내 헤트비히는 그 집을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매일 고민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일을 하는 것은 헤트비히가 아니라 그 집에서 거주하며 일하는 여러 폴란드 사람들이었는데요, 그들은 헤트비히의 말에 따라 가정을 위해 열심히 각고의 노력을 합니다. 집에서 마치 '머슴'처럼 일하는 자들 또한 폴란드 사람으로서 유대인은 아닙니다. 그렇게 이 영화에는 유대인의 모습은 단 한 번도 비춰지지 않습니다. 무려 아우슈비츠 바로 옆에서 살고 있는 가족의 이야기임에도 말이죠.

그렇다면 우리가 이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끔찍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바로 '소리'에서 옵니다. 저는 항상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각적인 것이고 그것을 완전하게 해주는 것이 청각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해왔었는데요. 그런 저의 생각이 완벽하게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이 영화를 보면서 들었던 것 같아요. 영화에는 배경음악은 거의 들려오지 않고 각종 소음들이 들려옵니다. 회스네 가족 막내 아기가 우는 울음소리, 그릇 달그락 거리는 소리, 열심히 마당의 돌들을 옮기는 수레소리 등등.. 그리고 그런 생활 소음 사이로 아주 거슬리는 소리들이 등장합니다. 경직된 총성, 비명, 무언가가 타는 소리, 군인들의 발소리, 그리고 알 수 없는 엔진소리. 이 엔진 소리는 영화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면서 계속해서 사람들을 긴장하게 만드는데요, 제가 영화를 본 이후 찾아보니 이 엔진소리는 실제로 회스 중령이 사용했던 것으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을 차단하기 위해 일부러 이런 큰 엔진소리를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영화는 지독할 만큼 가해자만을 비춥니다. 그리고 그 가해자의 평온한 일상은 아름답기 그지없어서 그저 아무런 정보 없이 화면들을 본다면 그 아름다움에 감탄할 정도이죠. 그런데 그 소리들, 그리고 그 인물들이 보여주는 대사들을 듣다보면 아름다움은 온데간데 없고 헛구역질이 나올만큼 끔찍한 장면들이 연상됩니다. 우리가 이제껏 보아왔던 교과서 속의 장면들, 여러 전쟁영화의 인물들, 역사적 사료의 구체적인 수치들 등등 기억 저 편에 잠들어있던 나에게 익숙한 전쟁의 모습들이 그 앞으로 하나씩 불려나옵니다.

영화의 말미에서 루돌프 회스는 전출되었다가 다시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아우슈비츠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로 돌아가게 되는데요. 그 돌아감이 결정난 그 날 밤 회스는 자신이 묵던 군사로 돌아가는 길에 마치 토를 하려는 듯 헛구역질을 심하게 합니다. 마치 목이 메이는 것처럼, 숨이 막히는 것처럼 - 마치 교수형을 당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리고 그 숨이 막히는 그때, 회스는 주마등의 순간을 경험하게 되는데요, 그 주마등의 순간은 지난 회스의 인생의 주마등이 아니라 - 회스의 죽음 이후 미래의 주마등입니다. 갑자기 현대의복을 갖춘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나치나 유대인과 관련된 박물관(기념관)을 청소하는 모습들을 보여줍니다. 번쩍이는 유리창들 너머로 자리잡고 있는 것은 영화에 등장하지 않았던 수많은 유대인들의 죽음이 남긴 신발들, 푸른색 줄무늬의 허름한 옷들, 여러 기구나 장치들이죠. 그리고 그 기나긴 주마등의 시간이 끝나고 회스 중령은 목을 가다듬은 채 다시 갈길을 갑니다.

저에게는 엄청나게 충격적인 영화였고, 올해의 반이 지난 지금 제가 올해 본-올해 볼 영화 중 BEST 5에 들어갈 것 같은 강한 예감이 듭니다. 노골적인 잔혹함을 배제하기 위해 감독이 마련한 세련된 장치들은 마치 현대미술을 감상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는데요, 소리가 아주 중요한 영화이니만큼 이 영화에 관심이 생기셨다면 꼭!!! 영화관에서 보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여러분들도 함께 이 영화를 보시고 다시 이 영화에 대해 말할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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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노래: Schumann - Träumerei 

오늘 노래를 선정하는데 꽤 애를 먹었는데요. 이 음악을 연주한 피아니스트의 비하인드와 관련해 추천드립니다. 블라디미르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가 몇십년만에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가 연주회에서 연주했던 슈만의 트로이메라이입니다.



🇰🇷Are you from Korea? South or North?

혹시 해외에 나가서 여행을 하시다가 "Where are you from?"을 들어보신 적 있나요? 질문에 대한 답으로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종종 소제목에 있는 질문이 따라붙곤 합니다.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경우도 있고 가끔은 다른 의도(^^)를 내포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것과는 별개로 저는 생에 처음으로 이 질문을 들었을 때는 '맞다. 우리 분단 국가였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제 입장에서는 완전한 제3자인 외국인의 입을 통해 남/북한의 구분을 들으니 새삼스러운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6월에는 현충일도 있고, 또 다음주면 6.25도 있습니다. 그래서 징징과 이번 호는 '전쟁'을 주제로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요. '전쟁'이라는 단어를 일상 속에서 떠올렸던 사건, 혹시 있으신가요? 개인적으로는 2010년에 발생했던 연평도 포격사건이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당시 저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데, 교실에서 담임 선생님께서 틀어주신 뉴스를 실시간으로 다같이 접하고 크게 놀랐습니다. 기록을 보면 피격 직후 대응 경보를 발령한 해병대는 대응 사격을 진행했고, 이 사건으로 대한민국 해병대원 2명이 전사하고 민간인 2명이 사망했다고 나와 있는데요. 어린 나이였지만 무언가 큰일이 일어났다는 직감과 더불어, 이후 교실에서도 몇 번이나 '대한민국이 아직 엄연한 휴전 국가임을 상기하는 사건'으로 회자됐던 기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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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과 16주간의 강의 기록

<한국전쟁>은 박태균 교수가 저술한 책으로, 질문에 대한 문답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학자이자 교수인 저자가 한 학기 동안 학생들과 수업한 내용에 살을 붙여 책으로 펴냈습니다. "전쟁은 왜 1950년 6월에 시작되었을까?" , "전쟁은 왜 끝나지 않았고, 끝나야만 하는가?" 등의 질문에 그만의 분석과 그에 따른 답변을 제시하죠. 전쟁을 다룬 책은 보통 정치적인 입장과도 긴밀히 엮여 있기에 중립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 책은 비교적 다층적, 다면적 시각으로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특히 전쟁의 개념부터 출발해 한국전쟁이 발발한 원인과 이유, 전쟁의 기간과 범위를 거쳐 종전과 미해결된 현재의 문제 등 '한국전쟁'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흐름을 전체적으로 되짚어봅니다. 책 한 권을 읽는 것으로 강의 하나를 완강하는 기분이어서, 책장을 덮을 때 즈음에는 개강부터 종강까지 함께 달린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모든 기록을 통해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였습니다. 결국 전쟁은 그 누구에게도 승리가 아니며, 민족 전체에 거대한 비극을 가져다주었다는 것. 파괴의 역사를 통해서 평화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은 참 역설적이지만.........지금도 지구상에서 전쟁이 현재 진행형임을 보고 있노라면 저자가 호소하는 평화의 절실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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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고지 전투와 출렁이는 역사의 파도
비문학을 한 권 소개했으니 문학도 함께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바로 손석춘 작가의 <원시별>이라는 소설인데요. 혹시 <코레예바의 눈물>이라는 책을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주세죽 독립운동가의 삶을 담은 책으로, 이 또한 손석춘 작가의 작품입니다. (이 책은 기회가 되면 다른 호에서 소개해드릴게요!) 

아무튼 다시 <원시별>로 돌아와서, 이 책은 한국전쟁 당시의 연희동 일대를 바탕으로 펼쳐지는 청년 셋, 진철과 수철 그리고 지혜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서울 탈환의 최전선이었던 '연희고지 전투'를 비롯해,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전쟁의 파란 때문에 각자의 삶은 이전에 없던 격동에 휘말리게 됩니다. 누군가는 종군 기자로 멀리 파견을 떠나고, 누군가는 월북을 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렇게 이리저리 흩어진 인연들은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결국 재회하게 되는데요. 극적인 재회조차 서울 수복을 위한 치열한 전투 속에서 이뤄진다는 점이 전쟁의 비극을 배가시킵니다. 

박태균 교수의 <한국전쟁>이 사실에 집중했다면, 손석춘 작가의 <원시별>은 아무래도 소설이니만큼, 전쟁에 영향을 받은 인물 개개인의 감정과 삶에 포커스를 맞춥니다. 독자들이 인물의 삶을 통해 현대사를 스쳐간 전쟁의 흔적을 곱씹어 볼 수 있도록요. 제목이 된 원시별의 어원을 찾아보면 '성간물질에서 탄생하는 초기 단계의 별'이라고 나오는데... 이는 곧 비극적인 시대 상황을 뚫고 생동하는 세 사람의 생명력을 말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은 끝나도 삶은 계속되니까, 작가는 어쩌면 어떻게 그 빛이 암흑을 뚫고 먼 미래까지 이어지는지 말하고자 이 글을 썼던 건 아닐까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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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포성이 멎고 70년이 흐른 2020년대. 젊은이들이 사랑을 포기할 정도로 세상은 팍팍하다. 사회 전반에 각자도생의 살풍경이 넘실댄다. 그해 가을, 한국전쟁의 까만 어둠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는 연가(戀歌)일 수도 비가(悲歌)일 수도 있다. 그 사랑의 기쁨 또는 사랑의 슬픔에서 반딧불처럼 반짝이는 빛을 찾았다. 한탄강 남쪽도 북쪽도 밤이 깊어서일까, 아주 작은 빛이 찬란히 다가왔다.”

- 작가의 말 中에서

위 내용과는 별개로, 작가의 말에서도 인상적인 부분이 있어 가져왔습니다.

여전히 팍팍한 세상에서 각자만의 전쟁을 치르고 계신 여러분, 힘내봅시다. '매일매일이 전쟁이군...'싶을 때도 있지만, 매번 승리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좀 후퇴한다 한들 누가 그걸 감히 패배라 부르겠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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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노래: Michael Jackson - Heal The World

이번 호 주제를 듣고 바로 생각났던 곡을 추천합니다! 오래 전 발매된 노래인데 가사가 참 아름다워요. 이대로만 모두가 살아간다면 좀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을텐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저부터 바뀌어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