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인생처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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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인생처럼 쓰다

@user_v8iuejaz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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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는 인생처럼 쓰다”

비 오는 날이었다. 서준은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커다란 트럭 문을 열었다. 낡은 커피 머신과 원두가 든 상자들을 하나하나 꺼냈다. 2년 전, 다니던 대기업에서 해고당한 그는 자신의 커피 브랜드를 꿈꾸며 퇴직금과 대출로 이 트럭을 마련했다. 무모해 보였지만, 남들에게 보이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만 했다.

처음 몇 달은 지옥 같았다. 푸드트럭을 어디에 주차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허가를 받는 과정에서 서류를 여러 번 반려당했다. 날씨는 자주 도와주지 않았고, 매출은 늘 적자였다. 하루는 단골 하나 없는 텅 빈 트럭 앞에서 혼자 커피를 마시다가, 땅거미가 질 무렵 눈물이 흘렀다.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 대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다. 돌아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재취업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또다시 누군가의 계획에 인생을 맞춰야 했다. 그가 바라던 것은 작은 자유였다. 커피 향에 둘러싸여 자신만의 시간을 만들고,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 그 자유가 바로 이 사업에 대한 그의 열망을 지탱했다.

그는 매일 새벽, 남들보다 먼저 일어났다. 맛있는 커피를 위해 로스팅 공부를 시작했고, 블렌딩 기술을 배우러 지방의 작은 카페까지 찾아갔다. 동네 바리스타 대회에도 나갔지만 성적은 처참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한 참가자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실패는 중요한 게 아니에요. 중요한 건 고객의 마음을 이해하는 거예요." 그 말이 서준의 마음에 강하게 남았다.

그 후 서준은 커피 맛보다 고객 경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메뉴를 단순화하고, 날씨에 따라 추천 메뉴를 바꿨다. 비 오는 날에는 따뜻한 라떼에 시나몬을 얹고, 더운 여름날엔 시원한 콜드브루를 제공했다. 작은 노트북을 꺼내 고객의 취향을 기록하고, 단골에게는 맞춤형 음료를 서비스했다.

그의 정성과 노력이 조금씩 결실을 맺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한 손님이 말했다. “여기 커피는 뭔가 특별해요. 커피 자체도 좋지만, 매일 오는 게 기분 좋아요.” 서준은 그 말을 듣고야 비로소 자신의 길이 틀리지 않았음을 느꼈다.

트럭 앞에 서서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커피를 내리는 매 순간이 행복이었다. 서준은 깨달았다. 역경은 성공의 반대편에 있는 게 아니라, 성공의 일부라는 걸. 고객의 마음을 이해하고 신뢰를 쌓아가는 과정이 바로 성공이었고, 그것을 매일 조금씩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 그를 움직이게 했다.

1년 뒤, 그는 더 이상 혼자 일하지 않았다. 첫 직원이 생겼고, 두 번째 푸드트럭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단순히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자신만의 작은 커피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가 꿈꾸던 자유는 이렇게 현실이 되었다.

비 오는 날이면 서준은 여전히 커피 트럭 앞에 선다. 두 번째 트럭을 담당하는 직원과 교대하며, 직접 손님들을 맞이한다. 그날도 따뜻한 라떼를 건네며 말했다. "비 오는 날엔 이게 제일이죠." 그 말에 손님이 웃으며 대답했다. "역시 서준 씨는 커피뿐 아니라 사람의 마음도 아는군요."

그는 미소 지었다. 커피 한 잔에 담긴 그의 인생처럼, 모든 고비를 넘어 결국 따뜻함으로 마무리될 거라는 걸 이제는 믿을 수 있었다.

삶은 쓰고, 역경은 녹록지 않다. 하지만 서준은 알았다. 쓰디쓴 인생도 자신만의 블렌딩으로 충분히 달콤해질 수 있다는 것을.

여객기 참사 희생자들께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