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 죽음 앞에서, 삶을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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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책수다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 죽음 앞에서, 삶을 배우다

오늘처럼 봄 햇살이 따사롭게 내려앉는 날,
‘죽음’을 떠올리는 건 어쩐지 계절과 어울리지 않아 보입니다.
바람은 부드럽고, 꽃은 피어나고, 거리는 생기로 가득한데—죽음이라니요.
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장 깊이 가르쳐줄 수 있는 건
다름 아닌 죽음일지도 모릅니다.
그 조용하고 단단한 진실을 들려주는 책이 있습니다.
바로, 법의학자 이호가 30년 동안 4천 구의 시신 앞에서 배운 것을 담아낸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
과연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요?
우리는 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까요?
매일 뉴스와 SNS에서는 죽음에 관한 소식들이 넘쳐나지만, 정작 우리는 죽음에 대해 깊이 생각하거나 이야기하는 것을 불편해하곤 해요. 특히 나와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더욱 생각하기 어려운 주제죠. 하지만 30여 년간 약 4천여 건의 시신을 부검해온 이호 법의학자는 "잘 살고 싶다면 죽음을 배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 법의학자는 죽음을 배우라고 할까요? 죽음을 배우는 것이 어떻게 더 나은 삶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이 책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죽음을 통해 삶을 배우는 법의학자
이호 교수가 법의학자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1989년 대학생 시절 마주한 이철규 열사의 죽음이었어요.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배 중이던 이철규 열사는 광주의 저수지에서 온몸에 멍이 든 채 발견됐죠. 부검 결과는 '익사 추정'이었지만, 여러 정황상 고문치사 유기로 보였던 상황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그는 "사람의 죽음에도 의사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단순히 생명을 구하는 임상의학자가 아니라, 억울한 죽음을 대변하고 진실을 밝히는 법의학자의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왕관이 아닌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그가 당시 읽었던 책에서 본 이 구절은 그의 인생을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그는 삼풍백화점 붕괴, 대구 지하철 화재, 세월호 참사 등 대한민국 현대사의 대형 참사 현장에서 시신 수습과 사인 규명에 참여하며 법의학자로서의 소명을 다해왔어요.
책에서 다루는 핵심 내용은 무엇일까요?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어요. 각 장은 법의학자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죽음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다루며, 독자들에게 깊은 통찰과 감동을 선사합니다.
1부: 죽은 자가 산 자를 가르친다
1부에서는 법의학자가 부검을 통해 고인의 마지막 이야기를 듣고, 억울한 죽음을 대신 변호하는 사례들을 소개합니다. 부모의 학대로 사망한 어린아이, 의료 과실로 목숨을 잃은 여고생 등 다양한 사건을 통해 사회적 문제를 조명해요.
특히 「물에 빠진 아이는 누가 구해야 할까」라는 에피소드는 범죄 피해자 가족들을 지원하지 못하는 사회적 현실을 비판하며,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죽은 이의 목소리를 대변함으로써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는 법의학의 본질을 이야기하죠.
2부: 삶은 죽음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있는가
2부에서는 죽음을 인생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때 삶이 비로소 가치 있게 느껴진다는 주제를 다룹니다. 그리스 신화와 철학적 관점을 통해 '삶의 의미'를 탐구하며, 대형 참사 현장에서 법의학자로서 겪은 이야기를 담았어요.
법의학자는 평소에는 사망 원인을 찾는 사람이지만, 대형 참사에서는 유가족에게 고인의 온전한 모습을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역할도 수행한다고 설명합니다. 죽음과 삶이 얼마나 가깝게 연결되어 있는지, 그리고 그 연결 속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의미를 성찰하게 해주죠.
3부: 나의 죽음, 너의 죽음, 그리고 우리의 죽음
3부에서는 개인적이고 공동체적인 관점에서 죽음을 바라보며, 연대 의식과 사랑의 힘이 삶을 지속시키는 원동력임을 강조합니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라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며, 평온한 죽음을 맞이할 권리와 삶의 소중함에 대해 논합니다.
저자는 물질적 욕심을 내려놓고 관계를 중시하는 삶이 행복하고 의미 있는 삶으로 이어진다고 조언해요.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물질적 성취나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임을 강조합니다.

법의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삶의 의미
이 책에서 이호 교수가 말하는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의 통찰을 몇 가지 핵심 메시지로 정리해보았습니다.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기
죽음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과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을 일깨워줍니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며, 매일의 삶이 선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요. 무심코 흘려보내는 순간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과 행복을 누리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되새기게 합니다.
인간관계와 사랑의 중요성
책은 죽음을 통해 인간관계의 진정한 가치를 강조합니다. 주변인과의 유대 관계가 단단할수록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의미 있고 평온할 수 있음을 보여주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관계를 희생시키지 않는 삶이 행복한 삶으로 이어진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웰다잉(Well-Dying)의 의미
잘 살아가는 것만큼이나 잘 죽는 것도 중요하다는 진리를 깨닫게 합니다. 존엄성을 지키며 삶의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는 것이 진정한 웰다잉이라고 설명해요. 불필요한 욕심과 집착을 내려놓고, 품위 있게 생을 마무리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합니다.
사회적 연대와 책임
책은 개인적인 죽음뿐 아니라 공동체적 관점에서 죽음을 바라보며, 연대 의식과 공감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특히 범죄 피해자 가족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 부족 등 사회적 부조리를 짚으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책임감을 느끼게 해요.
법의학자의 철학: "죽은 자가 산 자를 가르친다"
이호 교수는 라틴어 격언 "Mortui vivos docent"(망자가 산 자를 가르친다)를 자신의 철학으로 삼고 있어요. 그는 죽음을 단순히 사인 규명으로 끝내지 않고, 그 과정에서 사회적 교훈과 의미를 찾으려 노력합니다.
"죽음은 삶을 이해하는 열쇠"라고 강조하며, 죽음을 분석해 사회적 시스템 개선과 예방책 마련에 기여해야 한다고 주장하죠. 그는 법의학이 단순히 죽음을 밝히는 것뿐 아니라 남겨진 유가족들을 위로하고 사회적 안전망 구축에 힘쓰는 "애도 의학"의 역할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호 교수에게 법의학은 생명을 지키는 것뿐 아니라 권리를 지키는 학문입니다. 이를 통해 사회 정의와 안전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자 하는 그의 소명 의식이 책 전반에 녹아있어요.
한국 법의학의 현실과 과제
이 책을 통해 우리는 한국 법의학의 현실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어요. 현재 한국의 법의학자 수는 인구 대비 1:10에서 1:20으로,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입니다. 법의학 관련 교육도 일부 의과대학과 법학대학에서 선택 과목으로만 제공되며, 전문적인 학부 및 대학원 프로그램이 부족한 실정이죠.
이호 교수는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교육 프로그램 확충, 인프라 강화, 전문가 양성 등 다양한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법의학자와 관련 기관 보호를 위한 명확한 기준 설정과 조사 절차 표준화도 중요한 과제로 꼽고 있어요.
이런 변화가 이루어진다면 한국 법의학은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사회 정의 실현과 안전망 구축에 기여할 것입니다.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은 단순히 죽음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 삶을 배우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필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아마도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잘 살고 싶다면 죽음을 배워야 한다"는 말이 아닐까 싶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평소에 당연하게 여겼던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고,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는 점을 느끼게 됩니다. 또한 물질적 욕심과 집착에서 벗어나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어요.
마무리하며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이호 교수의 따뜻한 시선과 통찰 덕분에 독자들은 죽음이라는 주제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삶의 유한함을 인식하고, 그 유한한 시간 속에서 어떻게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깊은 사유의 기회를 제공해요.
법의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죽음의 풍경은 때로는 슬프고 무겁지만, 그 속에서 발견하는 삶의 진리와 아름다움은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합니다. 이 책은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맞이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주고, 더 충실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 같아요.
책장을 덮는 순간,
여러분은 아마 봄 햇살을 조금 더 천천히 바라보게 될 거예요.
그리고 이렇게 중얼거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