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롤모델 특집]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 이태영

작성자 우따따

[여성 롤모델 특집]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 이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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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ddad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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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판사라니... 사회 분위기상 시기상조야. 가당치 않지!”

이 말은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가 판사 임명을 거부 당하며 들었던 말입니다.
최근에는 드라마에 여성 판사도 많이 등장하고,뉴스에도 자주 등장하고 있죠.

사진 출처: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여성신문

그러나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여자들이 법을 공부하고 법조인이 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어요. 아직도 ‘판사’ 하면 나이 지긋한 아저씨들이 먼저 떠오를 때가 있는데요.

그렇다면 여성 법조인이 아예 존재하지도 않던 시절, 최초의 여성 변호사는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아들이든 딸이든 공부만 잘하면 
대학에 보내 주겠다”는 어머니의 말에 
용기를 얻은 한 여성 청년은 
1932년 이화여자전문학교에 입학하여 
가사과를 수석 졸업했는데요.

그 후로 독립운동 하던 남편을 만나 결혼 후 옥바라지와 집안일을 하며, 독립운동을 도왔어요.그렇게 아이를 넷이나 둔 33살의 나이, 그는 서울대 법대에 최초의 여학생으로 입학했죠.
전쟁통에 부산까지 피난을 가는 와중에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으로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어요. 대한민국의 첫 여성 변호사,이태영의 이야기입니다.

 

사진 출처: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여성신문

당시 초대 대법원장은 이태영을 최초의 여성 판사로 임용할 것을 건의했는데요.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두 가지 이유로 임용을 거부했어요.

첫째, 사회 분위기상 아직 여자가 판사직을
하는 것은 시기상조라서 가당치 않다는 것
둘째, 야당 의원의 아내라는 이유

그는 법관의 꿈을 접고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어요.그런데 ‘최초의 여성 변호사’라고
소문난 사무실이라 그랬을까요?

사진 출처: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여성신문


소박맞은 아내부터 첩, 시국 사범까지 다양한 이들이 찾아와 길게 줄을 섰습니다. 게다가 돈이 없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이태영은 이들을 거절할 수 없었고 아예 무료법률상담소를 세워 운영하였습니다. 이는 현재 한국가정법률상담소가 되었죠.

그렇게 수많은 여자들과 어린이, 그리고 가난한 자에게 법을 알려주고,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도운 이태영 변호사.그는 주위 변호사들과 함께 한국 최초의 로펌을 설립하기도 했는데요.그 과정에서 법의 모순도 발견해요. 헌법에서는 남녀평등을 보장하지만, 하위법에는 여성이 불리한 법률 내용이 있었죠.

그렇게 계몽 운동과 가족법 개정, 그리고 당시 여성 차별의 뿌리가 되었던 호주제를 폐지하기 위한 운동 등에 앞장섰어요.

대한민국 첫 번째 여성 변호사이자 독립운동, 여성운동, 민주화 운동을 한 사회운동가인 이태영의 명언을 소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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