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처럼 영화 보기 📝
작성자 더셀룰로이드
영화 담론
평론가처럼 영화 보기 📝
평론가처럼 영화를 본다? 🔍
말만 들어도 구미가 당긴다. 현 사회에서 영화는 점차 '숭고한' 예술로 나아가고 있다. 영화 평론가는 이러한 예술의 은닉된 결을 파헤쳐 그 속에서 발견된 새로운 시선을 관객과 공유한다. 그 과정에서 평론이란 말하자면 예술과 삶을 연결하는 가교가 된다. 평론가의 시선으로 영화를 바라본다는 것은 평면의 스크린 이면에 깃든 예술적 의도를 탐구하고 감독과 관객 사이의 다리 역할을 자처하는 일이다. 한눈에 봐도 현대인들에게 이러한 작업은 매혹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 그렇다면 당신이 원하는 그 사람이 되어보자. 그러나 우리가 서둘러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다.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올바른 영화 평론'의 기본적인 개념을 재정립하는 것이 우선이 될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영화 평론계는 극심히 양극화되어 가고 있다. 대중은 과도하게 상업적으로 빠지고 있고, 평론가는 지독하게 아카데믹한 기조를 유지한다. 현대의 영화 평론은 여전히 추상적이고 거시적인 수준에서 머무른다. 말하자면, 영화가 추구하는 미시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숨결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평론은 종종 현장성을 상실하고 관객과 유리된 상태에서 영화 자체보다는 이론에 매몰되기 쉽다. 이러한 경향은 평론이 관객에게 외면받고, 오히려 인터넷상의 간단한 평이나 대중적인 영상 리뷰 프로그램에 더 많은 영향력을 내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결과로서 증명되고 있는 것이다. 피상적이고 표면적인 리뷰 영상들이, 수박 겉 핥기 식의 리뷰 글이 깊이 있는 글을 누르고 검색 엔진을 장악하고 있다. 한 번 영화 제목을 아무 곳에나 검색해 보시라. 그리고 아무 콘텐츠나 열람해 보시라. 그 깊이가 가늠이 되실 것이다. 이렇게 영화 평론의 빛은 저무는 것인가? 그래선 안 된다.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고,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것이다.
현대의 대중이 올바른 영화 평론을 하기 위해서 가장,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스노비즘과 포퓰리즘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으나, 서두에서 언급한 영화 평론의 그 고혹적인 매력 때문에 이러한 제1테제를 망각하고 있다. 단순히 현학적이고 지적인 이론을 나열한다고 해서 리뷰가 평론이 되는 것이 아니다.
푼크툼 VS 스투디움 🖼
롤랑 바르트라는 철학자는 그의 저서 [카메라 루시다]에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방법론에 있어 '스투디움'과 '푼크툼'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스투디움'이란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방식으로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것 - 타인과 같이 보편적인 이해 방식으로 작품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반면에 '푼크툼'이란 라틴어로 '찌름'이라는 뜻을 지닌다.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개인적인 경험과 맞물려 일어나는 감정적 요동을 의미한다. 스투디움과는 달리 보편적이지 않고 개인적인 감상법이라는 것이다.
영화를 비평함에 있어 푼크툼의 작용은 불가피하다. 푼크툼과 스투디움 간의 밸런스. 그것이 영화 비평의 기본이자 핵심이다. 스투디움만 가지고 영화를 비평하면 그것은 진부한 해석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푼크툼만 가지고 해석을 해도 안 된다. 그것은 타인의 공감을 불러 일으킬 수 없는, 자신만 아는 개인적 해석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둘 사이의 밸런스이다.
다시 하던 이야기로 돌아와서, 현대 사회의 영화 평론이 지닌 맹점 - 스노비즘과 포퓰리즘의 언밸런스를 다르게 표현하면 곧 푼크툼과 스투디움의 편향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무슨 말인가 하면, A라는 작품을 똑같이 보았을 때 평론가는 지독하게 '스투디움적인 평론'만을 내놓고, 대중은 지독하게 '푼크툼적인 평론'만을 쫓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답은 무엇인가. 필자가 생각하는 정답은
영화는 예술이다. 디오니소스적인 것(미적이고 즉흥적인 것)이 배제되는 순간 그것은 예술이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 현대의 영화 비평이 대중들에게 외면받는 이유는, 과도하게 아폴론적 요소(이성)에 의존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즉,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은 예술의 기본 - 감정적 pathos와 푼크툼을 배제하지 않으나, 그것이 넘쳐흘러 스투디움을 벗어나지 않는 평론 글을 적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하면. 아마 평론가의 글을 보고 '아, 인상 비평에 불과한 내 리뷰는 쓰레기였어' 라는 생각으로 그 생각을 폐기하려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니다. 그 푼크툼을 유지하시라. 우리가 해야 할 것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 푼크툼을 스투디움으로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가지고 있는 그 소중한 푼크툼을 '스투디움이라는 틀 안에' 붓는 것이다.
이제 그 스투디움을 마련하기만 하면 된다. ❗
다음 챕터에서 알아보자.
영화, '잘' 보기 - 모든 영화에 통용되는 법칙 👀
모든 영화는 의미의 집합이다. 이는 곧,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쇼트, 오브제, 앵글, 그리고 편집은 필연적으로 함축적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로 귀결된다. 이것 하나만 깊게 새기자.
영화를 찍는 데에는 그것이 한 쇼트여도 천문학적인 자본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나아가 연출자가 최종 편집 과정에서 그 쇼트를 도려내지 않았다는 것은, '어떤 형식으로든'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처럼 들릴 진 몰라도 잊지 말자. 연출자를 최선을 다해 존중하라.
어떤 장면을 '왜 굳이 그 앵글로', '왜 굳이 그 형식으로', '왜 굳이 그렇게 보이게' 찍었는지 생각하라. '굳이'라는 단어를 계속해서 되뇌이다 보면, 영화를 보는 눈이 달라진다.
영화적 의미는 쇼트의 연속적 구조 속에서 생성된다. 모든 쇼트는 그 크기와 앵글, 구성의 요소를 통해 고유한 '위계적 의미'를 지닌다.
가령 프레임 안에서 어떤 인물이 더 큰 부피를 차지하고 있다면, 이는 곧 그 인물이 서사 내에서 중요한 지위를 점유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와 같은 '히치콕의 법칙'은 단순한 장면 구성의 기법이 아니라 영화적 서사구조의 본질을 파악하는 키다.
반복되는 이미지나 오브제는 단순한 시각적 장치가 아니다. 이는 특정 의미를 부여받은 '소도구'로서 작품 내에서 중요한 상징적 역할을 한다. 물이나 밧줄과 같은 오브제가 '반복적으로', '두 번 이상' 등장한다면, 그것이 지닌 다층적 의미를 고찰해야 한다. 물은 생명과 탄생의 기원을 상징할 수도 있고, 밧줄은 구속이나 유대감을 상징할 수 있다. 이러한 오브제에 대한 메타적 사고와 해체적 분석이야말로 영화의 심층적 의미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평소에 '해체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을 들이자.
영화는 항상 그 내러티브와 형식 속에 '보편화'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영화 속 오브제와 메타포는 그 자체로 특정한 사회적 의미를 보편화하는 매개체다. 가령, 영화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밧줄이 단순히 구속의 의미를 넘어 인간 관계의 복잡성과 얽힘을 상징한다면, 이는 특정 인물 간의 갈등을 넘어 인간의 본질적 고립감이나 연결의 욕구를 은유한다. 이처럼 영화는 그 자체로 함축된 디제시스를 보편화하여, 관객이 자신의 삶과 연결할 수 있는 지점을 제공하도록 구조화 되어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러한 보편적 의미를 찾아내는 것. 아니, 찾아내는 것도 아니고 그저 '보이는 대로 보는 것' 뿐이다. 연출자는 반복을 통해 최선을 다해 강조해주고 있다. 우리는 그저 그것을 능동적으로 잘 캐치해주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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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 메모, 메모...📑
메모하시라. 이것이 영화를 깊이 있게 감상하는 키 포인트다. 영화가 시작된 후, 특히 오프닝 시퀀스와 엔딩 시퀀스는 창작자의 의도가 농밀하게 담긴 함축적 서사와 심미적 단서들로 가득하다. 특히 초반 5분 동안은 모든 요소를 기록하라. 배우의 대사, 카메라의 앵글, 움직임, 편집의 리듬에 이르기까지, 세밀하게 감각된 모든 요소를 빠짐없이 적어두는 것이 중요하다. 영화가 주는 최초의 암시는 종종 작품 전체의 미학적 방향성을 암시한다.
그토록 함축적인 매체가 쏟아붓는 정보의 향연을, 우리는 100분 동안 기억할 수 없다. 그것은 휘발되기 마련이다. 기록하고, 메모하는 습관을 들여보자.
처음엔 아무것도 안 보이는 영화관에서 앞만 보고 메모를 한다는 것이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하다 보면 익숙해지고, 성과가 보인다. 믿어보시라.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제 당신의 차례다. 이 참에 영화 한 편을 보고 평론글을 적어보시는 건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