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퀴엠, 내 감각을 빨아들여버렸다

레퀴엠, 내 감각을 빨아들여버렸다

작성자 성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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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퀴엠, 내 감각을 빨아들여버렸다

성민이
성민이
@user_yf6ldkny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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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시작하자 엄마와 아들이 대립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문을 사이에 두고 움츠러든 엄마와 날선 아들이 대비되고

거실에 있는 tv를 끌고나가 팔아먹는 아들의 모습이 긴장감 있는 음악과 함께 이어졌다.

그렇게 시작부터 만만치 않은 영화일 것임을 보여줬다.

 

엄마와 아들의 대립으로 시작했지만 둘은 별로 만나지 않는다.

그저 tv 보는 재미로 살던 엄마는

어느 날 갑자기 tv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들떠서

젊었을 때 입었던 옷을 입어보려 하지만 살이 쪄서 들어가지 않자 다이어트를 결심한다.

단기간에 효과를 높이기 위해 병원을 찾아 다이어트 약을 처방받아 먹게 된다.

변변한 일자리 없이 친구와 같이 살고 있는 아들은

여자 친구와의 행복한 삶을 꿈꾸며 돈 벌 궁리를 하고 있다.

장사를 하고 싶었지만 모아놓은 돈이 없었기에

목돈 마련을 위해 뛰어든 일이 마약거래였다.

 

그렇게 엄마는 다이어트를 위해 위험한 약을 먹기 시작했고

아들과 친구는 돈을 벌기 위해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들은 점점 약에 빠져 들어갔다.

빠른 전개와 교차 편집, 몽타주 기법, 강렬한 효과음향 등으로 마약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사람을 잡아끌기보다는 현란한 테크닉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영화를 보고만 있었다.

 

현란하고 강렬하지만 특별한 흡입력 없이 중반쯤 이야기가 흘러가다

그들이 본격적으로 약에 중독되기 시작하자

영화의 흐름이 조금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배우들은 눈과 몸이 풀려 흐느적거리기 시작했고

감독은 현란한 테크닉보다는 흐느적거리는 그들의 감각에 맞춰 카메라를 조절했고

영화를 보는 나는 비로소 긴장감을 가지면서 그 불편한 흐느적거림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관객이 낚시줄에 걸려들었음을 확인이라도 했다는 듯이

감독은 다시 현란한 테크닉을 더 과감하게 보여주면서

약에 중독된 이들의 환각과 불안과 우울과 현실의 비참함을 한꺼번에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다른 곳으로 정신을 돌리지 못하도록

빠른 속도로 그들을 파멸로 몰아붙였고

그 현란함과 속도감과 강렬함에 이끌린 나도 점점 그 속에 빠져 들어갔다.

 

발버둥 칠 틈도 없이 낭떠러지로 떨어진 그들은

허우적거릴 힘도 없는 상태에서 지옥의 수렁을 맞보게 됐다.

약물중독을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또는 마약중독자를 교화한다는 명목으로

또는 중독된 이를 이용해먹기 위해

다른 이들의 먹잇감이 된 그들은

끔찍하고 잔인하고 더럽고 살벌한 상황의 한가운데 놓여있어야 했고

감독은 그 상황을 매우 현란하고 강렬하면서 극단적인 방식으로 보여줬고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나는 불쾌하고 불쾌하고 불쾌하면서도 눈을 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고 나서

배우들은 처참한 몰골로 쓰러졌고

감독은 조용히 뒤로 빠져버렸고

나는 깊은 한숨을 쉬면서 엔딩 크레딧을 보고 있는데

마음속이 고요하고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나서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보는 한 여인의 뒷모습이 보이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아름답고 편안하면서 눈물겨운지 모를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