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모든 X에게 (1)
작성자 방구석디제이
방구석 DJ
내가 사랑한 모든 X에게 (1)
💞내가 사랑한 모든 X들에게
이번주 글의 주제는 아주 우연히 정해졌습니다.
매번 밥 먹을 때마다 심심풀이 땅콩처럼 조금씩 꺼내먹었던 코미디들이 어느새 꽤 많아졌습니다. <미란다>, <브나나>, <프렌즈>, <빅뱅이론>, <유니콘> 등등… 그리고 저는 이번주에 이 코미디와 관련한 두 개의 뉴스를 접했는데요. 바로 <브나나(브루클린나인나인)>의 ‘홀트 서장’역을 맡은 ‘앤드리 브라우어’의 부고와 <프렌즈>의 ‘챈들러’였던 ‘메튜 페리’의 사인과 관련된 뉴스였습니다. 이제 저는 처음 이 두 드라마를 접했을 때처럼 마음껏 웃을 수 없을 것입니다. 환하게 웃거나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하는 스크린 속 그들을 볼 때마다 그리워하고 슬퍼하게 될 테지요.
누군가의 떠나감, 그리고 나아가 어떤 캐릭터의 떠나감은 여러모로 많은 사람들이 겪었을 주제라는 생각에 초마와 함께 이러한 얘기를 해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내가 사랑한 모든 X들에게’라는 제목의 시리즈로. 여기서 X는 미지수라는 의미로, 문학이나 영화에 등장한 캐릭터들을 하나씩 넣어서 말해보고자 합니다. 아무래도 이번주에 바로 코미디 장르에 대해 말하는 것은 조금 힘겨운 일일 것 같아 초마와 상의 끝에 ‘연말’하면 생각나는 판타지 소설이자 영화 ‘해리포터’의 캐릭터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먼저 제가 사랑한 두 X, ‘홀트 서장님’과 ‘챈들러’를 위해 기도하며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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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WAYS
저는 사실 마음 깊은 한구석에 기이한 취향 두 가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장발 캐릭터를 좋아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절절(?)하지만 이루어지지 않는 짠내 나는 러브스토리에 진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두 가지를 모두 충족하는 완벽한 인물이 바로 <해리포터>에 있는데요, 그 이름도 유명한 - 이름마저 간지나는 - ‘세베루스 스네이프’입니다.
<해리포터>시리즈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스네이프 교수는 완벽한 *‘안타고니스트’입니다. 음울한 인상, 어두운 배경, 그리 좋지 못한 성격과 평판, 시리즈 내 최강빌런(이름은 말하지 않겠습니다)의 수하, 노골적으로 주인공을 싫어하는 면 등에서 말입니다. 그러나 그저 이렇게 단편적이고 밋밋한 인물이었다면 큰 사랑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굉장히 모순적이고도 다층적인 서사를 지닌 인물입니다. 자신이 가장 증오하는 남자와 가장 사랑하는 여자 사이에서 태어난 ‘해리 포터’를 바라보는 그의 심경은 굉장히 복잡미묘합니다. 심지어 해리는 아버지인 제임스 포터를 무척 닮았고, 어머니인 릴리 포터를 닮은 것은 ‘녹색 눈’뿐입니다. 그렇기에 그 녹색 눈동자를 마주할 때마다 스네이프는 얼마나 격한 감정의 파고를 맞았을까요!
(영화에서는 다니엘 래드클리프의 렌즈 거부반응으로 인해 녹색 눈 연출은 실패했지만 저는 과몰입을 위해 정신적으로 녹색눈 필터를 입혀 영화를 봤습니다) 심지어 죽기 전 해리의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You have your mother’s eyes”라고 말하는 부분은 정말 저의 영화 역사에 남을 명대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마지막 순간, 그가 제임스 포터나 해리에게 가지고 있었던 온갖 질투, 증오와 같은 어두운 감정들은 휘발되고 녹색 눈동자로 대변되는, 오로지 사랑과 애틋함, 그리움 같은 것만이 그의 마지막을 함께합니다.
그리고 그런 릴리의 아들 해리를 지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해왔으나, 결국 그것이 해리의 ‘죽음’을 위해서라는 엄청난 반전을 알고 괴로워하는 스네이프. 저는 이 장면에서 덤블도어가 참 성격이 고약한 할아버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스네이프 팬의 의견입니다) ‘죽음을 먹는 자들’에 속해있으면서 동시에 ‘불사조 기사단’에도 속해 있는,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나 없는 스네이프는 말하자면 해리포터의 서사 진행에서 절대 빠져서는 안 되는 강력한 핵심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목숨을 건 이중 스파이의 삶을 살았던 것이 바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복수와 그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니…
이러한 그의 행보는 영화 시리즈가 막바지에 다다를 때까지 거의 드러나지 않고 그 유명한 “Always”라는 대사를 할 때가 되어서야 관객들은 알게 됩니다. 그의 모든 생이 들어간 단 한 문장의 강력한 주문. 그 주문과 동시에 스네이프는 자신의 ‘패트로누스’를 보여주는데, 저는 이 장면이 책보다 더 강렬하게 다가오는 영화의 명장면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푸른 연기가 희미하게 사라져가고 놀란 덤블도어의 시선을 거쳐 다시 돌아오는 흔들림없는 스네이프의 얼굴. 그리고 그의 한마디 “Always”.
생각해 보니 저는 한 장면에 꽂히면 한 영화를 N번 관람하는 버릇이 있는데요, 이 장면과 해리의 눈을 보기 위해 ‘자신을 보라’라고 말하는 앞선 장면 두 개 때문에 당시 코묻은 용돈을 탈탈 털어 영화관에서 한 5번은 봤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퇴장하라는 말을 들을 때까지 앉아서 오열을 한 기억도 있군요.
비하인드에 의하면, 롤링 작가는 ‘스네이프’ 역을 맡은 ‘알란 릭먼’에게만 스네이프의 반전과 비밀들을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걸 알고 영화를 다시 보면 뭔가 해리를 볼 때마다 그 미묘한 감정들이 얼굴에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아마도 알란 릭먼 배우가 훌륭하게 스네이프 그 자체가 되었기 때문이겠지요. 아무튼 저에게 최고의 왕자님은 ‘언제나’ 바로 이 ‘혼혈 왕자’일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 스네이프 주제곡으로 등장하는 ‘The Prince’s Tale’이라는 곡의 유투브 댓글이 굉장히 스네이프 덕후들의 마음을 흔드는데요. “We have been hating Severus for 9 years but we loved him within 5 minutes.”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해리포터의 최애 캐릭터, 그리고 세베루스 스네이프에 대한 감상도 정말 궁금하군요!
* antagonist : 안타고니스트. 작품 속에서 주인공에 대립적이거나 적대적인 관계를 맺는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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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IN과 P.A.I.N
법이나 제도가 해결하지 못했던 부조리를 예술을 통해 해결한 한 사진작가가 있습니다. 바로 ‘낸 골딘(Nan Goldin)’인데요, 사진이나 설치미술, 행위예술 등으로 사회적인 문제에 전면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작가였습니다. 낸 골딘은 특히 히피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작업을 시작했기에 소수자, 퀴어, 약물과 같은 문제들을 주로 다뤘습니다. 오늘 제가 소개해드릴 영화는 바로 이런 낸 골딘의 이야기와 작업을 담은 <모든 아름다움과 유혈사태(All the beauty and the bloodshed)>입니다.
그의 일대기를 따라 챕터별로 나눠져 있는 이 영화에서 제가 주목한 부분은 바로 ‘약물’과 관련된 부분입니다. 2017년 낸 골딘은 ‘P.A.I.N’이라는 단체를 설립하는데요, ‘Prescription Addiction Intervention Now’라는 의미로, 약물 중독으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연대하기 위한 단체입니다. 거대한 제약 회사인 ‘퍼듀 파마’는 자신들이 만든 마약성 진통제인 ‘옥시콘틴’을 팔기 위해 여러 의료산업, 심지어 국가와도 단합하여 많은 환자들에게 ‘옥시콘틴’이 ‘합법적으로’ 남용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낸 골딘 또한 이 옥시콘틴의 피해자입니다. 낸 골딘은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죽거나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그의 주위에는 많았고, 엄청나게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부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그들의 고통을 해결해주지도, 이해하지도 않았는데요. 이에 낸 골딘은 ‘P.A.I.N’을 통해 ‘퍼듀 파마’를 소유한 ‘새클러 家’가 후원하는 미술관 등에서 약물 중독에 반대하는 퍼포먼스를 펼치며 목소리를 냅니다. 결국 그러한 그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결국 ‘퍼듀 파마’를 상대로 승리하게 됩니다. 사람과 사람이 연대해서 만들어내는 놀라운 힘에 대한 이야기, 이 영화를 추천 드립니다.
앞서 제가 언급했던 ‘챈들러’ - ‘메튜 페리’는 정말 오랫동안 약물 중독으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 또한 1997년 사고로 인해 처방받았던 마약성 약물로 인해 중독되었는데요, 그의 사인이 이러한 약물 중독과도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는 뉴스를 접하고 저는 이번주에 이 영화를 꼭 소개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메튜 페리의 유가족은 그의 유산을 약물 중독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한 재단을 설립하는 데 사용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과거 한 인터뷰에서 그가 했던 말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내가 죽을 때 사람들이 ‘프렌즈’를 가장 먼저 언급하기 원치 않는다. 다른 사람들을 도왔다는 것이 먼저 언급됐으면 좋겠다. 그걸 증명하기 위해 남은 인생을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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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노래: Mad Soul Child - Dear
오늘은 아무 맥락 없이 제가 이 글을 쓸 때 들었던 노래를 추천해 드리고자 합니다. 영화 <아저씨>의 삽입곡이었던 이 노래, 겨울에 정말 잘 어울립니다!
💞내가 사랑한 모든 X들에게
영어 공부를 놓지 말고 해야 겠다고 생각한 적 있어요. 대학 졸업 후에 영어를 쓸 일이 거의 없다 보니 자꾸만 퇴화되는 실력에 스스로 당황스러움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진입 장벽이 낮은 콘텐츠 중에 ‘드라마로 영어 공부’를 하면 좋다는 팁을 들었어요! 그렇게 저와 <브루클린 나인나인> (이하 ‘브나나’)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브나나는 유쾌하고 독특한 성격의 주인공이 NYPD로 일하면서 옴니버스 형식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겪는 이야기예요. 그 중에서도 전 소신있고 강단있는 ‘홀트 서장’ 역을 참 좋아했는데요. 최근 해당 배역을 맡은 ‘앤드리 브라우어’의 부고 소식이 들려왔어요. 이렇게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보내니, 내가 그리워했고 또 우리가 그리워했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지더라고요. 이번 주는 그래서 추억과 그리움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이번 호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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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히지 않을 용기
DJ 징징과 얘기하다가, 그리운 X들을 언급하기에 마땅한 시리즈로 <해리포터>가 선정됐어요. 전 그 중에서도 그리핀도르의 소심한 멋쟁이 ‘네빌 롱바텀’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어릴 때는 해리, 론, 헤르미온느로 이루어진 삼총사가 참 멋져 보였어요. 호그와트 곳곳을 돌아다니며 모험을 하고, 악의 세력에 저항하며 자신들만의 길을 꿋꿋이 나아갔으니까요. 그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과 희생도 있었지만 최종 시리즈인 <해리포터: 죽음의 성물>까지 달려가는 그들의 일대기는 정말이지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였죠. 저는 해리포터 시리즈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3년만에 만나는 사촌언니가 저희 집에 놀러와있는데도 방에서 책을 읽느라 나가지 않은 적도 있어요. (언니 미안해 ^^;;)
그만큼 좋아하는 이야기다 보니까 시리즈 전체를 여러 번 읽게 됐는데요. 시간이 흐를수록 네빌이 정말 강하고 멋진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나 책을 통해 해리포터를 접해 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네빌은 저학년때부터 부족한 부분이 참 많은 캐릭터거든요. 그를 걱정한 할머니가 다소 과격한(?) 방식으로 잔소리를 퍼붓거나, 잊어버린 일이나 물건이 있을 때 상기시켜주는 구슬인 ‘리멤브럴’을 부엉이를 통해 그에게 보낼 정도죠. 학업에 있어서도 뒤쳐지는 부분이 많아 교수들로부터 핀잔을 듣기도 합니다.
하지만 네빌이 실은 해리 대신 이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뻔한 캐릭터라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이 이야기를 다 하자면 너무 길기 때문에 직접 책을 읽어보시는 걸 권장드려요. 다만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는 겁쟁이보다는 용사의 심장을 갖고 있는 캐릭터가 바로 네빌이라는 것!
이같은 네빌의 용기를 엿볼 수 있는 장면들 중에 저는 두 씬을 특히 좋아하는데요. 하나는 삼총사가 볼드모트에 맞서기 위해 기숙사 규칙을 어기고 밤늦게 나가려고 하자, “더 이상은 안 돼”라며 그 앞을 막아서는 부분이에요. 물론 삼총사는 네빌을 저지하고 원래 하려던 대로 행동하지만, 친구들 앞을 막아서는 게 얼마나 용기 있는 행동인지를 제게 다시 한번 일깨워준 장면이었어요. 두번째는 5권 불사조기사단 시리즈에서 엄브릿지 교수(해리포터 시리즈의 대표적인 악역)에 맞서기 위해 조직된 단체, D.A.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네빌의 모습이었어요. 질 나쁜 형벌과 갖은 협박 앞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으려는 네빌의 태도는, 똑같은 이유로 고문을 받다 고문 휴유증으로 병원에 입원한 네빌 부모님의 강인함을 떠올리게 했죠.
저는 그런 장면들을 보면 ‘만약 나라면 저렇게 할 수 있었을까?’를 주로 생각해보는데요. 쉽지 않을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인물들이 보여주는 곧은 신념과 남다른 용기를 동경하게 됩니다. 시간이 생겨서 다시 한번 해리포터 시리즈를 정주행할 기회가 있으시다면, 네빌을 중심으로 읽어보시는 것도 추천드려요!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부분이 보이면서 이야기가 더욱 풍성해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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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노래: 이승윤 - 무명성 지구인
살다가 가끔 이 거대한 세상에서 내가 엑스트라처럼 느껴질 때 들으면 좋은 노래입니다. 안녕 난 무명성 지구인이야, 반가워 내 이름은 아무개, 기억할 필욘 없어 하고 다소 자조적으로 들리는 가사를 듣고 있다 보면 문득 전하고 싶은 말이 생깁니다. 모두가 각자 인생의 주연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는 말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