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영화는 끝내 공존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과 영화는 끝내 공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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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재현 (‘씨네21’ 기자)
사진 출처. 구글 딥마인드 인스타그램

구글이 동시대 가장 힙한 영화제작사 A24에 투자한다. 투자 금액은 약 7,500만 달러, 한화로 1,000억 원 정도의 금액이다. 투자 부문은 ‘영화 제작용 AI 도구를 개발하기 위한 AI 연구 파트너십’이다. 그렇다. A24가 구글과 AI 파트너십을 맺은 것이다. 이후 파장이 상당했다. A24가 어디인가. 수많은 독립영화 감독들의 이름을 기획력 하나로 업계 최상위로 끌어올리고, 영화 그리고 굿즈의 파급력으로 영화가 동세대 힙스터와 구세대 시네필을 모두 만족시키는 브랜드임을 입증해온 회사다. 보다 직관적으로 설명하자면, ‘더 랍스터’, ‘플로리다 프로젝트’, ‘유전’, ‘미나리’,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등을 제작·배급한 곳이다.

수많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A24의 공식 소셜 계정에는 스튜디오의 결정을 비난하는 댓글이 쇄도했고, AAA24 멤버십(A24가 운영하는 공식 유료 팬클럽 멤버십 프로그램) 회원들은 공개적으로 구독을 취소하는 인증샷을 SNS에 게재했다. 올해 ‘백룸’으로 창사 이래 A24에 최대 박스오피스 흥행 수익을 가져다준 감독 케인 파슨스가 얼마 전 “AI는 ‘창의성의 부패’(Creative Rot)”라고 비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발표된 소식이라는 점도 논란에 불을 지폈다. 이후 A24는 “제작 계약이 아닌 순수한 연구 파트너십이고, 영화 제작이나 기타 특정 AI 프로젝트에 대한 어떠한 의무도 포함하지 않으며, A24의 지적 재산(IP)으로 모델을 훈련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영화계는 그간 몇 차례 AI와 전쟁을 벌였다. 많이들 기억하는 사건은 2023년 봄 시작된 미국 미디어 업계, 정확히는 미국작가조합(WGA)과 미국배우·방송인노동조합(SAG-AFTRA)의 파업일 것이다. 양 조합은 2023년 말, AI로부터 자신들의 권리를 지킬 수 있는 법적 근거를 제작자(미국영화·TV제작자연맹)로부터 받아내며 파업을 종료했다. 파업이 끝나고 미디어 업계는 AI에게 종종 빗장을 열었다. 다만 개방 폭만큼 후폭풍도 심했다.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 13개 부문 후보에 오른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에밀리아 페레즈’와 10개 부문 후보에 오른 브래디 코베 감독의 ‘브루탈리스트’는 배우들의 악센트 교정에 일부 AI를 활용했다는 사실을 밝히자 시상식에서 역풍을 맞았다.

알렉스 가랜드의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또한 영화에 없는 장면을 AI로 제작한 후 포스터에 삽입해 관객들로부터 빈축을 샀다. (공교롭게도 ‘시빌 워: 분열의 시대’ 또한 A24의 작품이다.) 각 영화의 제작진은 AI의 도움을 받긴 했어도 모든 예술을 주도하고 개입하며 완성한 제1의 요소는 인간이었음을 밝혔지만,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요는 구태여 인공지능에게 인간의 자리를 내지 말라는 것이다. 인공지능이므로 손쉬울 수 있는 일을, 그럼에도 인간이므로 가능한 일로 만들어 예술을 완성하자는 목소리가 꾸준히 흘러나왔다. 2025년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2026년, 흐름이 달라졌다. 넷플릭스는 배우 벤 애플렉이 공동 설립한 AI 영화 제작 기술 스타트업 ‘인터포지티브’를 약 5억 8,700만 달러(약 8,700억 원)에 인수했다. 넷플릭스는 공식 성명을 통해 이 계약이 “실용적인 후반 작업을 위한 수단”이며 “텍스트 프롬프트로 무작위 이미지를 생성하는 방식이 아닌, 영화 자체의 원본 촬영본을 기반으로 학습하는 툴을 개발한” 것이라 강조했다. 그 다음엔 거장 마틴 스코세이지가 AI 기업 ‘블랙 포레스트 랩스(BFL)’의 고문으로 합류했다는 소식이 보도돼 충격을 안겼다. 스코세이지는 “영화는 약 125년밖에 되지 않은 젊은 매체이므로, 우리는 영화가 어떻게 진화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열린 자세를 가져야 한다. AI를 활용하면 제작진에게 아이디어를 더 명확하고 효율적으로 공유할 수 있으며, 이들은 이를 바탕으로 더 지능이 높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현대 시네마의 처음이자 끝으로 평가받는 감독이 AI 기업과 조력한다는 사실에 미국미술감독조합(ADG) 등은 “스코세이지가 지금의 커리어에 이르도록 도왔던 인간 아티스트들에게 등을 돌렸다”라고 비난했지만, 이미 그때는 ‘아바타’ 시리즈의 제임스 카메론이 텍스트-이미지 변환 모델을 만드는 스태빌리티 AI의 이사로 취임했으며, ‘반지의 제왕’ 시리즈의 피터 잭슨이 “AI는 컴퓨터그래픽 기술과 크게 다르지 않다”며 AI의 포용 가능성을 밝힌 후였다. 

인공지능(AI)과 영화는 끝내 공존할 수 있을까. 관객이 이미 일상의 도구 중 하나로 받아들인 AI를 영화가 작업의 동반자로 받아들이는 날이 올까. 이 질문을 2023년부터 던졌지만, 2026년에 이르니 전과 다른 답을 내고 싶다. 관계자들의 리액션에 주목해보자. A24는 소비자들의 실망을 향해 ‘인간’이 협상 테이블에 앉을 것임을 거듭 역설한다. 도구의 도움을 수동적으로 받지 않고 협상 테이블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기술의 규칙을 만들며, 내부에서 창작자 중심의 도구를 형성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분노를 잠재운다. 또 수많은 감독들이 함께 이룩한 자사의 라이브러리는 철저히 보호하겠다는 방침이다. 결국 AI의 원조를 받더라도 그 결재선, 내지는 최후의 방어선을 만드는 쪽은 인간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러니까 스튜디오는 AI를 더는 단순히 막아야 할 외부의 위협으로 보지 않고, 통제하고 내재화해야 할 핵심 자산으로 인식 중이다.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자체 파이프라인에 AI 시스템을 통합하되 자신들만의 독창적인 라이브러리나(A24) 특정 작품의 통제된 세트장 데이터만을 폐쇄적으로 학습시키며(넷플릭스) 독점 데이터 자체를 무기화하는 흐름을 보인다. 마틴 스코세이지의 사례처럼 프리프로덕션에서 자신이 구상한 숏과 프레임을 직관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AI를 활용한다면, 벤 애플렉의 말처럼 “제작 비용의 진입 장벽이 낮아져 누구나 ‘굿 윌 헌팅’ 같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날이 올 지도 모른다.

실제로 한국영화계의 수많은 제작자, 감독들 또한 꽤 오래전부터 AI 전문 기업과 협업을 꾸준히 모색해왔다. 마하의 속도로 발전 중인 신기술을 영화에 활용해보고자 하는 쪽도 있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영화 투자 시장이 얼어 붙은 지 오래라 저비용으로 고효율을 추구하자는 쪽도 있다. 여러 영화제는 업계 종사자들을 위해 해마다 AI 관련 포럼을 연다. 아시아 최대 콘텐츠 마켓인 홍콩 필마트(FILMART)는 올해 ‘AI 아카데미’를 신설했다. 영화 제작에 AI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18개의 주제로 나누어 강의하는 워크숍 프로그램이었다. 이 조류는 분명 영화 제작 전반의 밸류체인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므로 그 인간의 선이 어디까지 첨예하고 얼마나 다양한 경우의 수를 보장할지를 논의할 때다. 데이터를 학습하는 AI를 학습하는 인간이 프로덕션 과정에서 고용 불안과 노동 구조의 양극화를 어떻게 조율할까.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기반한 영화 기획이 고도화된다면, A24와 초기 넷플릭스가 추구했던 ‘인디적 창의성’이 스튜디오의 투자 결정에서 얼마큼 배제될까. 그러므로 2026년, AI를 향한 여러 스튜디오의 응전은 전환기에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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