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운폴, 지옥 속에서 고통스럽게 흔들리는 악마들을 지켜봤을 때

다운폴, 지옥 속에서 고통스럽게 흔들리는 악마들을 지켜봤을 때

작성자 성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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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폴, 지옥 속에서 고통스럽게 흔들리는 악마들을 지켜봤을 때

성민이
성민이
@user_yf6ldkny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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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이 폐망하기 직전

소련군이 베를린으로 진입하며 곳곳에서 무차별 폭격이 이뤄진다.

지하벙커에 모인 나치 수뇌부는 대책을 논의하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다.

일부 참모가 소련과의 평화협상을 제안하지만 히틀러는 “독일민족에게 패배란 없다”며 단칼에 거절한다.

베를린 시내에서는 퇴각하려는 군인과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군인들이 대립하지만 압도적 화력의 소련군 앞에서 그저 죽어나갈 뿐이다.

거리에서는 군인과 시민들이 무참하게 죽어나가고

지하벙커에서는 암울한 분위기를 걷어내고자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춘다.

그 와중에도 나치 친위대는 살려고 도망친 군인들을 찾아내 공개처형하고

민병대는 무장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결사항전을 외치다 죽어가고

군인과 시민들의 무고한 죽음 앞에서 히틀러와 괴벨스는 ‘독일민족의 위대함과 운명 앞에 선 개인들의 선택’이라는 단호함만을 얘기할 뿐이었다.

아비규환의 거리와 불안감이 팽배한 벙커의 모습이 점점 숨을 조여 온다.

 

히틀러는 어떻게든 상황을 바꿔내려 참모들을 질책해보지만

자기 살 길을 찾아 이미 딴 마음을 먹은 이들과

총통과 함께 끝까지 싸우겠다며 결의를 다지는 이들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저 지쳐보기만 하는 이들이

갈팡질팡하는 가운데 소련군은 점점 더 다가오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봤지만 할 수 있는 것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을 확인한 히틀러는

개인비서였던 여성과 약식으로 결혼식을 올린 후 참모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는 자살을 한다.

히틀러 부부의 시체는 적들에게 넘어가 능욕을 당하지 않도록 화장해달라는 요구에 따라 화장을 하게 된다.

나치 2인자인 괴벨스는 대피하라는 히틀러의 명령을 따르지 않고 끝까지 함께 하겠다면서 히틀러의 마지막을 지킨다.

히틀러 부부가 자살하자 괴벨스 부부는 여섯이나 되는 어린 자녀들에게 독극물을 먹여 죽인 후 자신들 역시 자살을 선택했다.

 

히틀러와 괴벨스까지 죽고 나자 중심을 잃어버린 나치 지도부는 뿔뿔이 흩어졌고

남아있던 군 지도부가 소련군에 항복을 하면서 독일의 저항은 끝나버렸다.

그 상황에서도 투항을 거부한 일부 군인과 지도부는

전열을 정비하며 수훈을 세운 병사에게 훈장을 수여하기도 하고

소련군의 포위망을 뚫기 위한 대책을 논의하기도 하지만

그 마지막 발악마저도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한 채 무너져버린다.

 

마지막에 히틀러의 비서였던 실제 인물이 등장해서

“나중에 나치가 저질렀던 끔찍한 일들을 알게 되면서 많이 놀랐다.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 줄 정말 몰랐다. 하지만 내가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고 상황을 살폈더라면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었을 것이다”라며

변명인지 반성인지 모를 애매한 말을 하면서 영화는 끝이 난다.

 

2시간 30분 동안 숨 막히는 그때의 상황들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데

팽팽한 긴장감이 고스란히 전달되면서

그들의 인간적 고뇌와 흔들림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들에게 감정이입을 하지 않았고

그들을 영웅시하거나 악마화하지도 않았다.

그냥 지옥의 한복판에서 발버둥치는 인간들의 모습을 담담하게 보여줄 뿐이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이런저런 생각들이 밀려들었다.

“그들이 끝까지 버티게 해준 것은 신념인데 ‘맹목적 신념에 세뇌된 이들의 최후’로 이 영화를 바라보면 될까? 일제에 맞서 끝까지 싸웠던 독립투사나 친일독재에 맞서 싸웠던 사회주의자들이나 군사독재에 맞서 싸웠던 민주주의자들도 신념 하나로 버티지 않았는가. 나치의 신념과 그들의 신념은 무엇이 다를까?”

“나치에 부역했던 자들 중 상당수는 나치가 저질렀던 잔학행위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것을 핑계로 많은 이들이 전범재판에서 빠져나가기도 했는데 그러면 그걸로 그들의 죄가 감형되는 것이 타당할까?”

“악한 자를 악랄하게 보여주며 인간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내는 것과 그들 또한 우리와 다를 바 없이 나약하고 흔들리는 인간이었음을 보여주는 것, 어떤 방식이 우리 자신을 성찰하게 만드는 것일까?”

“저들에게 느껴지는 인간적 연민은 어떻게 이해해야할까?”

이 영화의 최대의 미덕은 이런 질문들을 하게 만드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