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86회 – 기득권 카르텔과 아래로부터의 에너지
작성자 성민이
읽는 라디오 다시!
다시! 86회 – 기득권 카르텔과 아래로부터의 에너지
1
계엄이 선포되고 1주일이 지났습니다.
상상하기 어려운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계엄령이 내려진 것도, 6시간 만에 해제된 것도, 그 자들이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는 것도, 탄핵안이 처리되지 못한 것도, 여당 의원들의 뻔뻔한 행동들까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한 발 떨어져 살고 있는 저지만 지난 1주일은 세상의 소식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비현실적인 모습들에 어수선하고 심란하기도 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현실감이 생기기 시작하니까 한국사회의 시스템이 보이더군요.
한국사회의 시스템은 계엄령이라는 엄청난 충격에도 잘 버텨냈을 뿐 아니라
의회주의라는 틀에서 탄핵을 막아내고 그들의 자리를 지켜내는 데도 성공하더군요.
민주주의의 저력을 보여주는 동시에 기득권의 힘도 보여줬습니다.
10년 동안 검찰개혁과 의료개혁을 외쳐왔지만 검찰과 의사들의 카르텔이 아직도 굳건한 것처럼
“지금은 욕먹겠지만 1년만 지나면 달라져서 국회의원 또 당선 된다”던 윤상현의 말은 그런 자신감을 보여줬습니다.
박근혜 탄핵으로 궤멸될 것 같았던 그들이 5년 후에 다시 정권을 잡았으니 그런 자신감이 생길만도 합니다.
물론 위로부터의 저항은 아래로부터의 거센 흐름을 막아내지 못합니다.
우여곡절은 있겠지만 윤석열은 감옥에 가겠죠.
그리고 선거가 치러질 것이고 누군가가 새로운 대통령으로 자리하겠지만
저 기극권의 카르텔은 무너질까요?
2
2008년부터 8~9년 간격으로 계속되는 대규모 촛불집회를 경험하며
가장 좋았던 것은 세상 사람들과 함께 이어져있다는 연결의 감정이었습니다.
세상에서 버림받아 아무도 돌아봐주지 않는 저였지만
광장이 열리고 촛불이 밝혀지는 순간
저는 무수한 이들과 당당하게 함께 할 수 있었고
제 목소리를 그들이 들어줬고
그들의 목소리에 제 가슴이 뛰었습니다.
꽉 막혔던 기가 시원하게 뚫리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촛불이 꺼지고 광장이 닫혔을 때
저는 다시 외톨이로 돌아와야 했지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제 마음 속에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이번 촛불집회에는 예전보다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 기운들을 느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기득권의 카르텔이 판치는 세상이 쉽게 바뀌지는 않겠지만
지금의 이 기운들이 그런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만들어주고
그렇게 흐름들이 이어지면 세상에는 반드시 균열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또 한편으로 촛불집회 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젊은 세대들의 거침없고 창조적인 에너지들이 따라가기 벅찰 정도로 넘쳐난다는 점입니다.
저처럼 이런저런 경험들이 많이 쌓인 세대들은
돌발적인 상황이 생기면 머릿속에 생각이 많아져서 행동이 느려지고 겁부터 생깁니다.
하지만 경험보다는 열정이 앞서는 이들은
충격적인 상황에서도 순간적으로 빈틈을 찾아내서 기발한 방법으로 그곳을 돌파해버립니다.
꼰대들이 마이크 잡고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장황하게 떠벌릴 때
젊은 학생들은 단순하고 명확하면서도 재치 있게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냅니다.
그 모습들을 보면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배웁니다.
3
매일 뉴스와 각종 영상과 sns 등을 살펴보면서
투쟁의 최전선을 지켜보지만
제가 있는 곳은 그곳에서 한 발 떨어져있습니다.
그런 현실을 자각할 때마다 약간의 자괴감이 들기도 하지만
제가 있는 곳이 항상 삶의 최전선이라고 생각하며
지금의 상황을 맞이하려 노력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잠시 지금의 국면을 둘러봤더니 저처럼 뒤에서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이 보이더군요.
각종 트라우마를 갖고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지금 상황이 심각한 전시 상황이나 마찬가지일 수도 있을 겁니다.
몸과 마음이 아픈 이들에게는 의료대란에 이은 계엄정국이 끔찍한 고통의 연속일지도 모릅니다.
자영업자들은 계속된 불황 끝에 연말 특수마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하죠.
이런저런 이유로 오랜 싸움을 이어오고 있는 이들에게는 자신들의 투쟁이 묻혀버리는 안타까움도 있을 겁니다.
또 다른 무수한 이유들로 소외되고 밀려나는 이들이 많을 것이기도 하고요.
물론 그들의 소리들이 제게 들려오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을 향해 눈과 귀를 활짝 열어놓은 이상
그들의 소리가 들려오지는 않는지 더 세심히 살펴봐야겠습니다.
제가 지금 서있는 곳이 그런 곳이기 때문입니다.
4
이 녀석들은 감귤 선과장에서 지내는 개들입니다.
저 앞에 보이는 야윈 개가 지난 9월에 새끼를 낳았습니다.
여섯 마리를 낳았는데 다 분양이 돼서 지금은 까만 녀석 두 마리만 남았습니다.
제대로 보살핌도 받지 못한 채 묶여 지내는 녀석이 불쌍해서 매일 산책을 시켜주고 있습니다.
엄마가 산책을 나서면 강아지 둘도 엄마를 따라서 같이 산책을 즐깁니다.
세 녀석을 하우스에 데리고 와서 풀어놓으면 신이 나서 마구 뛰어다닙니다.
의자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제 기분도 즐거워지죠.
그렇게 한참을 뛰어다니다가 지치면 제 곁으로 다가와서 애정표현을 합니다.
이가 나기 시작하고 있는 강아지들은 제 옷과 의자를 물면서 계속 달라붙고
어미 개는 앞발을 들어 제 무릎 위로 올라와서는 제 얼굴을 마구 핥아댑니다.
그러면 저는 녀석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면서 꼭 안아줍니다.
묶여 지낼 때는 성격이 예민해서 쓰다듬으려면 가끔 입질도 하던 녀석인데
이제는 이렇게 온몸으로 제게 안겨서 애정표현을 하는 것이 너무 행복합니다.
그렇게 길지 않은 산책을 마치고 선과장에 돌아가 다시 묶어주면
지저분한 환경과 방치에 가까운 조건 때문에 마음이 조금 짠합니다.
하지만 그런 짠한 마음이 저뿐만이 아니어서 주위에서 이래저래 관심을 가져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가끔 그런 분들과 마주칠 때면 개들에 대한 걱정을 서로 나누면서 따뜻한 마음을 교환합니다.
그냥 스치며 지나가기만 했던 분들이 하나의 마음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죠.
지금 도시의 광장에서는 촛불집회로 서로의 마음들이 연결되고 있듯이
이곳에서는 방치되다시피 한 개들을 매개로 주변 사람들의 마음이 연결되고 있습니다.
세상은 이렇게 따뜻한 에너지들이 서로 통하고 있네요.
(Mercedes Sosa의 ‘Yo vengo a ofrecer mi corazó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