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8/2주차] ▶️ 들어봐! 유리의 숲 | 💿 찰리 XCX
글. 이민영, 서성덕(대중음악 평론가), 김복숭(작가)
‘들어봐! 유리의 숲’
이민영: 게임 ‘동물의 숲’에서 무인도의 삶은 이주민을 맞이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섬을 가꾸고, 주민과 사귀며, 특산물을 나누는 이 다정한 세계를 각별히 아껴온 싱어송라이터 최유리는 자신만의 숲을 하나 지었다. 숲지기가 되어 입주 신청서를 받고 주민을 모집하는 토크쇼 ‘들어봐! 유리의 숲’이다. 시즌 2의 네 번째 입주 신청자는 TWS의 영재와 지훈. “저보다 목소리 작은 사람들, 처음 봐요.”라는 숲지기의 말처럼, 조곤조곤한 목소리마저 닮은 세 사람의 대화는 낮고 잔잔하게 흘러간다. 최유리는 형제 이야기, 본업 이야기로 공통점을 짚어가며 살뜰히 공감하다가도 장난을 슬쩍 얹어 웃음을 만든다. ‘동물의 숲’을 플레이하지 않는 영재에게는 자신의 섬 ‘도마도’에 초대하겠다며 영업에 열을 올리고, 게임과 춤 중 춤을 택한 지훈에게는 “반려가 되셨어요.”라며 짐짓 엄격한 숲지기가 되는 식이다. 그렇게 풀어진 자리에서는 깊은 이야기마저 어렵지 않게 흘러나온다. 지훈이 ‘2025 MBC 가요대제전’ 무대에서의 아쉬움을 털어놓으면, 최유리는 “저도 실수할 때 많아요.”라며 자신의 경험을 함께 꺼내놓는다. 처음 만난 사이에도 자연스레 속마음이 오가는 편안한 대화는, 일상의 말들을 닮은 가사와 담백한 목소리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온 최유리의 노래와도 닮아 있다.
그러니 이 숲의 대화가 어느새 노래가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영재는 42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가사라며 ‘우리의 언어’를 아끼는 곡으로 꼽는다. 최유리는 팬들에게 진심을 가감 없이 전할 수 있는 수단이 많지 않다며, 노래를 그 수단으로 택한 영재의 마음을 다정하게 짚어준다. 지훈 역시 “같은 팀원으로서 건넬 수 있는 응원과 위로에는 한계가 있”지만 “그 한계 너머에 항상 음악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연습생 시절 최유리의 노래가 자신들 곁에 있어주었던 날들에 고마움을 전한다. 이들에게 노래란 말로 다 하지 못한 이야기를 마저 하는 일인 셈이다. 그래서 서로의 노래를 부르는 ‘특산물 교환’ 코너는 이 숲의 대화가 가장 깊어지는 시간이 된다. 영재의 ‘바람’과 지훈의 ‘사계절’ 라이브에, 최유리는 TWS의 ‘다시 만난 오늘’을 포근한 음색으로 화답한다. 입주 심사 결과 발표 직전, 마지막 어필이라며 발매 전인 최유리 씨의 신곡 ‘막사랑’을 수줍게 꺼내놓는 영재의 목소리에는 인이어 볼륨을 살며시 올려 귀를 기울인다. 탈락이라는 짓궂은 장난 끝에 심사 결과는 물론 통과. 오늘 받은 좋은 에너지를 잘 간직해 42와 다른 분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지훈의 마지막 인사처럼 이 숲의 대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또 한 번 노래가 되어, 위로가 필요한 누군가에게로 흘러갈 것이다.
‘Charli XCX presents Music, Fashion, Film’
서성덕(대중음악 평론가): 찰리 XCX가 새 앨범 ‘Music, Fashion, Film’과 함께 공개한 42분 분량의 영상은 뮤직비디오가 아니다. 앨범 수록 곡 전체를 축으로 삼아 그의 작업 과정, 여러 비디오 조각, 내밀한 독백을 교차 편집한 다큐멘터리이자 비주얼 앨범이다. 찰리 XCX는 도입부에서 대중이 새 앨범을 특히 이 영상의 형태로 감상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또한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를 “내가 음악, 패션, 영화의 전문가라서가 아니라, 그것들이 내 삶에 본질적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brat’이 한 장의 앨범이기 이전에 하나의 색으로 압축된 선언이었던 것처럼, ‘Music, Fashion, Film’은 영상으로 짜여진 고백이다.
찰리 XCX는 앨범의 핵심 주제인 명성의 공허함과 자아 성찰을 직설적으로 이야기한다. 그는 쇼핑이 물건을 사는 일이라기보다는 새로운 정체성을 찾는 일에 가깝지 않느냐고 씁쓸하게 되묻는다. ‘Camera’의 뮤직비디오 아이디어를 감독과 논의하며, “연기자와 카메라의 관계는 흥미롭지만, 동시에 취약하고, 때로는 수치스럽기까지 하다.”고 털어놓는다.
새 앨범을 스타일 변화로만 바라보면, ‘brat’의 파티 걸 페르소나가 록스타로 변신한 것 같다. 하지만 찰리 XCX는 록 사운드를 팝스타로서 겪는 불안과 허무를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 그릇으로 선택한 듯하다. 결국 주제도 스타일도 형식도 다른 앨범이다. ‘brat 2’는 나올 수 없었다. ‘롤링스톤’ 영국판 인터뷰에서 그가 말했듯, 같은 것을 두 번 만드는 일에는 창작자로서 보람이 없기 때문이다.

마크 해던 - ‘개와 괴물의 시간’
김복숭(작가): 마크 해던이 쓴 ‘개와 괴물의 시간’은 폭력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어둠 속을 헤매는 일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번 단편선의 매력을 하나 꼽자면 그리스 신화, 특히 미노타우로스와 같은 괴물들이나 다른 신들을 현대적으로 해석해냈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원래 신화가 지녔던 비애 가득한 교훈에서 벗어나, 오늘날의 (때론) 디스토피아적인 현실을 향한 보다 열려 있는 의문으로 이야기를 재구성했다. 이제 고전이라 불릴 만큼 널리 읽힌 현대 작가들에게서도 영감을 받은 듯 영원과 덧없음, 도덕과 비도덕, 공상과학과 일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야기들은 인간성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는다. 책의 제목 ‘개와 괴물의 시간’처럼, 이야기들은 등장하는 인물들이 과연 동물에 가까운 존재인지 혹은 그보다 훨씬 두려워해야 할 존재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럼에도 해던의 글 속에는 언제나처럼 깊은 공감이 담겨 있다. 사랑이라는 주제를 관통하는 이야기들은, 비록 책을 덮은 뒤에도 명확한 답보다 많은 질문을 남길지언정, 분명 따뜻한 여운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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