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83회 – 겸손한 삶
작성자 성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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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83회 – 겸손한 삶
1
아는 분이 몸이 많이 안 좋아져서 입원을 했습니다.
아흔이 되어가는 나이에도 팔팔하셔서 직접 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하반신에 문제가 생기면서 걷지를 못하게 됐습니다.
각종 검사를 받아봤더니 신경 쪽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받았지만
특별한 질병이나 사고로 인한 것이 아니어서 치료가 쉽지 않았습니다.
자식이 가까이 살지만 직장을 다니고 있고
집에는 나이든 부인이 병간호를 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을 했다고 합니다.
입원 치료 이후 몸 상태는 아주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는데
이제는 정신이 오락가락한다고 하네요.
섬망인지 치매인지 아직 판단이 되지 않지만
아이 같이 천진하면서도 약간 어눌한 말투로 자신의 세계를 펼친다고 합니다.
180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나이에 비해 꽤 동안인데다가 잘 생긴 얼굴을 가졌고
약간 말이 많기는 하지만 성격도 무던하니 괜찮고
나이 들면서 가끔 잔병치레를 했지만 크게 아픈 곳 없이 잘 지냈고
몇 년 전에 큰딸이 암으로 죽은 것을 제외하면 자식들도 다 잘 살고 있고
오랫동안 해왔던 감귤농사도 잘 되어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들이닥친 질병 앞에서 여름철 아이스크림처럼 흐물흐물 녹아내리고 말았습니다.
뭔가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없겠느냐고 물어봤지만 딱히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나이도 많고 그래서 가족들은 마음의 준비를 미리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저희 아버지도 큰 탈 없이 잘 지내시다가 어느 날 갑자기 폐암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에 들어가면서 몸과 마음이 흐물흐물 녹아내리다가 돌아가신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더 그분의 소식이 안쓰러웠습니다.
주변에서 이런 모습을 심심치 않게 봅니다.
며칠 전까지도 인사를 나눴던 분이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기도 하고
귀찮아서 전화를 받지 않았던 분이 몇 달 후에 돌아가시기도 하고
오랫동안 연락 없이 지내다가 어느 날 들려온 소식이 부고일 때도 있고
힘들게 암 투병을 하시는 소식만 들으며 응원을 했었는데 결국 일어나지 못했다는 소식을 듣기도 합니다.
그런 소식들을 전해들을 때마다
질병과 죽음이라는 것이 어느 날 갑자기 뚝하고 찾아올 수 있고
그 앞에서 몸과 마음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것을 배웁니다.
그럴 때마다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는 지금 삶에 감사하고
질병과 죽음 앞에 겸손해야 한다는 것을
가슴 속에 새기고 또 새겨봅니다.
2
며칠 전에 어머니가 오셨다가 돌아가시는 길에 짐들이 있어서 택시를 부르려고 했습니다.
이곳은 시골이라서 택시회사에 전화를 차를 보내달라고 해야 합니다.
평소에 택시를 이용할 일이 없어서 인터넷으로 인근 택시회사를 검색했는데 예전에 이용하던 회사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회사가 보이지도 않았고 조금 멀리 있는 회사들에 전화를 해봤더니 멀어서 곤란하다는 얘기를 하더군요.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요즘은 카카오택시 같은 플랫폼을 통해서 택시를 부른다고 하는데 저는 2G폰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앱을 다운받아서 이용할 수가 없는 형편입니다.
이래저래 인터넷 검색을 해보다가 결국 멀리 있는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서 앱으로 택시를 불러달라고 부탁을 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택시는 금방 도착했고 어머니는 택시를 타고 가셨습니다.
세상에서 조금 떨어져서 살다보면 불편한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최신 유행이나 트렌드에 대해서는 무감각해도 아무런 지장이 없기에 괜찮고
각종 정보들을 조금 늦게 확인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그것도 크게 문제되지는 않고
사람들과의 교류에 조금 차질이 있기는 하지만 감내하며 살아가기로 했기에 덤덤하게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택시를 타는 것 하나도 쉽게 할 수 없는 조건이라면 불편함의 수준이 조금 고민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택시를 부르는 것 때문에 스마트폰을 구입할 수도 없으니 참...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앞으로 더 빠르게 변해갈 텐데
그런 세상의 흐름에서 뒤처지고 있는 저는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점점 줄어들어갈 겁니다.
제가 받아들여야 할 것은
이런저런 불편함들이 아니라
쓸모가 조금씩 떨어지고 있는 제 삶 자체인지도 모르겠네요.
3
제가 참으로 열정적으로 앞만 보고 달려가던 시절
오만하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또 한편으로 부끄럽지 않으려고도 노력했습니다.
그런 노력들이 켜켜이 쌓여서 크고 작은 성과들을 만들어내기도 했지만
그런 노력들 때문에 알게 모르게 상처받은 사람들도 생겨나곤 했지요.
앞만 보고 달리던 그때는 그런 사람들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볼 여유가 없었는데
세월이 흘러 여유롭게 살아가게 되니 그때의 사람들 얼굴이 문득문득 떠오릅니다.
단호할 때는 단호해야 한다는 생각에 거침없는 말과 행동을 쏟아 부었던 사람
뒤에서 투덜거리기만 하는 모습에 불같이 화를 내버리는 바람에 같이 가지 못했던 사람
밀려드는 일들 속에 두루두루 주위를 살피지 못해서 스르르 멀어져버린 사람
앞만 보고 달리느라 도와달라는 소리에도 미처 돌아보지 못했던 사람
힘들어 하는 모습에 자극이 될까 싶어 했던 말이 상처가 되어 박혀버린 사람
부끄럽지 않으려던 노력이 지금에 와서 부끄러운 기억으로 되살아나고 있었습니다.
그 부끄러운 기억들이 올라올 때마다 외면하지 않으려 노력해봅니다.
제가 상처 줬던 이들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받을 수는 없겠지만
그들에게 줬던 상처를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것이 최소한의 사죄이길 바랄 뿐입니다.
그러면서 제게 물어봅니다.
“이 살벌하고 차가운 세상에서 더 겸손하고 작아 질수 있겠어?”
뭔가 해보려고 할 때마다 사람들이 외면하는 것은 이제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별 볼일 없는 중늙은이 시골 농부라고 무시할 때는 순간적으로 화가 올라오지만 제 자신을 토닥토닥 위로해줄 수 있습니다.
저의 절박함에 관심이 없었던 이가 제게 뭔가를 부탁해 올 때는 애써 덤덤하려 노력하지만 마음은 차갑게 굳어버립니다.
사랑이와 산책을 나서는 그 길에서 밭일을 하고 있는 늙은 노인들과 이주노동자들을 보며 늙어가는 사랑이를 걱정할 뿐 그들의 고단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이 살벌하고 차가운 세상에서 겸손하고 작아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하부영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