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들의 히치하이킹, 철없는 20대들의 무모한 도전에 고개가 숙여진다

잉여들의 히치하이킹, 철없는 20대들의 무모한 도전에 고개가 숙여진다

작성자 성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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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들의 히치하이킹, 철없는 20대들의 무모한 도전에 고개가 숙여진다

성민이
성민이
@user_yf6ldkny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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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행동은 하지 않고 생각만 많은 잉여인간’이라고 규정하는 영화과 학생들이 전망 없는 한국에서의 대학생활을 포기하고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카메라 한 대와 간단한 조명, 노트북만을 들고 무작정 유럽으로 가서 숙소의 홍보영상을 만들어주며 숙식을 해결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렇게 1년 동안 유럽 곳곳을 여행한 후 마지막에는 비틀즈의 나라 영국에 가서 뮤직비디오 한 편을 찍고 여행을 마치는 동시에 그들의 일정을 다큐로 만든다는 엄청난 포부를 갖고 출발했다.

영화과 친구 4명만으로는 일손이 부족할 것 같아서 그래픽 디자이너 3명까지 대동하고...

 

거창한 계획과 비장한 각오를 갖고 프랑스 파리에서 여행을 시작한 그들은 출발부터 현실의 벽을 마주하고 말았다.

프랑스에서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하자 옆 나라인 이탈리아 로마로 가기로 한 그들은 돈이 없기에 히치하이킹을 시도하지만 그 조차 쉽지 않았다.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로마로 갔지만 그곳에서도 그들의 무모함은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가자 영화와 직접 연관이 없는 그래픽 디자이너들은 의욕을 상실하고 한국으로 돌아가 버렸다.

남은 네 명도 쓰리기장에 텐트를 치고 더 버텨보지만 좀처럼 해결책이 잡히지 않는다.

 

흔들리는 카메라 속에서 실없이 웃기만 하며 농담만 주고받는 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거의 전부인 다큐였다.

연출을 맡은 이의 나레이션으로 이야기의 흐름을 잡고는 있었지만 유럽의 풍광을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그곳에서의 고생을 담아내는 것도 아니고, 현지인들과의 소통과 갈등을 풀어내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아마추어들의 로드무비일 뿐이었다.

 

“이런 걸 계속 보고 있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 때 쯤

모든 걸 다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하던 그들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한 민박집에서 자기네 홍보영상을 찍어달라는 것이었다.

기적과 같이 벌어진 일에 신난 그들은 열악한 조건에서 영상작업을 시작한다.

자기들끼리만 신나서 설렁설렁하며 영상작업을 하는 것 같았는데

그들이 만든 영상이 보여 지는 순간

“우와~ 얘네 좀 만드는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퀄리티가 높은 작품이 나타났다.

 

그 이후 그들의 영상은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고

이곳저곳에서 일감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먹고 자는 것 걱정 없이 신나게 일하며 즐길 수 있게 됐고

그들의 무모한 꿈은 화려한 현실이 됐다.

흔들리는 카메라와 실없는 농담들, 나레이션만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여전했지만

그들의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영화에 푹 빠져 들어갔다.

 

그렇게 꿈같은 날들이 이어지며 계획했던 1년이 다 되어갈 즈음

영국에서 또 다시 꿈같은 연락이 왔다.

뮤직비디오를 찍어달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비행기를 타고 영국으로 날아갔다.

그리고 평소 좋아했던 밴드의 뮤직비디오를 찍게 되는 호재까지 겹치게 된다.

 

하지만

별다른 장비와 인력 없이 뮤직비디오를 찍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됐고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틈틈이 작업을 해야 하는 현실이 육체적 피로를 누적시켰고

뮤직비디오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그들 사이에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하나의 뮤직비디오는 완성했지만 다른 하나는 완성하지 못했다.

 

귀국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팀의 리더가 혼자서라도 남은 뮤직비디오를 완성하고 싶다며

무작정 남쪽으로 향한다.

낡은 자전거를 타고다가가 그마저도 고장 나서 걸어가게 된다.

그렇게 걸어서 어느 바닷가의 등대에 다다랐을 때

그가 걱정돼 따라온 나머지 맴버들이 합류하고

그곳에서 다시 끔찍한 어려움을 겪으며

그들은 뮤직비디오를 완성했다.

 

흔들리는 카메라, 실없는 농담들, 나레이션만으로 끌고 가는 이야기가 끝까지 이어진

철없는 20대들의 무모한 도전이야기는

세련된 프로들과 산전수선 다 겪은 기성세대들에게 ‘씩~’하며 옅은 미소를 보여주며 끝났다.

마지막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내게서 사라져버린 것을 다시 보여줘서 정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