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슬프고 둥근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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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weversemagazine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슬프고 둥근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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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자연(‘씨네21’ 기자)
사진. 출처소니픽쳐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 ‘레고 무비’ 시리즈, ‘미첼 가족과 기계 전쟁’,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이 영화들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비일상적인 소재와 대중적인 개그 코드, 좀처럼 다음 장면을 예측하기 어려운 스토리 전개, 세상을 낙관하면서도 마냥 선하게 흐르지만은 않는 결말까지. 감정의 레이어를 복합적으로 껴안은 작품들은 동화처럼 유쾌하고 현실처럼 역동적이다. 그리고 이 중심에는 필 로드와 크리스토퍼 밀러 감독이 있다. 오랜 시간 여러 작품을 거치며 손발을 맞춰온 감독 듀오는 개성 넘치는 고유의 색깔로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특히 오래된 비법처럼 유머에 슬픔과 고통을 적절한 비율로 뒤섞는 장기는 오직 웃음을 분해해본 자만이 알 수 있는 고차원적 기술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두 감독은 마침내 정점을 이뤄낸 것일까. 웃음이 곧 슬픔이고, 슬픔이 곧 웃음처럼 비치는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콤비 감독의 강점만을 온전히 모아둔 듯 유려하게 흘러간다. 실제로 많은 기록이 이를 증명한다. 북미 개봉 첫 주에는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약 8,058만 달러(약 1,217억 원)의 수익을 올리며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고, 비-프랜차이즈 영화로서 8,000만 달러(약 1,191억 6,000만 원) 이상의 오프닝 수익을 돌파하면서 2023년 개봉한 ‘오펜하이머’ 이후 두 번째 기록을 달성했다. 이는 배우 라이언 고슬링과 필 로드, 크리스토퍼 밀러 감독의 필모그래피 사상 최고 오프닝 기록이자, 아마존 MGM 스튜디오 측에도 최고 흥행 성적이다.

물론 앤디 위어 작가의 원작 소설이 워낙 세계적인 사랑을 받은 터라 흥행을 쉽게 예측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소설 기반의 영화가 독자와 관객으로부터 환호받는 건 아니다. 더구나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과학 이론을 기반한 SF 소설인 만큼, 과학 파트가 대량 잘려 나가면서 원작 팬들의 아쉬움을 감당하는 건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무엇이 영화적 전환을 기꺼이 환영하게 만들었을까. 무엇이 감정적 부흥과 몰입과 여운을 만들어내는 걸까. 그건 아마도 둥글게 캐릭터화하는 애니메이션 문법을 오랫동안 경험한 두 연출자의 화학작용 때문일 것이다. 

스트라트가 노래를 부른 이유
태양이 빛을 잃기 시작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이 문제 상황에서 시작한다. 어느 날 태양에서 특이한 형태의 적외선 광선이 금성으로 날아가는 현상이 포착된다. 인류는 새로운 우주 생명체를 기대했지만 진실은 충격적이다. 오히려 그 광선(페트로바선)이 태양을 잡아먹고 있고, 그것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태양빛이 약해진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이대로 기온이 계속해 떨어질 경우 지구는 빙하기를 맞이할 것이다. 빙하기가 채 오기도 전에 인류의 절반은 식량 부족으로 사망할 것이다. 원인은 아스트로파지. 이 미지의 세포들은 항성 주변에 서식하며 빛을 흡수했고, 주변 8광년 이내의 별을 감염시켰다. 그런데 11.9광년 떨어진 타우 세티만이 여전히 밝게 빛났다. 왜 그곳은 아스트로파지로부터 안전할까. 지구에는 없고, 그곳에는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절망적인 상황의 경기 종료 직전, 마지막 역전을 노리고 무엇이라도 해보는 도박성 작전 ‘헤일메리’처럼 인류는 간절한 마음으로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착수하게 된다. 우주선에 오를 인원은 딱 세 명. 파일럿, 엔지니어 그리고 과학자 그레이스(라이언 고슬링)다. 

코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 다른 두 동료들과 달리, 우주적 망망대해에서 혼자 눈을 뜬 그레이스의 고독한 사투는 역설적으로 지구에서의 인연으로부터 뒷받침된다. 그가 고향 땅에서 어떤 경험을 마주하고, 어떤 사람을 만났는지에 따라 현재 여정은 더 아늑해 보이거나 더 외로워 보이기 때문이다. 먼저 에바 스트라트(산드라 휠러). 유럽우주국 사무관 출신으로 이번 프로젝트를 책임지게 된 그는 원작 소설에서 냉정하고 차가운 리더로 묘사되는 반면, 영화 속에서는 인간적인 면모가 더욱 부각된다. 전 세계 당국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스트로파지의 구성 요소를 파악하기 위해 실험하던 그레이스는 그것이 일종의 세포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리고 산드라 휠러의 우렁차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재현되는 환호성. “다들 일어나! 세포다!(Wake up! It’s a cell!)” 연이어 그를 따라 기계처럼 박수치는 각국의 관료들. 영화 속 스트라트는 박수를 몹시 좋아한다. 아스트로파지가 세포라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에도, 전 세계 과학자가 모두 모인 회의에 그레이스를 소개할 때에도 그는 빠짐없이 박수를 유도한다. (심지어 회의실 장면에서는 그가 욕심부린 그란데 사이즈 커피 두 잔 때문에 손을 움직일 수 없던 상황이었음에도.) 소설이 모르는 사람을 상상하는 일이라면, 이미 알고 있는 배우의 얼굴로 만나는 영화는 친숙한 면모가 장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애니메이션처럼 귀여움화(일종의 모에화)된 모습이 화학작용을 낸다는 것을 두 감독은 본능적으로, 경험적으로 아는 것이다.

오직 박수만이 스트라트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연속성 있는 키포인트를 통해 냉정함 이외에 ‘진짜 인간 같은’ 면모가 더해질 수 있다. 한마디로 둥글어지는 것이다. 지구를 살리기 위해 온난화를 자처하고 남극 빙하를 폭파하던 냉혈한은 영화 속에서 명랑한 박수를 고집하거나 커피를 욕심내면서 시나브로 이해하고 싶어지는 한 명의 인간으로 거듭난다. 이 변화가 절정에 달하는 것이 원작에 없던 가라오케 씬이다. 해리 스타일스의 ‘Sign of the Times’를 완벽하게 열창하는 스트라트의 모습은 냉정함과 거리가 멀어 ‘캐릭터 붕괴’ 같다는 원작 팬의 아쉬운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오히려 이렇게나 온화한 모습을 지녔던 이로부터 배신당할 때 우리는 훨씬 더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충격을 전달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지구를 살리기 위해 지구를 파괴하던 스트라트의 모순적인 선택이 영화에서 생략된 상황이라면 더더욱 온도의 낙차만이 극적 반전을 일으킬 수 있다.

더 둥글게, 입체적으로
그레이스와 로키의 우정이 지속되어야만 하는, 혹은 지속되길 기도하게 되는 이유는 결국 우리 모두가 그레이스의 억울함과 외로움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 한 축을 스트라트가 넓혔다면 다른 한 축은 칼(라이어널 보이스)이 도맡는다. 원작에서 칼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레이스가 그나마 살갑게 지냈던 군인 스티브가 아마도 칼의 원형일 것이다. 영화 초반부 아스트로파지를 연구할 때 그레이스는 칼과 부쩍 가까워져 무전기 수다를 자주 나눈다. 실험을 위해 ‘법카’ 사용 여부를 물을 때에도 최종 허락을 받을 수 있던 것은 칼이 선해서가 아니라 그레이스가 무전기에 대고 굳이 한숨을 길게 쉬었기 때문이다. (그레이스는 정말 깍쟁이다.) 그레이스는 내향적인 너드지만 칼과의 관계는 다정했다. 둘은 마트에서 포일을 사면서 볼링을 치고 간식으로 먹을 스키틀즈도 잔뜩 산다. 심지어 ‘법카’로 선글라스 구매까지. 우주선에서 기억을 더듬던 그레이스가 칠판에 '칼(희미함)'이라고 적은 것만 봐도 많은 사람 중에서 칼이 특별했던 동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곤두박질친다. 우주선 탑승을 거부하기 위해 그레이스는 도망치지만 금세 제압당하고 만다. 그때 저 멀리서 등장하는 칼. 카메라는 그를 정면이 아닌 90도로 뒤집은 채, 옆으로 비스듬히 담아낸다. 모든 것이 붕괴되었다. 우정, 믿음, 기억, 함께한 시간까지.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구도는 아마도 그레이스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총 23명의 선원이 함께였지만 이제 혼자만 남았다던 로키가 그레이스에게 묻는다. 몇 명의 선원이 있었냐고. 그레이스는 답한다. 둘이 더 있었다고. 하지만 그레이스는 사실 둘만 잃은 게 아니다. 이 우주선에 타기 위해 자신을 비정하게 버리고 말았던 스트라트와 칼까지, 총 네 명의 동료를 잃었다. 

자신의 고향을 떠나 이민자가 되기로 선택한 이는 더 이상 뒤돌아보지 않는다. 스크린 방에서 지구의 사계절을 그리워하던 이가 오직 안개만이 존재하는 곳에 머물 때 우리는 기묘하게도 해피엔딩을 체감한다. 종족과 정체성, 언어를 뛰어넘은 두 친구의 우정이 눈부실 만큼 귀하게 느껴지는 것은 결국 지구에서 그레이스가 만나야만 했던, 둥글고 입체적인 인물들이 그림자처럼 대비를 이뤄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농담과 비애를 같은 자리에 배치시키고, 귀엽고 인간적인 캐릭터라이제이션을 완성하면서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안정적인 영화 문법을 되찾는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이것들을 애니메이션 기본 기술로 오랫동안 펼쳐온 필 로드, 크리스토퍼 밀러 감독이어서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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