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은 선택을 망치는가, 선택할 능력을 빼앗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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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은 선택을 망치는가, 선택할 능력을 빼앗는가
결핍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결핍이란 필요한 것에 비해 가용 자원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상태다. 이는 빈곤처럼 물질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마감에 쫓기는 시간 부족이나 다이어트 중의 제한된 섭취처럼 일시적인 상황일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결핍이 반드시 객관적인 부족에서만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충분히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람은 얼마든지 결핍을 경험할 수 있다.
결핍 상태에 놓이면 사람들은 미래의 자원을 끌어다 써서 현재를 버틴다. 대출, 돌려막기, 해야 할 일의 연기 같은 선택이 반복된다. 이는 무책임함이나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결핍이 만들어내는 구조적 반응이다. 결핍은 사람을 미래에서 떼어내 과거에 묶는다. ‘이미 했어야 할 일’을 계속해서 현재에서 처리하며 살아가게 만든다.
이때 나타나는 대표적 현상이 ‘터널링’이다. 터널링이란 당면한 문제에 과도하게 집중한 나머지, 그 외의 중요한 요소들이 시야에서 사라지는 상태를 말한다. 터널 안에서는 단기적 생산성이 오를 수 있다. 제한된 자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대가는 크다. 건강 관리, 인간관계, 장기적 안정성처럼 중요하지만 시급하지 않은 것들은 지속적으로 뒤로 밀려난다. 이 누적된 비용이 바로 ‘터널링 세금’이다.
결핍은 선택의 구조도 왜곡한다. 사람은 마치 작은 여행가방에 짐을 싸듯, 하나를 얻기 위해 반드시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트레이드오프 사고에 갇힌다. 선택지가 줄어들수록 각 선택의 무게는 커지고, 그만큼 실수의 비용도 커진다. 결핍 상태에서 충동을 억제하기 어려워지는 이유다.
이 모든 현상은 결핍이 인간의 ‘대역폭’을 축소시키기 때문에 발생한다. 대역폭이란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현재 사용 가능한 인지적·실행적 여력을 뜻한다. 결핍 상태에서는 문제 해결 능력과 계획 능력, 충동 억제가 동시에 약화된다. 이는 의지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이미 인지 체계가 과부하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특히 빈곤은 다른 결핍과 질적으로 다르다. 다이어트나 과로는 중단할 수 있지만, 빈곤은 의지로 끊어낼 수 없는 구조적 결핍이다. 빈곤층이 건강 관리나 재정적 선택에서 반복적으로 불리한 행동을 보이는 이유는 비합리성 때문이 아니라, 생존 유지에 모든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핍의 문제는 선택의 질이 아니라, 선택이 가능한 상태 자체의 문제다. 결핍 상태에 놓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더 나은 판단이나 강한 의지가 아니라, 미래를 고려할 수 있을 만큼의 여유다. 결핍을 줄인다는 것은 사람을 훈계하는 일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답게 생각할 수 있는 조건을 회복시키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