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오늘'이 온다면

마지막 '오늘'이 온다면

작성자 방구석디제이

방구석 DJ

마지막 '오늘'이 온다면

방구석디제이
방구석디제이
@bangkokdj
읽음 559
이 뉴니커를 응원하고 싶다면?
앱에서 응원 카드 보내기
DJ 징징이 직접 찍은 사진

⚠️'알 수 없음'

지난주에 싱그러운 초록색에 대해 얘기했었는데,, 이번주는 완전히 반대로 '종말'에 대해 얘기해 보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릴 때 가장 무서웠던 게 무엇인가요? 저는 속된 말로 굉장한 '쫄보'라 무서운 게 참 많았는데요, 그 와중에도 제일 무서운 건 '죽는 것'이었습니다. 뭔가 죽는 순간의 고통이나 괴로움 그런 것보다는 단순히 죽음 이후, 말하자면 사후세계에 대한 공포가 엄청 컸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과거의 저는 좀 극단적인 성향이 강했긴 했지만... 어릴 때는 이 죽음 뒤에 있을 (혹은 없을 수도 있는) 그 미지의 세계가 너무 무서워서 잠을 못 이루기도 했었는데요, 지금은 그때보다 더 겁쟁이가 된데다가 하루하루 살아가기에도 벅차서(?) 사후세계에 대해 생각하는 걸 아예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 '알 수 없음'이라는 종말의 형태가 어떨 땐 공포가 아니라 신비로움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아마 모두가 정도는 달라도 공포라는 감정은 동일하게 느끼고 있을 테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종말'이라는 것은 때때로 우리에게 유혹적으로 다가옵니다. 사실 저도 그런 모순을 가지고 있는데요, 사후세계의 공포에 시달리던 유년시절의 사이사이로 이집트 미라에 엄청나게 빠져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왜 미라였는지는 지금에 와서는 잘 기억나진 않지만 아마도 그 사후세계-각자의 종말 그 이후의 순간-에 대한 믿음과 상상력이 저를 그 길(?)로 이끌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제가 어릴 때는 왜인지 모르게 미라와 관련된 전시회나 그림책들이 많았는데, 그게 저의 불필요하고도 풍부한 상상력에 큰 도움이 되었죠,,, 그렇게 모순적으로 자라난 저는 해피엔딩을 갈구하면서도 아포칼립스나 디스토피아 장르를 굉장히 좋아하기도 합니다. '마지막'이 주는 그 유일무이한 분위기와 서사의 매혹! 이런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은 아마 200% 공감하시리라 확신합니다. 사실 아포칼립스라는 용어가 종교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음을 생각해본다면, 세계를 구성하는 많은 것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종말'로부터 '탄생'하게 되는 게 신기하기도 합니다!

-

⏰GOD NEXT DOOR

저는 아주 미약하긴 하지만 신앙을 가지고 있고 여러 다양한 종교 미션 스쿨을 졸업한 사람으로서 '신'이라는 어떤 관념적인 존재를 떠올린다면 항상 형용하기 힘든 거룩한 아우라를 연상하곤 합니다. 그리고 저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초자연적이거나 절대적인 존재에 대해 생각할 때 비슷한 느낌을 가지리라 생각해요. 그런데 이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에서 등장하는 신은 그와는 180도 다른 느낌으로 등장합니다. 슬리퍼를 직직 끌며 방에 틀어박혀 낄낄대는 이 신은 취미가 '인간 괴롭히기'입니다. 신으로서 여러 법칙을 만들거나 제재를 가하면 그대로 인간세계에 적용이 되죠. 법칙의 예시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목욕을 시작하면 전화가 울린다", "접시는 반드시 설거지가 끝난 직후에 깨진다" 등등,,, 벨기에 브뤼셀의 한 아파트에 사는 이 요상한 신에게는 딸이 있는데요, 바로 '에아'입니다. '에아'는 항상 신의 그 이상한 행동들에 불만이 많았고 사건들을 계기로 복수를 감행하게 됩니다. 아빠의 컴퓨터를 건드려 모든 인류에게 남은 수명을 알려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었죠! '알 수 없음'이 '알 수 있음'으로 바뀌는 그 순간! 갑자기 인류는 천하무적이라도 된 것처럼 행동합니다. 수명이 몇 십년 남은 사람들은 갑자기 헬기에서 추락하거나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는 기행을 일삼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하더라도 자신이 지금 당장 죽지 않으리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픈 건 신경쓰지 않는 걸까요..?) 자신의 할일이자 취미를 잃어버린 신은 분노에 빠져 모든 것을 제자리로 되돌려 놓으려고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결국 이 둘의 대결이 본격적으로 펼쳐지면서 영화는 점점 더 흥미롭게 진행이 됩니다. 어찌됐든 미지의 영역, 즉 종교적인 색채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이기에 기독교적인 배경지식을 가지고 계시다면 더욱 더 재미있게 다가올 영화이기도 합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 <미스터 노바디>의 감독 '자코 반 도마엘'의 작품으로, 만약 이 영화가 마음에 드신다면 이 감독의 필모를 깨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뭔가 감독이 얘기하고 싶은 뉘앙스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영화마다 비슷하거든요!

-

💬월요일 부재중

<이웃집에 신이 산다>와 비슷하게 변주를 시도한 작품 하나가 더 있습니다. 바로 <월요일이 사라졌다>인데요, 원제는 <What happend to Monday?>로, '월요일에게 무슨 일이?'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제목만 들어도 벌써 흥미롭지 않나요, 월요일이 없어지다니! (만약 월요일이 없어진다면 방구석 DJ의 레터메일은 무슨 요일에 발송이 될까요?) 

그런데 사실 여기서 나오는 '월요일'은 사람의 이름입니다. 아포칼립스나 디스토피아에서 흔히 등장하는 배경인 기후 위기와 그로 인한 식량 등의 문제로 인해, 이 영화 속 세계는 1가구 1자녀로 산아제한법이 강력하게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런 사회에서 한 가족에게 어쩌면 과도하다고 여겨질 축복(?)이 찾아오게 되는데요, 무려 7쌍둥이가 탄생하게 된 것이죠! 1명 이상의 자녀가 태어날 경우 가족으로부터 떨어져 따로 관리되기 때문에 그런 일을 방지하고자 이 7 쌍둥이는 마치 1명처럼 생활합니다. 각자 월요일부터 일요일이 되어, 자신의 이름에 해당하는 날에만 바깥생활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이 7명의 자매는 '캐런 셋맨'이라는 이름의 한 여성으로 사회적 활동을 하며, 각자 외출하고 집으로 돌아온 이후에는 하루 일과를 상세하게 공유해 각자의 나날이 남들이 보기에는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게 된 우리의 월요일. 그 월요일을 찾아 헤매는 나머지 요일들의 우당탕탕이 이 영화의 중심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제목에서 주는 의문을 제가 강하게 스포한 것 같지만, 이미 개봉한 지 오래되었으니 이 정도는,, 애교로 봐주시길 바랍니다^^ 영화 안에는 또 다양한 반전이 존재하니 그것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을게요! 오늘의 두 영화는 '종말'이라는 키워드를 조금 비틀어 살짝 유쾌하면서도 가벼운 느낌을 주고 있으니 한 번 도전하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

-

🎵오늘의 노래: SZA - Kill Bill

왠진 모르겠지만, 이번 글을 쓰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노래입니다! 아무래도 요즘 도자 캣에게 노출된(?) 저의 알고리즘의 영향도 있겠지요?



😱종말 카운트다운

며칠 전 점심 식사 자리에서 넷플릭스 <종말의 바보>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지구와 소행성 충돌까지 200일 남은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해당 드라마를 두고, '종말이 200일 남았으면 내일부터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토론이 벌어진 건데요. 199일은 그대로 살고 하루만 특별히 살겠다는 A / 당장 해외로 떠나겠다는 B / 200일이 다 되기 전에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겠다는 C 등등 의견은 여러 갈래로 나뉘었습니다. 절 웃긴 답변은 "그런데 한국인들 종말까지 200일이나 남았으면 하루 정도만 절망하고 다음날 정상 출근할 것 같은데..."라며 중얼거리던 D의 것이었어요. 정말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mbti N들의 특징이 상상을 좋아하는 거라고들 하는데 그래서일까요. 저는 종종 내일 지구가 망한다면 하는 생각을 해보곤 하는데요. 이전 레터로 소개해드렸던 조예은 작가의 <스노볼 드라이브> 처럼 가까운 종말을 맞닥뜨린 상태가 아니라면... 저도 아마 당장은 평범한 일상을 지속하면서 못했던 것들을 할 것 같습니다. 전보다 연차는 많이 쓸 예정이에요. 바쁘단 핑계로 미뤄두었던 일들을 휴가를 내서라도 해결하고, 가보고 싶었던 곳들을 가보고, 하지 못한 말들을 좀 더 솔직하게 다듬고, 또 신변도 적당히 정리하고요.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종말'이나 '죽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잘 사는 것만큼이나 잘 죽는 것에 대한 고민도 커져가는 시대라고 하더라고요. 삶의 마지막이 성큼 다가오는 것은 정말 두려운 일이 분명합니다만, 그렇기에 다가올 매일이 더욱 가치있게 느껴지는 때가 있습니다. 구병모 작가가 쓴 <파과>의 마지막 구절처럼요. 

p342.

사라진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 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서윤빈 작가의 신작 <영원한 저녁의 연인들>입니다. 

-

🤖트랜스 휴먼, 임플란트 장기, 그리고...

오늘 소개해드릴 책은 서윤빈 작가의 신작 <영원한 저녁의 연인들>입니다. 4월 초에 나온 따끈따끈한 신작이라 빨리 읽어보고 싶었는데 마침 서점에 재고가 딱 한 권 남아있더라고요. 이것이 바로 운명? 이때다 싶어 집어왔습니다. 


이 책은 장기를 임플란트처럼 교체할 수 있게 된 근미래를 살아가는 인류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유온은 장기 구독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죽음을 택하는 이들을 유혹해 돈을 버는 '가애'로 일하고 있습니다. 바를 운영하는 메켄지와 차익을 분배하는 조건으로요. 책의 도입부에 나오는 유온의 고객, 서하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영생은 모두에게 공평한 결말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인류는 지난 한세기 동안 그 전까지의 인류가 만든 것보다 더 많은 정보를 만들어냈다. 옛날 영화들이 몇몇 명작을 빼고는 대부분 잊혔듯, 우리의 기억 역시 선명히 빛나는 새로운 것들만 남고 모두 사라져버릴 것이다. 세계지도가 생겨난 이후로는 아무도 오아시스를 그리워하지 않듯이.
(중략) 그녀는 상자와 함께 내 손을 꽉 쥐었다. 마치 그렇게 하면 계약이 체결되기라도 하는 것처럼.
- 배신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다른 사람 찾아. 당신이 내게 해준 것처럼 마지막을 지켜줄 사람을.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하려는 양 입을 열었다. 그녀는 다른 한 손으로 내 입을 막았다. 사실 할 말은 딱히 없었다.
- 그냥 받아줘.
우리는 30분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를 안았다. 그녀는 내 품에서 조용히 죽었다. 사인은 임플란트 구독 기간 만료로 인한 심정지였다. 이 시대에도 영생은 이론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변수는 원래 염세적이고 삶에 무뎌진 등장인물들에게 가장 먼저 생기는 법. 유온은 얼마 안 가 자신에게 큰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성아라는 존재를 만나고 맙니다. 자신 외의 존재에 그렇게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었나 할 정도로요. 성아와 필요 이상으로 가까워지면서 유온은 다양한 사건에 휘말리고, 잊고 살았다고 생각했던 여러 감정의 홍수 속에서 자신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생각하게 됩니다. 어쩌면 원했던 것은 자본으로 임플란트 장기의 구독을 이어가며 간신히 연명하는 삶이 아니라, 그 이상이었다고 말이죠. 

작가는 이 이야기를 디스토피아보다는 로맨스 소설로 생각하고 집필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비슷한 장르의 소설들이 결국 사랑이라는 단어 없이 사랑을 노래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일 거예요. 마지막 순간에 인류는 결국 증오보다 사랑을 말하느라 바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서하'와의 추억을 더듬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삶이 종말에 이른 시점에, 죽음이 가까워 온 마지막 순간에 떠올리는 기억들은 이렇게도 사소한 것들의 총집합이 아닐까하는 생각에서 해당 구절을 함께 덧붙여보았습니다.

「우리는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되는지 보려고 책들을 궤짝에 담아 보관해두었다. 나중에 보니 책들은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져 있었지만, 옅게나마 향긋한 냄새를 풍겼다. 그녀는 그 황당한 결과를 보기 위한 기다림조차 즐거웠다고 말했다.

(중략) 그녀는 온종일 차 안에 있었던 날을 기억했다. 우리는 땅의 끝에서 끝까지 차를 몰았다. 국도 구석구석에서 옥수수와 특이한 간식거리들을 먹었고, 피곤해지면 차 안에서 쉬었다. 그녀가 열다섯 살 이후로는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달콤한 휴게소 간식을 파는 곳이 딱 한 곳 남아있었다. 」

-p25

 -

🎵오늘의 노래: Johnny Stimson - Flower

요즘처럼 어딜 가나 무성한 녹색이 반겨주는 때에 길을 걸으며 듣기 좋은 이지리스닝곡 ✨

가볍게 따라 흥얼거리기 좋은 곡이니 즐겁게 들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