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노트’, 신의 시선으로 성찰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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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승연(뮤지컬 평론가)
사진 출처. OD COMPANY

오디컴퍼니의 뮤지컬 ‘데스노트’가 디큐브 링크아트센터에서 네 번째 시즌을 선보이고 있다. 2025년 10월 14일부터 2026년 5월 10일까지 약 7개월 동안의 장기 레이스다. 이번 시즌 공연 기간은 ‘데스노트’ 전 시즌을 통틀어 가장 길다. 2022~2023년 동안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연장), 샤롯데씨어터(앙코르)까지 전석 매진을 기록했던 지난 3연의 흥행력을 확인하고 더 확장하려는 시도다. 더불어 이는 근래 시도되고 있는 뮤지컬 장기 공연 테스트베드의 일환이기도 하다. 한국 뮤지컬은 보통 2~3개월 단위의 리미티드 런(Limited Run) 방식으로 공연되지만, 2024년부터 6개월 이상 공연되는 작품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2024~2025년 6개월 동안 공연된 오디컴퍼니의 ‘지킬 앤 하이드’ 20주년 기념 공연(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과 샤롯데씨어터에서 7개월, 이후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2개월을 더한 에스엔코(S&Co)의 ‘알라딘’ 라이선스 초연이 대표적이다. 이 흐름 속에서 ‘데스노트’가 다음 주자로 나선 셈이다.

한국의 논레플리카, 새로운 ‘데스노트’를 쓰다
뮤지컬 ‘데스노트’는 일본의 대형 엔터테인먼트 기업 호리프로 제작으로 2015년 4월 일본 닛세이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작곡 프랭크 와일드혼, 작사 잭 머피, 대본 아이반 멘첼, 편곡 제이슨 하울랜드 그리고 연출은 쿠리야마 타미야가 맡았다. 소위 프랭크 와일드혼 사단과 일본을 대표하는 연출가의 조합이었다. 프랭크 와일드혼은 토호, 호리프로 그리고 후지TV가 공동 제작한 ‘지킬 앤 하이드’(닛세이 극장, 2001)로 일본에서 자신의 첫 공연을 올린 후, 호리프로와 ‘미츠코’(2011)를 개발하며 협업의 기치를 올렸다.

‘데스노트’는 2011~2013년에 개발이 시작된 호리프로의 첫 글로벌 프로젝트로, ‘일본이 뮤지컬의 수출국이 되어야 한다’는 호리프로의 문제의식이 집약된 결과물이었다. 당시 일본에서는 프랭크 와일드혼 사단과의 협업을 ‘순수한 일본 뮤지컬이 아니’라는 비판의 근거로 삼기도 했으나, 오히려 호리프로는 다국적인 협업을 통해 작품의 퀄리티를 높여 IP 수출국이 되어야 한다는 비전을 구체화했다. 그리고 2016년까지 신국립극장 연극연구소 소장을 역임하며 상업 연극부터 전위극, 뮤지컬, 오페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업에서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한 쿠리야마 타미야에게 연출을 맡겨 일본의 토양에서 시작된 작품임을 명확히 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뮤지컬 ‘데스노트’는 슈에이샤가 발행한 ‘주간 소년 점프’에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연재된 만화가 원작이다. 동명 원작은 오바 츠구미가 쓰고 오바타 타케시가 작화를 맡았다. 2006년에는 후지와라 타츠야와 마츠야마 켄이치가 주연한 실사 영화로도 제작되었으며, 2006~2007년에는 총 37개 에피소드로 매드하우스가 제작한 TV 애니메이션이 방송되기도 했다. 뮤지컬 ‘데스노트’는 따라서 ‘2.5차원 뮤지컬’의 좋은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일본에서 가장 부가가치를 높게 창출하는 뮤지컬 창작 방법론으로 인식되고 있는 2.5차원 뮤지컬은, 뮤지컬 ‘테니스의 왕자’(2003)의 팬들이 2010년 무렵에 만든 자연발생적 용어다. 현재는 현대 일본의 만화·애니·게임 등 2차원 콘텐츠를 원작으로 하고, 원작 팬층을 주요 관객으로 상정하는 3차원 뮤지컬 무대라는 개념으로 통용되고 있다. 뮤지컬 ‘데스노트’는 일본과 한국에서 모두 네 번째 시즌까지 이어가고 있는 흥행작으로 자리매김했고, 2023년에는 런던 웨스트엔드 펠라디움 극장에서 콘서트 방식(‘Death Note: The Musical’ in Concert)으로, 같은 해 ‘뉴욕 코믹콘’에서는 아담 파스칼이 패널로 참여한 ‘데스노트: 더뮤지컬’로 선보이는 등 영미권 공연 가능성도 타진되며 2.5차원 글로벌 프로젝트로서의 효율성을 지속적으로 높이고 있다.

하지만 가장 흥미로운 건 한국의 ‘데스노트’다. 한국의 ‘데스노트’는 2015년 초연과 2017년 재연 이후 논레플리카 공연으로 리뉴얼되며 독자적인 노선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씨제스 컬쳐에서 제작하고 일본 오리지널 버전의 쿠리야마 타미야가 연출했던 초·재연 이후 오디컴퍼니에서 공연권을 득한 2022년 버전부터 ‘데스노트’는 무대미술이 완전히 새로운 개념으로 변화하며 한국 시장 안에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토대에는 오디컴퍼니의 제작 경험이 녹아 있다. 프랭크 와일드혼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2004)와 ‘드라큘라’(2014)를 논레플리카 라이선스 공연으로 수입해 한국 시장에서 안정적인 레퍼토리로 정착시킨 오디컴퍼니의 노하우가 ‘데스노트’에서 빛을 발한 것이다.

특히 이 모든 작품의 무대 디자인을 맡아 작업을 심화시켰던 오필영 디자이너의 콘셉트는 ‘데스노트’의 무대 그 자체가 곧 관점이자 메시지임을 분명히 했다. 가령 ‘지킬 앤 하이드’에서 2층으로 된 ‘다이아몬드’형 무대로 상하 계급, 선과 악, 지킬과 하이드를 이중적으로 펼쳐냈고, ‘드라큘라’에서 네 개의 ‘원’이 겹쳐 있는 턴테이블 무대로 드라큘라의 힘이 중심에서 퍼져 나가는 모습을 담았다면, ‘데스노트’는 신의 손바닥 위에서 인간의 운명이 결정되는 모습을 극의 시공간을 한계 짓는 ‘선’으로 시각화했다. 소자 간격이 3mm인 고해상 LED 패널 1,380장을 무대 바닥, 천장, 벽면 전체에 설치하고 장면별로 신의 ‘눈’을 대신하는 ‘선’을 그어 관객이 완전히 다른 시공간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게 했다. 이는 리뉴얼 버전에 새로 투입된 김동연 연출과 콘셉트를 맞춰 가며 배우가 ‘선’ 안에서 연기하도록 미장센을 정리한 결과이기도 했다. 쿠리야마 타미야가 검은 노트를 펼친 하얀색 종이 같은 무대 위에 캐릭터의 대사와 움직임 그리고 음악을 채우는 방식으로 시각화한 것과 명확히 대비되는 지점이다.

신과 신의 대격돌
이러한 무대 콘셉트는 ‘데스노트’의 서사를 시각적으로 확장한 것이다. 뮤지컬 ‘데스노트’는 사신 류크처럼 삶의 무료함을 느끼던 원작의 라이토(Light)와 달리 극의 시작점부터 명료하게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라이토에 집중한다. 라이토는 세상을 믿지 않기에 보편적 정의 역시 믿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 류크가 장난 삼아 떨어뜨린 데스노트가 자신의 손에 들어오자 스스로 정의가 되어 세상의 악(이라 믿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처단한다. 똑똑하지만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던 라이토는 무소불위의 능력을 지닌 데스노트의 힘으로 새로운 세계의 ‘신’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며 서서히 악마가 된다.

뮤지컬은 이러한 라이토와 지구상의 모든 사건을 해결해온 천재 엘(L) 사이의 두뇌 싸움으로 끝까지 극의 긴장감을 몰고 간다. ‘키라(Killer)’가 된 라이토 그리고 그의 가면을 벗기려 하는 엘과의 대립은 ‘데스노트’의 백미다. 극적인 긴장감과 재미를 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둘의 모습은 마치 전지전능한 신들의 격돌처럼 묘사되지만, 사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서로의 약점을 찾아 파괴하려는 욕망의 대립, 사적인 정의가 충돌하며 수많은 갈등을 낳는 지금/여기를 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이토를 사랑한 미사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사신 렘이 숭고한 사랑의 원형을 보여주지만, ‘데스노트’는 결국 라이토와 엘의 죽음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며 정의라는 명분 아래 숨은 인간의 폭력과 잔혹한 이기심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인간성을 상실한 인간은 신의 ‘권태로움’만큼이나 무의미한 존재일 따름이라는 묵직한 테마가 마지막 넘버 ‘레퀴엠’에서 거대한 침묵처럼 극장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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