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과연 매력적인 이야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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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책수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과연 매력적인 이야기일까?


'퍼펙트 데이즈'와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의 대화
최근에 빔 벤더스 감독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를 넷플릭스에서 다섯 번이나 보았습니다. 이 사실은 저 자신에게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특별한 사건도, 극적인 반전도, 화려한 영상도 없는 영화가 계속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영화는 도쿄 시부야의 공공화장실 청소부 히라야마(야쿠쇼 코지 분)의 일상을 따라갑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세수하고 양치질하고, 화분에 물을 주고,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청소 도구를 챙깁니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신 뒤, 소형 승합차에 올라 카세트테이프로 60-70년대 올드팝을 들으며 도쿄 곳곳의 공공화장실을 청소합니다. 또한 필름 카메라로 나무 사이 햇살을 찍는 취미가 있고, 단골 식당에서 술을 마시며, 헌책방에서 산 소설을 읽으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특별한 사건이라고는 동료 타카시와 그가 좋아하는 여자와의 동행, 가출한 조카 니코의 방문, 그리고 단골 식당 주인의 전 남편과의 만남 정도입니다. 영화는 주인공의 과거 트라우마도 명확히 보여주지 않습니다. 이렇게 밋밋해 보이는 영화를 다섯 번이나 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이야기가 주는 묘한 힘의 원천이 궁금했습니다. 분명 제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매력적인 이야기의 법칙과는 거리가 있어보이는 이 영화의 스토리를 리사 크론의 책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와 비교해 봤습니다.
이야기의 과학: 리사 크론의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

리사 크론의 책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 (원제: Wired for Story)는 신경과학과 스토리텔링을 접목시켜 인간의 뇌가 어떻게 이야기에 반응하는지 설명합니다. 크론은 노튼 출판사의 편집자이자 할리우드의 스토리 컨설턴트로서 독자를 사로잡는 이야기의 원칙들을 12가지로 정리했습니다.
크론이 강조하는 핵심 원칙 중 하나는 플롯과 스토리의 차이입니다. "플롯은 스토리와 동의어가 아닙니다. 플롯은 주인공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게 막는 문제에 직면하고 해결하도록 함으로써 스토리를 촉진합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좋은 이야기는 주인공이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크론은 또 이런 말도 합니다: "아름다운 글은 이야기에 패배합니다. 언제나." 기술적으로 아름다운 문장보다는 독자의 감정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 구조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죠. 이야기는 독자의 뇌에 도파민을 분비시키고, 독자가 페이지를 계속 넘기게 만드는 갈등과 문제해결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스토리의 법칙과 영화 속 해석: '퍼펙트 데이즈'는 어떻게 다른가?
'퍼펙트 데이즈'는 얼핏 보면 크론이 주장하는 스토리텔링의 원칙들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영화에는 뚜렷한 갈등이나 문제 해결의 과정이 없습니다. 주인공 히라야마는 매일 같은 루틴을 반복하며, 특별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도 보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과거의 트라우마나 내적 갈등조차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영화는 이상하게 매력적입니다. 왜 그럴까요?
빔 벤더스 감독은 일상의 단순한 순간에서 발견되는 아름다움을 강조하며, 느리고 반복적인 삶의 방식이 얼마나 풍부한 가치를 담고 있는지 탐구합니다. 히라야마가 매일 찍는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木漏れ日, KOMOREBI) 사진은 "찰나의 순간 동안에만 존재하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상징합니다. 이는 영화의 핵심 메시지를 암시합니다: "지금은 지금이야(今度は今度, 今は今)".
여기서 주목할 점은 히라야마가 겉으로는 감정 표현이 없어 보이지만, 영화가 진행됨에 따라 그의 인간적인 면모가 서서히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조카를 떠나보내며 눈물을 흘리고, 단골 바의 여주인과 전 남편의 사연을 듣고 감정을 표현하는 모습은 그가 "자신의 상처를 넘어 타인의 상처를 보듬는 사람"임을 보여줍니다. 이런 측면에서 영화는 크론이 말하는 "주인공의 변화"를 매우 미묘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야기의 법칙은 영화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
겉으로 보기에 상반된 접근법에도 불구하고, '퍼펙트 데이즈'와 크론의 원칙 사이에는 흥미로운 접점이 있습니다.
1. 모든 정보는 이유가 있어야 한다
크론이 강조하는 이 원칙은 영화에서도 분명히 적용됩니다. 히라야마가 듣는 올드팝 음악들(The Animals의 'The House of the Rising Sun', The Velvet Underground의 'Pale Blue Eyes', Otis Redding의 '(Sittin' On) The Dock of the Bay', Patti Smith의 'Redondo Beach', Lou Reed의 'Perfect Day', Nina Simone의 'Feeling Good' 등), 그가 찍는 나무 사이 햇살 사진, 그리고 그가 읽는 윌리엄 포크너의 '야생 종려나무',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11', 고다 아야의 '나무' 같은 책들은 모두 그의 내면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무작위로 등장하는 요소가 아니라, 모두 히라야마라는 인물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2. 인간 뇌는 패턴을 찾고 변화를 감지한다
크론이 말하는 "인간 뇌의 반응" 메커니즘도 영화에 교묘하게 반영되어 있습니다. 우리 뇌는 일련의 패턴을 찾고, 그 속에서 미세한 변화를 감지하는 데 능숙합니다. '퍼펙트 데이즈'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미묘한 차이점을 발견하게 함으로써 관객의 뇌를 자극합니다. 히라야마가 매일 아침 일어나는 장면, 화장실을 청소하는 장면이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르게 표현되는 것, 그리고 우리가 히라야마의 표정과 행동의 작은 변화를 통해 그의 내면 세계를 추측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 원칙의 적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3. 감정의 전달이 핵심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크론이 강조하는 "감정의 전달"입니다. 비록 영화는 드라마틱한 사건을 통해 감정을 폭발시키지는 않지만,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을 통해 관객에게 감정적 반응을 일으킵니다. 히라야마가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햇살을 사진 찍는 장면, 조카에게 잠자리를 내어주는 장면, 또는 식당 주인의 전 남편과 만나는 장면 등은 모두 미묘하지만 강력한 감정을 전달합니다. 이것이 바로 크론이 말하는 "독자(또는 관객)와의 감정적 연결"이 이루어지는 방식입니다.
4. 갈등은 피할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
크론은 "이야기는 갈등과 변화"라고 강조합니다. '퍼펙트 데이즈'에는 대단한 갈등 장면이 없지만, 주인공이 마주하는 일상의 작은 균열들이 내면적 갈등을 상징합니다.
동료 타카시가 밴을 빌려달라고 부탁했을 때
가출한 조카 니코가 찾아와 그의 삶에 무심코 들어오는 상황
단골 식당 주인과 전남편의 사연을 듣게 되는 장면
이런 작은 사건들이 히라야마의 내면을 조금씩 흔들어 놓습니다. 전통적인 의미의 '거대한 갈등'은 없지만, 일상의 균열이 서서히 드러내는 마음의 동요가 이 영화만의 매력입니다.
5. 인과관계: '왜'가 훨씬 중요하다
'무엇이 일어났는가'보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가'가 더 중요하다고 크론은 말합니다. '퍼펙트 데이즈'는 히라야마가 이런 반복적 삶을 '왜' 지속하는지를 궁금하게 만듭니다.
주변 인물과의 작은 교류를 통해 히라야마의 과거 상처나 세계관이 간접적으로 암시됩니다. 관객은 영화 내내 직접적인 설명 없이도 그의 선택과 행동에 숨은 '이유'를 찾으려 하고, 그 과정에서 더 깊이 몰입하게 됩니다.
6. 주인공의 변화를 통한 카타르시스
겉으로 보면 히라야마는 영화 끝까지 큰 변화를 겪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그의 표정은 "이제 내면에 작은 파문이 일렁이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줍니다.
이런 요소들이 쌓이면서 히라야마의 '반복되는 일상'이 서서히 다른 의미로 다가오게 된 거죠.
진정성 있는 스토리텔링의 승리

'퍼펙트 데이즈'는 기존의 이야기 공식을 따르지 않고도 깊은 인상을 남기는데 성공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이 영화는 "평범한 사람도 훌륭한 사람이라고 여겨질 수 있는 것처럼, 평범한 삶이야말로 가치 있는 삶, 완벽한 나날(Perfect Days)이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는 통상적인 영웅 서사나 드라마틱한 변화를 추구하는 이야기와는 분명히 다른 접근법입니다.
히라야마의 생활을 보면, 겉으로는 "쳇바퀴 도는 것처럼 똑같이 보였지만, 사실 그 순간에만 존재하는 항상 새로운 순간들"이었습니다. 매 순간에 진심을 담는 그의 태도는 특별한 사건 없이도 우리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깁니다. 이는 크론이 말하는 "독자를 사로잡는 법"과는 다른 방식으로 관객을 감동시키는 방식입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의 히라야마의 얼굴 클로즈업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의 "울듯 말 듯 한 표정"은 많은 것을 말해주면서도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습니다. 이 표정은 삶의 아픔과 상처, 행복과 의지가 모두 드러나며, 니나 시몬의 'Feeling Good'이 배경으로 흐르면서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암시합니다. 관객은 각자 자신의 경험과 상상력을 동원해 히라야마의 내면을 해석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크론이 말하는 "독자(또는 관객)의 참여"를 다른 방식으로 이끌어내는 방법입니다.
인간의 뇌와 이야기의 관계: 크론의 관점으로 바라보기
리사 크론은 우리 인간의 뇌가 본능적으로 이야기에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녀의 표현대로라면 우리는 '이야기를 위해 배선된(Wired for Story)' 존재입니다. 이런 '뇌의 배선'은 수만 년의 진화 과정에서 생존 기술로 발달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경험합니다. 이야기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라, 우리가 현실을 해석하는 렌즈입니다"라고 크론은 설명합니다.
이 관점에서 '퍼펙트 데이즈'를 다시 보면 어떨까요? 표면적으로는 전통적인 이야기 구조를 따르지 않지만, 더 심층적인 차원에서는 인간 뇌의 근본적인 이야기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습니다. 영화는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직접적으로 던지지 않지만, 히라야마의 일상을 통해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가능한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크론은 또 이런 말도 했습니다. "이야기는 우리가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의미를 찾는 방법입니다." '퍼펙트 데이즈'는 바로 이 지점에서 힘을 발휘합니다. 영화는 현대 사회의 복잡함과 소음 속에서, 단순함과 현재에 집중하는 삶이 가진 의미를 조용히 보여줍니다. 이는 크론이 말하는 "이야기를 통한 의미 찾기"의 독특한 형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론: 매력적인 이야기는 결국 개인의 경험에 따라 다르다
'퍼펙트 데이즈'와 리사 크론의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를 비교해보면, 매력적인 이야기에 대한 단일한 공식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크론의 원칙들은 인간 뇌의 일반적인 반응 패턴에 기반하고 있지만, '퍼펙트 데이즈'는 그러한 원칙들을 우회하면서도 깊은 감동을 전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결국 매력적인 이야기의 정의는 보는 이 혹은 읽는 이의 상황과 경험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드라마틱한 변화와 갈등이 가득한 이야기가 매력적일 수 있고, 다른 이에게는 평범한 일상의 소소한 순간들이 더 큰 울림을 줄 수 있습니다. 제가 '퍼펙트 데이즈'를 다섯 번이나 본 이유는 아마도 현대 사회의 끊임없는 자극과 변화 속에서 일상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싶은 내면적 욕구가 반영된 것일지도 모릅니다.
스토리텔링의 원칙은 물론 유용한 지침이 될 수 있지만, 때로는 그 원칙을 벗어날 때 새로운 감동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할 만합니다. 빔 벤더스의 '퍼펙트 데이즈'는 그런 가능성을 보여주는 훌륭한 예시입니다. 이야기의 힘은 결국 인간의 경험과 감정을 얼마나 진실되게 반영하느냐에 달려 있으며, 그 방식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매력적인 이야기란 결국 우리 각자의 내면에 어떤 울림을 주느냐에 따라 정의되는 것이 아닐까요? 당신에게 매력적인 이야기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당신의 경험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생각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