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K-’를 아느냐? 당신을 위한 ‘K-’ 아카이브
작성자 weversemagazine
너희가 ‘K-’를 아느냐? 당신을 위한 ‘K-’ 아카이브

기획/글. 윤해인
디자인. 홍은주, 김형재
영상. 김영대(LoCITY)
What is ‘K-core’?
‘K-’란 무엇인가. ‘K-’는 한국의 ‘Korea’를 상징하며, 한국에서 만들어졌거나 한국을 대표하는 무언가에 붙는 접두사다. 2025년, ‘K-’는 새로운 특이점에 도달했다. 2025년 6월 공개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 때문이다. ‘케데헌’은 2025년 9월 누적 시청 수 3억 회를 돌파하며 넷플릭스 역대 최다 시청 기록을 세웠다.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Golden’은 빌보드 ‘핫 100’에 29주 연속(1월 21일 기준) 올랐을 뿐만 아니라, ‘제83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주제가상을 수상했다. 다만 한국에서 이 애니메이션이 화제가 된 맥락은 조금 달랐다. 1차적으로는 해외에서의 흥행 기록으로 관심이 모였지만, 그다음으로 주목한 것은 ‘케데헌’이 담아낸 ‘한국’의 모습이었다. ‘케데헌’은 라면과 김밥, 한의원과 대중목욕탕 같은 서울의 생활상을 다루며, 저승사자와 ‘작호도’ 같은 한국 전통문화 요소도 녹여냈다. 더 나아가 방탄소년단이나 블랙핑크 같은 그룹이 미국에서 만들어낸 K-팝의 표상, 한국 로맨틱 코미디의 ‘남주 등장 씬’ 클리셰, K-푸드의 대표 이미지인 ‘매운 음식 챌린지’ 등이 등장한다. 연출을 맡은 매기 강(Maggie Kang) 감독을 비롯해 제작진과 캐스트에서 한국적 정체성이 고려된 것과 별개로, 물리적인 여건으로 따진다면 ‘케데헌’은 미국의 제작 시스템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따라서 한국인들에게 ‘케데헌’은 내부의 시선으로 만든 ‘한국상’도 아니고, 타자의 시선으로 묘사한 ‘한국’도 아니었다. 한국 바깥에서 누적된 ‘K-’의 이미지가 재구성되어 다가온 셈이었다. 한국인들에게 ‘K-’의 정의를 다시 한번 뒤집는 일이다.
그렇다면 지금, 서울에서, ‘K-’를 보여주는 것은 무엇인가? 각종 ‘K-콘텐츠’는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매우 빠르게 퍼져 나간다. 심지어 그 출발지는 한국만이 아니다. 팬데믹이 종료되면서 온라인에서의 인식은 오프라인의 경험으로 신속하게 확장된다. 서울 곳곳에서는 그런 ‘K-’의 파동이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중이다. 로컬에게 인기 있는 무언가는, 외국인에게도 경험하고픈 대상이 된다. 이는 지금 ‘K-’의 또 다른 핵심이다. 예컨대 명동에 가면 내국인에게 잘 알려진 간식과 음료가 ‘관광 상품’처럼 재배치되어 이국적인 느낌을 준다. 성수동과 홍대 인근의 유명 브랜드 플래그십 스토어에는 내국인과 외국인의 비율이 반반에 가깝다. 외국인에 맞춰서 재편되거나, 내국인의 ‘핫플’에 다시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거리가 또 다시 변화한다. 이 기사는 여기에서 출발했다. 두바이 초콜릿에서 시작됐지만 전혀 다른 K-디저트가 된 ‘두바이 쫀득 쿠키’처럼 모든 걸 섞어버린 K-푸드, 한국 여행 쇼핑리스트 상위권에 오른 선글라스와 안경, 국립중앙박물관의 머치와 성수동의 감각적인 소품 숍, 한국인의 일상에서 관광 핫 플레이스가 된 카페 투어 등.
지금, ‘K-’함의 코어를 이루는 것들에 대하여.

섞고, 더하고, 조합하는 ‘K-푸드’
2026년 1월, 한국에서 가장 뜨거운 키워드는 ‘두쫀쿠(두바이 쫀득 쿠키)’다. 두쫀쿠의 주재료로 알려진 카다이프면과 피스타치오 스프레드는 품귀 현상을 빚었고, 두쫀쿠를 판매하는 매장 곳곳에서는 ‘오픈런’과 ‘웨이팅’이 이어졌다. 한동안 “두쫀쿠 먹어봤어요?”는 한국인들의 단골 스몰 토크 주제였을 테다. 온라인 반응 또한 폭발적이었다. 레시피 영상부터 유명인과 유튜버들의 리뷰까지, ‘두쫀쿠’는 빠질 수 없는 콘텐츠가 됐다. 넷플릭스 서바이벌 예능 ‘흑백요리사’ 시리즈의 심사위원 안성재 셰프가 딸과 함께 두쫀쿠를 만드는 영상을 연달아 올리자, 각각 500만 뷰와 800만 뷰(1월 24일 기준)를 넘기기도 했다.
‘두쫀쿠’는 요즘 K-푸드의 결정체다. 사실 두쫀쿠의 원류라 할 수 있는 두바이 초콜릿과 쫀득 쿠키는 한국을 기반으로 한 디저트는 아니다. 두바이의 초콜릿 브랜드 ‘픽스 디저트 쇼콜라티에’에서 출시한 대표 상품의 핵심 재료인 카다이프면과 피스타치오 스프레드가 들어간 초콜릿이 2024년 한국에서 ‘두바이 초콜릿’이라는 이름으로 유행한 것이 시작이다. 한편 대만 간식 ‘설화병’에서 출발한 ‘쫀득 쿠키’의 유행이 있었고, ‘딸기 모찌’의 변형 디저트가 ‘2세대 쫀득 쿠키’라 불리며 확산되기도 했다. 이후 국내 한 카페에서 ‘두바이 초콜릿’과 ‘2세대 쫀득 쿠키’가 합쳐진 상품을 선보이면서 ‘두쫀쿠’가 시작됐다. 한국에는 ‘맛없없(맛이 없을 수가 없는)’이나 “‘맛있는 거+맛있는 거’는 ‘더 맛있는 거’”라는 표현이 있다. 이처럼 한국인들은 자꾸 음식에 토핑을 올리거나 섞으면서 새로운 조합을 찾아낸다. 이미 무언가의 조합인 ‘두쫀쿠’는 ‘두바이 에그타르트’, ‘두바이 휘낭시에’, ‘두바이 까눌레’, ‘두바이 붕어빵’, ‘두바이 케이크’ 등 다른 디저트와의 콤비네이션으로 이어졌다. 사실 이전부터 한국의 매운 음식에는 ‘치즈 토핑’ 옵션이 있었다. 달걀과 치즈를 올린 ‘짜계치’의 조합이 널리 퍼진 것은 물론, 인스턴트 짜장 라면인 ‘짜파게티’가 국물 라면 ‘너구리’를 더한 ‘짜파구리’의 조합으로 유행한 것처럼 ‘K-라면’ 레시피가 끝없이 탄생한다. 이처럼 무한히 증식하는 K-푸드의 역사 한가운데에 ‘두쫀쿠’의 탄생이 있다.
또 한 가지, 이 모든 건 엄청난 속도로 퍼져 나간다. ‘두쫀쿠’의 유행이 감지되자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나 디저트 가게들은 빠르게 레시피를 개발해 제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어 편의점과 대형 프랜차이즈 베이커리, 프랜차이즈 카페에서도 ‘두쫀쿠’ 제품을 출시했다. 이 모든 건 불과 1~2개월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이전의 ‘말차맛’ 유행도 마찬가지였다. 동네 카페마다 말차 라떼와 말차 디저트를 내놓았고, 대전의 유명 베이커리 ‘성심당’ 또한 말차를 베이스로 한 케이크를 출시하며 화제가 됐다. 편의점에서는 각종 브랜드의 간식에 말차를 가미한 버전을 수도 없이 만날 수 있었다. 바프 시즈닝 아몬드는 거의 한국에서 유행한 ‘맛’의 아카이브라 할 수 있을 정도다. “인절미, 흑임자처럼 한국적인 전통 플레이버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동시에 ‘불닭맛’, ‘떡볶이맛’, ‘달고나맛’, ‘꿀호떡맛’처럼 지금 한국 소비자들이 실제로 즐기는 로컬의 맛을 빠르게 발견하고 제품화해왔다.” 바프 브랜드기획실 담당자의 말에서 엿볼 수 있듯, 한국인의 입맛은 민감하고 빠르게 변화한다. 그리고 바프의 다양한 맛 스펙트럼에 대해 “과거가 아닌 ‘지금의 한국’을 맛으로 전달한다는 의미를 지닌다.”고 부연하는 담당자의 설명처럼, 많은 식품 기업과 자영업자들은 지금의 ‘맛’ 유행에 기민하게 반응한다. 더 맛있는 것을 위해 무언가를 섞고, 더하고, 끊임없이 조합한다. 그 모든 걸 빠르게 해낸다. ‘K-푸드’의 핵심 레시피다.
한국인에게 가장 낯선 거리, 명동
명동은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 거리다. 서울의 주요 관광지와 가까워 접근성이 뛰어나며, 관광객을 위한 숙박 및 편의 시설들이 밀집되어 있다. 거리에서는 관광객이 선호하는 브랜드의 매장을 한 번에 둘러보거나 다양한 길거리 음식까지 체험할 수 있다. 대부분의 매장에서 외국어로 응대할 만큼 한국인보다 외국인 관광객이 훨씬 많은 거리다. 명동에 위치한 커스텀 와펜 숍 ‘수노아’ 담당자의 말에 따르면 “이전에는 중국, 일본과 같은 아시아 관광객들 위주였다면, 이제는 다양한 국가의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상황”이다.
외국인 관광객의 시선과 소비에 맞춰진 명동 거리는 한국인들에게 다소 이국적으로 다가온다. 내국인들에게는 의약품 구매가 주목적인 ‘약국’에 외국인들이 북적이며 기능성 화장품과 영양제를 고르는 모습은 낯설다. 유통 구조 변화로 오프라인 화장품 매장은 수년 사이 서울에서 자취를 감췄지만, 명동에는 수십 개의 매장이 늘어서 있다. 한국인에게는 추억의 음료에 가까운 ‘바나나맛 우유’가 한 섹션을 가득 채우며 산처럼 쌓여 있는 모습도 동네 편의점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다. 서너 가지 맛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시즈닝 아몬드가 수십 가지는 거뜬히 넘을 듯한 버전으로, 300평대 매장을 가득 채우기도 한다. 명동은 한국인에게 익숙한 아이템들이 관광객의 시선으로 낯설게 재편된, 독특한 K-세계관의 거리다.

‘K-’를 만나러 오는 사람들
‘K-콘텐츠’는 외국인들이 한국을 방문하는 강력한 계기다. ‘2024 외래관광객조사’에 따르면 외국인들의 ‘방한 관심 계기’ 항목 중 “한류 콘텐츠를 접하고 나서”라는 답변이 38.3%로 1위를 차지했다. 예컨대 ‘케이팝 데몬 헌터스’와 같은 작품의 흥행은 한국 방문뿐만 아니라, ‘국립중앙박물관’에 대한 관심으로 번지기도 했다. 올해 역대 최다 관람객이 방문한 국립중앙박물관의 정재현 홍보 전문경력관은 “K-팝이나 드라마, 영화로 한국 문화를 접한 이후 ‘그 배경이 되는 역사와 미감은 무엇인가?’를 알고자 하는 흐름이 강해졌다.”고 분석했다. 명동에서 K-팝 앨범과 머치를 판매하는 스토어 ‘K-MECCA’ 브랜드 총괄 이은성 부장은 “저희 매장 방문객들은 단순히 ‘관광객’이 아니라 이미 K-팝에 대한 관심과 팬 경험을 지닌 분들이 많다.”고 현장의 분위기를 전하기도 했다.
콘텐츠에 대한 관심은 종종 그 문화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관심으로 확장된다. 더 나아가 콘텐츠에 등장하는 것들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현지에서 경험하려는 의지로 이어지기도 한다. 미국과 한국에 기반한 투어 업체 ‘누나스눈치투어(Noona's Noonchi Tour)’는 K-콘텐츠에 특화된 한국 여행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에게 한국에서 만났던, 만나고 싶은 ‘K-’는 무엇인지 물었다.
주로 K-콘텐츠와 관련된 어떤 장소들을 방문하고 있나요?
누나스눈치투어: 저희의 주된 목표 중 하나는 K-드라마 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장면을 정확히 그 촬영 장소에서 그대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저희의 초점은 ‘유행하는’ 장소를 방문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K-콘텐츠가 지닌 정서적인 연결, 그리고 K-콘텐츠가 삶의 행복을 더하는 방식을 저희 투어만의 방향성으로 삼고 있습니다. 물론 K-콘텐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최근에 보고 있거나, 좋아하는 것들 또한 여행 일정에 주기적으로 반영하고자 합니다. 예를 들어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가 흥행하자 수원 일정에 이 드라마의 촬영지를 포함시켰어요. 혹은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흥행한 이후에는 참가자들이 지금 가장 좋아하는 K-콘텐츠에서 영감을 얻어 서울 일정에 낙산공원과 서울한방진흥센터를 추가하기도 했고요. ‘몰입’이 저희 일정의 핵심이라 할 수 있겠네요.
누나스눈치투어는 ‘콘텐츠’가 중심에 놓고 여행을 가고자 하는 이들이 모인 셈인데요. 이렇게 모인 여행 참가자들은 보편적인 관광객과 어떻게 다를까요?
누나스눈치투어: 보편적인 관광객들이 유명한 랜드마크, 쇼핑, 명소 방문에 집중한다면, 저희 투어의 참여자들은 훨씬 개인적인 의도를 갖고 있어요. 많은 참여자들이 K-드라마나 K-팝이 자신에게 즐거움을 주었고, 본인의 삶에서 의미 있는 순간이나 힘들었던 시기를 함께했다고 말합니다. 이들에게는 화면 속에서 멀게만 느껴졌던 그 장소에 직접 발을 디디고 ‘내가 여기에 있구나.’를 실감하는 경험이 투어의 중요한 이유예요. 무엇보다 K-콘텐츠가 자신에게 왜 중요한지, 그걸 편견 없이 이해해주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게 처음이라고 자주 언급합니다. 그래서 참여자들끼리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되고 친밀감도 빠르게 형성되며, 투어가 끝난 이후에도 연락을 이어가기도 하죠.
팬데믹 이후로 다양한 K-콘텐츠에 대한 반응이 글로벌하게 나타난다고 생각됩니다. 실제로 K- 콘텐츠에 대한 반응을 어느 정도로 체감하고 있을까요?
누나스눈치투어: 팬데믹 이후 K-콘텐츠에 대한 반응의 규모와 깊이가 늘었다는 걸 확실히 체감해요. 우선 K-콘텐츠를 시청하는 걸 넘어 한국을 적극적으로 경험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이런 현상을 투어 프로그램에 대한 반응으로 확인할 수 있어요. 대기자가 늘고 새로운 투어가 빠르게 매진되며 재참여자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특히 다양한 국가와 연령대, 직업적 배경을 가진 참여자가 늘어난 점이 눈에 띕니다. 또한 K-콘텐츠는 ‘니치(niche)’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넘어 전 세계의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문화적 언어로 나아갔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여행의 참여자들은 점점 더 K-콘텐츠가 외로움이나 슬픔, 번아웃이라거나 인생의 전환점에서 어떻게 자신들을 위로했는지 공유하고 있어요. 좋아하는 배우나 드라마 장면을 이야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정신 건강 문제, 정체성, 내적 성장까지도 이야기해요. 또 이전보다 많은 이들이 촬영 장소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감독, 문화적 맥락에 대해 이미 잘 알고 방문한다는 인상이고요. K-콘텐츠의 성장은 오랜 시간에 걸쳐 지속되어 왔지만, 특히 지난 1년은 어떤 전환점처럼 느껴져요. 많은 이들에게 K-콘텐츠는 그저 ‘좋아하는 볼거리’에서 ‘삶의 의미 있는 부분’으로 전환되었다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