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NGSHOT이 과거로 재현하는 미래의 청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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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강일권(음악평론가)
사진 출처. LNGSHOT X

K-팝을 얘기할 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아이돌’, ‘퍼포먼스’, ‘시스템’, ‘팬덤’ 같은 단어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K-팝을 규정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또 있다. 바로 힙합과 R&B다. 실제로 언어를 걷어내고 음악의 골격만 남겨보면 적지 않은 곡에서 익숙한 구조가 드러난다.

808 드럼, 스윙감 있는 하이햇, 트랩 비트, 랩 벌스(Verse), 한 음절을 여러 음으로 늘이며 미끄러지듯 꺾어 부르는 R&B식 보컬 라인까지. K-팝에게 힙합과 R&B는 창작할 때 자유롭게 꺼내 조합하는 레고 블록 같은 재료다. 그 치열한 작업 현장에서 어떤 곡은 두 장르를 트렌드로서 차용하고, 어떤 곡은 처음부터 그 안에서 자라난다.

박재범이 설립한 모어비전 소속의 그룹 롱샷(LNGSHOT/오율, 률, 우진, 루이)의 음악은 따지자면 후자에 가깝다. 이 미묘한 방향성의 차이가 곧 감흥의 결을 달리 만든다. 오해는 말길 바란다. 이는 우열의 문제가 아니다. ‘힙합과 R&B도 하는’ K-팝 그룹과 ‘힙합과 R&B를 하는’ K-팝 그룹 사이에서 발생하는, 즉 장르적 정체성에서 비롯된 쾌감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물론 그 전제는 하나다. 그러한 방향성이 결국 음악적 완성도로 이어질 때에만 유효하다는 것. LNGSHOT의 결과물은 과거 빅뱅의 초기작들이 그러했듯이 K-팝과 장르 음악의 경계에 성공적으로 안착한다. 그룹의 음악과 퍼포먼스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 사이에 인기를 끌었던 미국의 R&B 보이그룹을 연상시키는 요소다.

당시 R&B 보이그룹의 전성기를 이끈 음악에는 특유의 결이 있었다. 기존의 R&B보다 보컬 스타일이 직선적이었으며, 완급 조절과 리듬감 있는 코러스, 그리고 트렌디한 힙합 사운드가 적절한 비율로 뒤섞였다. 보컬과 프로덕션 면에서 옛 소울이나 1990년대 R&B의 영향을 최소화했고, 힙합 비트와 팝 요소를 적극적으로 껴안았지만, 보편적인 팝 음악과는 확실하게 장르적인 선을 그었다. 더불어 1980년대 뉴 잭 스윙 그룹들이 그랬듯이 댄스 퍼포먼스 또한 그룹의 중요한 정체성 중 일부로 끌어들였다.

LNGSHOT의 데뷔 곡 ‘Moonwalkin’’을 처음 듣고 뮤직비디오를 봤을 때 단번에 떠오른 풍경이 딱 그랬다. 물론 시대가 흐른 만큼 LNGSHOT의 곡에는 오늘날의 트랩 리듬과 랩싱잉이 더해졌지만, 패션과 퍼포먼스를 비롯한 전반적인 음악의 결은 2000년대 R&B 그룹의 세련된 사운드와 긴밀하게 닿아 있다. 그리고 이는 대표이자 음악적 멘토인 박재범의 영향이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K-팝 시스템의 한가운데에서 출발해 한국의 대표적인 R&B/힙합 아티스트로 거듭난 박재범. 그가 2000년대 이후의 R&B와 힙합 사운드 사이를 자연스럽게 왕복하던 모습을 LNGSHOT에게서도 비슷하게 볼 수 있다.

물론 멤버 전원이 음악 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이제 K-팝 씬에서 멤버의 작사, 작곡 참여는 자연스러운 풍경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특정 장르에 중심을 둔 그룹에게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참여’가 스펙이 아닌, 장르적 완성도의 설득력을 좌우하는 전제 조건에 가깝기 때문이다. 실제로 데뷔 EP ‘SHOT CALLERS’에서 그들이 함께 만든 곡들은 인상적이다. 한 곡 안에서 힙합과 R&B가 자연스럽게 전환되며, 멤버 개개인의 탄탄한 랩과 노래 실력도 잘 부각된다. 특히 트랩 뮤직의 하이햇과 두툼한 808 베이스 조합 아래로 1990년대 이스트코스트 힙합의 무드를 깔아 완성한 ‘Backseat’, 경쾌한 리듬 파트와 비트의 중심을 잡아주는 베이스 라인 그리고 보컬의 부각이 필요할 때마다 전략적으로 배치된 브레이크가 잘 어우러진 ‘Saucin’’은 대표적이다.

이어서 발매된 믹스테이프 ‘4SHOBOIZ MIXTAPE’에서도 비슷한 감흥이 이어진다. 다만 멤버 각자의 색을 드러내는 데 좀 더 초점이 맞춰진 느낌이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발매일은 ‘SHOT CALLERS’보다 늦지만, 공개된 것은 먼저기 때문이다. 원래는 LNGSHOT의 유튜브 채널에만 공개했다가 팬들의 바람대로 음악 플랫폼에 정식 발매됐다. 힙합 문화에서 비롯된 믹스테이프를 정식 데뷔 전의 결과물로 삼았다는 점부터 그룹이 추구하는 정체성을 엿볼 수 있다. 그만큼 ‘4SHOBOIZ MIXTAPE’는 믹스테이프란 형식에 충실하다. 주류 K-팝 아티스트가 앨범 단위의 결과물에서 고려해야 할 요소들, 예컨대 시장을 겨냥한 포맷이나 콘셉트와 서사에서의 완성미에 대한 부담으로부터 벗어나 자신들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자유롭게 드러낸다. 그래서 앨범처럼 정제된 느낌은 덜할지 몰라도 LNGSHOT 멤버들의 색깔을 포착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다.

믹스테이프에서 멤버들은 솔로, 유닛, 그룹을 오간다. 개인 곡에서 각자의 감정선이 드러나는가 하면, 유닛이나 그룹으로 함께한 곡에서는 결이 다른 에너지가 결합된다. LNGSHOT으로 부른 1번 트랙 ‘Are You Ready’는 앞서 언급한 2000년대 초중반의 R&B 감성으로 충만한 곡이다. 짧은 DJ 스크래치에 이어 신스로 빚은 유려하고 청량한 멜로디 라인이 흘러나오는 순간,, 흐뭇한 웃음이 지어진다. 장담하건대 당시 R&B 음악에 푹 빠져 있던 리스너라면, 이 곡은 코끝 찡한 시간 여행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2000년대 남부 힙합 특유의 장중한 비트가 돋보이는 률의 솔로 곡 ‘Trust Myself’도 하이라이트다. 가사는 다소 단조롭지만, 프로덕션의 무드와 완성도에 걸맞은 탄탄한 래핑이 상당히 만족스럽다. 적어도 이 곡에서의 률 앞에서는 ‘K-팝 그룹의 래퍼’와 ‘래퍼’란 스탠스 사이의 경계가 무의미해진다. 이외에도 팝랩과 투스텝(2-Step)이 결합한 률과 루이의 ‘Thinking’, K-팝의 구조와 연출 안에 팝소울 감성이 조화롭게 스며든 우진과 루이의 ‘My Side’도 인상적이다.

‘4SHOBOIZ MIXTAPE’는 2000년대 R&B와 힙합이 남긴 고유한 감성과 리듬, 여백 있는 루프, 자유롭게 흐르는 보컬 스타일이 오늘날의 프로덕션 스타일과 만난 작품이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와 현재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그들의 음악적 스타일을 미리 정의하는 청사진처럼 작용했다. 이런 부분이야말로 데뷔 전의 믹스테이프를 듣는 재미 중 하나다.

‘4SHOBOIZ MIXTAPE’와 ‘SHOT CALLERS’를 듣고 나면, “남들이 좋아할 것 같은 음악”이 아니라 “우리가 알고, 우리가 진짜 좋아하는 것들을 만들고 싶었다.”는 LNGSHOT과 박재범의 선언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무엇보다 의무처럼 트렌드를 좇지 않고 시간을 살짝 비껴 선 듯한 음악들이어서 더욱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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