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지 않을 용기를 청하며
작성자 방토
독서록
침묵하지 않을 용기를 청하며

- 『쓸 만한 놈이 나타났다』 中 「광수」를 읽고
한껏 따뜻해진 날씨가 무색하게, 5월이 되면 광주는 오래된 슬픔에 물들기 시작한다.
애도의 시간을 갖는 건 비단 광주 지역뿐만이 아니다. 함께 비 맞는 심정으로, 5월 18일 만큼은 전국적으로 합동분향소가 마련된다. 또한 각종 미디어에서는 5·18 민주화 운동을 다룬 특집 프로그램을 방송하며 떠나간 인생들을 추모한다.
끔찍하게 많은 사람들이 광주 시민이란 이유로 피 흘렸던 1980년 5월은,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광주와 대한민국 곳곳에 다양한 흔적으로 남아있다. 그날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이들도 당시의 비애만큼은 온전히 느낄 수 있을 만큼 말이다.
1980년 5월의 광주에선, 엄청난 혼돈 속에 가해자와 피해자의 이분법적인 경계가 허물어졌다. 가해자인 동시에 권력의 피해자이기도 한, 도무지 둘 중 어느 하나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모호한 경계에 있는 사람들이 차고 넘쳤다. 여전히 광주의 흉터처럼 남아있는 사람들, 작가 손병현은 「광수」에서 바로 그런 ‘경계인’에 주목하고 있다.
「광수」의 주인공 ‘승도’는 계엄군이었다. 소위 '뼛속까지' 군인인 사람. 제아무리 앳된 고등학생 일지라도, 시위자라면 승도에겐 수많은 '빨갱이'나 '폭도'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들을 겨냥한 폭력은 애국이자 정의였기에, 그는 한 치의 망설임이 없었다. 따라서 작품을 읽는 내내, '비겁한 가해자'라는 생각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아무리 명령에 의해서였다지만, 폭력은 폭력이니까.
하지만 책을 덮는 순간, 왠지 모를 찜찜한 마음이 들었다. 승도는 온몸에 성한 곳 하나 없는 광주 시민들을 보며, 목숨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알았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는 군인으로서의 사명이 5월의 광주에선 지켜지지 않았음을, 한때 자랑스러웠던 군복은 더 이상 떳떳하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비겁하다'는 짧은 결론을 내리기엔, 승도는 분명한 '인간다움'이 있었다. 그리고 평생을 죄책감 속에서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그를 보며, 마음 한구석의 측은지심은 점점 커져만 갔다.
우리는 살면서 마치 우연 같은 운명처럼, 예기치 못한 순간에 과거의 잔여물과 마주하곤 한다. 승도가 한평생 회피하고 도망쳤지만 결국 맞닥뜨린 과거 광주에서의 섬뜩한 실체처럼 말이다. 잔혹한 비밀을 움켜쥔 그의 마음은, 비록 몸은 1980년 5월의 광주를 벗어났을지언정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오히려 외면하려 할수록 더욱 선명해질 뿐이다. 흔적은 과거를 증명하지만, 과거는 흔적을 지운다고 사라지는 것 따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애국이라면 애국이요, 정의라면 정의였던 승도의 폭력은, 끝내 그를 죄책감 앞에 처참히 무릎 꿇렸다. 분명 승도의 폭력엔 고려해야 할 여러 타의적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폭력에 따른 죄책감은 오롯이 승도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결국 승도는 절대적 피해자는 아니라 할 수 있을지언정, 절대적 가해자 역시 될 수 없는 존재이다. 적어도 1980년 5월의 광주에서만큼은 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1980년 5월에 사로잡힌 채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5·18 민주화 운동의 또 다른 연루자들로서, '계엄군'이라는 낙인은 수많은 '경계인'으로 하여금 용기를 낼 수 없게 만들었다. 죽음만큼 시린 죄책감 속에 생겨난 오랜 침묵은 진실을 덮었고, 우리는 여전히 5·18 민주화 운동을 매듭짓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 2021년 3월, 5·18 민주화 운동 당시 계엄군이었던 이가 희생자 유족을 만나 사죄했다. 계엄군이 직접 유족을 만나 사죄한 첫 번째 사례였다. 용기를 내어 희생자 앞에 무릎을 꿇은 이, 그리고 그를 기꺼이 용서하며 포옹하는 유족의 모습은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용기'가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우리는 이처럼, 마침내 용기를 내어 정의의 편에 서는 사람들, 기어이 '침묵을 깨는' 사람들이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세상의 모든 '승도'들이 진실을 침묵으로 남기지 않길, 그리고 용기를 통해 더 이상 죄책감 속에 외롭지 않길 바란다.
용기는 희망을 피워 낼 수 있는 힘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