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심 불편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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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심 불편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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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2월 첫째 주]

문학동네

내심 불편한 이야기


-"와... 너무 예뻐.."
엄마 딸(여동생)이 Youtube 채널 위라클에서 박위와 송지은 결혼식 영상을 보고 있을 때였다.

-"뭐가?"
-"응?"
-"뭐가 예쁘냐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엄마 딸은 대충 대답을 얼버무렸다.

-"그냥"

화살은 곧 엄마에게로 향했다.

-"엄마! 만약에 만약에 내가 휠체어 탄 남자를 결혼 상대로 데려와. 그럼 어떨 것 같아?"
-"응?"
-"어떨 것 같냐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엄마도 대충 대답을 얼버무렸다.

-"나도.. 그냥."

영상은 곧 끝났고, 우리는 서로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했다.

아니다. 딱 하나를 얻었다. 불편함. 그건 불편함이었다. 가족이라도 터놓을 수 없는 '내심 불편함'이었다.

꺼림칙한 기억의 회생


물론 내심 불편함은 우리 가족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대학교 4학년 2학기 마지막 보고서 주제는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 사업 예산 전액 삭감'이었다. 내 대학 인생의 마지막 리포트를 대충 쓰고 싶진 않았기에 노들장애인 야학과 전장연 시위 현장까지 직접 찾아다녔다. 중증장애인 이야기를 몇 시간 동안 듣고, 몇 권의 책과 논문을 뒤져 꾸역꾸역 써냈다. 중증장애인에게 지원하는 서울시의 예산 전액 삭감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구구절절 발표했다. 하지만 교수와 학생들은 내심, 불편해했다.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온평지차)를 다 읽고 당시 발표자료를 끄집어낸 건, 그래서 우연이 아니었다.

그렇다. 나는 '고작 200년'이라고 썼다. 물론 그 뒤엔 "우리나라는 200년까지도 가지 않는다"라고도 썼다. 이어진 내용은 <유언을 만난 세계>에 나온 자필 유서였다.

음독 자살한 두 명의 유서는 채 반 세기도 지나지 않았다. 이들의 죽음을 오롯이 유서로써 학습하고, 받아들이는 건 매우 꺼림칙했다.

그렇다면 동시대 이야기라면 꺼림칙하지 않을까. 2024년 대답은 "전혀 그렇지 않다"이다. <온평지차> 출판일은 2024년 7월 1일(월)이다. '내심 불편함'은 책을 읽고 배가 됐다.


현실은 옥상옥


김원영 작가는 "춤에 관한 개인적인 경험과 춤의 역사를 통해 차별과 평등의 문제를 다룬다"고 선포하며 시작한다.

문제를 다루는 매개체로 '춤'을 선택한 이유는 '기예의 본질에 가깝'기 때문이었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춤은 "포획하고 매매하고 조롱하고 착취하고 혐오하고 동정하고 욕망하는 '시선' 앞에서 기묘하고 창조적으로 예상치 못한 어떤 순간을 만들어낼 때, 즉 도저히 포획, 매매, 조롱, 착취, 혐오, 동정, 욕망할 수만은 없는 어떤 몸으로서 그것이 발견될 때, 우리 모두는 이전까지 상상한 적 없는 세상을 향한 문을 연다. 바라보는 사람과 바라봄을 당하는 사람은 이전까지와 전혀 다른 관계로 진입"한다.

물론 현실은 차갑다. 삶은 드라마와 달랐기에 한예종에 불합격했고, 공공기관에선 '신체적 지적 장애학생은 이성적으로 작품의 완성도를 만들어 나가기 어렵다'고 공식 답변했다.

스스로도 현실을 달갑게 긍정하지 못했다. 대학 시절 폭우가 쏟아지는 날 밤, 숨을 헐떡이던 개가 이면도로 한가운데 누워 머뭇거릴 때조차 그의 몸은 결코 저절로 움직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학 동아리에서 뒤풀이 자리로 이동할 땐 느리고, 투박하고, 부산스러웠기 때문이다. 관음증으로 비칠 정도로 '우아한 직립보행과 효과적이고 말끔한 움직임, 긴 목, 탄탄한 허벅지, 넓은 어깨, 정수리부터 엉덩이까지 떨어지는 척추의 곡선을 욕망'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옥상옥이었다.

아니, 이건 고구사잖아?


그래서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말을 기억한다.**

김원영은 '승강장에 번개처럼 달려가 위기에 처한 사람을 구한 50살 건설노동자 웨슬리 오트리' 이야기를 끄집어낸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단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단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보았을 뿐입니다.'라고 답했다. 이 말은 겸손이 아니라 진실에 가깝다."라며 인용했다.

웨슬리 오트리는 단순히 목격하지 않았다. 웨슬리 오트리는 승강장에 떨어진 사람을 주목했다. 그리고 몸을 변화시켰다.

처연한 현실을 타개하는 해결책으로 김원영이 제시한 게 바로 '탁월성에 주목' 하여 '몸에 깃들게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 대목은 니체의 사상과 유사한데,,, 다음에 알아보도록 하자 ^^)***

너무 추상적인가. 그렇다면 '평범한 일상을 변주시켜야 한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것마저 너무 추상적인가. 그렇다면 '상상을 통해 의식'하라고 더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겠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내심 불편함'은 그래서 자연스럽고, 그게 문제 해결의 시작점인 셈이다.

그러면 우리는 떠밀려 가지 않을 수 있다. 단순한 '반응'이 아니라 때에 걸맞은 '대응'을 할 수 있다.

'여전히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쉬지 못한다'는 칼럼(20241124 경향신문發 <박경석의 운동이 초래하는 진정한 시민의 불편>)을 우연히 보았다.

박경석은 한껏 춤췄고, 춤추고 있고, 어쩌면 앞으로도 춤출 것이다. 20년 간 고통은 구경당한 것일까. 그에게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반응하는 것에 가까운 것일까. <온평지차>를 다 읽고도, 바로 그 '내심 불편함'이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 아직까지 깃들지 못한 몸에서 퍼퍼위****를 주절거려 본다.


* 정종연 PD는 PD 지망생들에게 '콘텐츠적 경험(20240206 폴인發 <정종연PD 기획법 "창작은 민주주의 아냐, 1명이 밀고 가야">)'을 강조했다("꼭 생각해보세요. 이게 왜 좋은지, 어떤 요소가 맘에 드는지. 좋은 게 왜 좋은지 정확히 아는 게 정말 중요해요."). 그 연장선에서 한 말이었다. 나도 모르게.

** 한강 <소년이 온다> 中 "2009년 1월 새벽, 용산에서 망루가 불타는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쑥 중얼거렸던 것을 기억한다. 저건 광주잖아. 그러니까 광주는 고립된 것, 힘으로 짓밟힌 것, 훼손된 것, 훼손되지 말았어야 했던 것들의 다른 이름이었다." 표현을 오마주했다.

*** 쓰고 나서 지웠다.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대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중 일부만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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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춤을 출 줄 아는 신만을 믿는다. 이제야 어떤 신이 몸속에서 춤을 추고 있다. 운명을 사랑하면 비로소 춤을 출 줄 안다. 차라투스트라는 춤추는 자이다. 가벼워지기를 바라고 새가 되기를 바라는 자는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나의 가르침이다. 자아를 찾는 자들이여! 입으로 자아를 찾지 말아라. 자아는 말하는 것이 아니고 행하는 것이다. 나의 덕은 춤추는 자의 덕이다. 그리고 무거운 것이 가볍게 되고, 모든 몸이 춤추는 자가 되며, 정신 모두가 새가 되는 것. 그것이 내게 있어서 알파이자 오메가이다.

**** 정혜윤 <앞으로 올 사랑>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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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디언들이 잃어버린 단어 하나를 기억하고 있다. 퍼퍼위. 아메리카 원주민의 말인데, 퍼퍼위는 '버섯을 밤중에 땅에서 밀어 올리는 힘'을 뜻하는 단어다. 내가 이 단어를 발견한 것은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출신의 로빈 월 키미러가 쓴 <향모를 땋으며>라는 책에서였다. 이 단어를 만든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생명을 만드는 에너지가 우리를 감싸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런 것이 주변에 있다고 생각하면, 그런 것을 느끼기 시작하면 더 잘 살 수 있다. 키머러가 만난 증조할머니뻘 되는 원주민 할머니의 말에 따르면, 언어는 그냥 말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담겨있는 문화다. 인디언들이 사라질 때 세상을 바라보는 가장 좋은 방식 하나가 사라져 갔다. 가끔 아침 출근길에 공원에서 '퍼퍼위'하고 속으로 한 번 속삭여본다. 밤새 생명을 키운 보이지 않는 힘에 조금 더 가까이 있고 싶어서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힘들과 함께 힘을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