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더와 마더와 머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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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더와 마더와 머더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를 보면, 한 여성이 아들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극단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목격하게 된다. 영화 속 마더는 단순히 아들을 보호하는 엄마가 아니라, 자신의 존재 전체를 아들을 지키는 체계적 보호 당치로 구조화한 인물이다. 겉으로 보면 그로테스크하고 과격하지만 사실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엄마'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 영화는 우리가 일상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아름다운 '모성'이 극단적 상황에서는 얼마나 뒤틀릴 수 있는지를 날카롭게 보여준다.
익숙한 것이 낯설게 뒤틀릴 때 느끼는 섬뜩함
마더의 보호는 단순하지 않다. 매일 격렬하게, 적극적으로 지켜내야만 하는 전쟁 같은 돌봄이다. 집안의 작은 위기부터 사회적 시선, 아들의 범죄까지 모든 사건을 그녀는 자신의 질서 안에서 해석하고 자신의 방식으로 대응한다. 살인을 은폐하고 진실을 왜곡하며 타인의 삶을 희생시키는 것 쯤은 엄마인 그녀에게는 합리적 선택이다. 헌신적인 모성 이면에 사회적 규범과 윤리적 경계를 넘어서는 그녀의 행동은 관객들이 그녀를 쉽게 판단할 수 없게 만들어, 익숙한 것(엄마)이 낯설게 뒤틀릴 때(체계적 가해) 느끼는 섬뜩함을 체감하게 된다. 가장 친근하고 신뢰할 수 있는 가치인 모성이, 자식 외 모든 것에 가장 낯설고 위협적인 힘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아들을 지켜야 내가 살아
마더의 보호는 그녀 자신의 정체성과 직결되어 있다. 그녀는 아들을 지켜야만 죄책감을 덜고 존재의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많은 가정에서 부모는 자식의 성장을 통해 보호자로서의 역할 종료로 인한 상실과 불안을 느끼게 된다. 도무지 내 곁을 떠날 수 없는 아들을 키우는 마더에게는 보호와 파괴라는 서로 상충되는 동력이 한 몸 안에서 공존하며, 일상적 모성의 내재적 모순을 극한으로 드러낸다.
도준이 교도소에 가는 게 마더에게 더 나은 삶을 가져다주지 않을까, 도준이 없는 마더의 삶 자체가 큰 불안에 빠지지는 않을까. 도준이 언젠가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하게 된다면, 마더는 편안할까 불안할까. 생각이 많아진다.
목적이 분명한 체계적 파괴
영화는 마더를 통해 극단적 몰입과 집착이 어떻게 윤리적 판단을 뒤집는지를 보여준다. 보호자는 일반적으로 아동의 안전을 위해 감정과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동원한다. 그러나 <마더>에서는 그 에너지가 극한으로 압축되어 체계적 파괴로 전환된다. 그녀가 취하는 모든 전략과 행동은 단순한 충동이 아니라, 목적성을 가진 심리적 장치다. 아들의 안전과 자기 존재 확인이라는 두 목표가 동시에 작동하면서, 파괴적 행위조차 합리적 체계 안에 들어맞는다. 이는 엄마라는 역할 자체가 가진 잠재적 폭력성을 관객에게 생생하게 보여주는 장치다.
마더는 보호와 파괴가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체화한 존재다. 파괴는 보호를 위한 수단일 뿐이다. 그렇기에 그녀가 보호를 위해 행동할 때마다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고, 자신의 윤리적 판단은 무력화된다. 동시에 그 파괴적 힘은 아들을 보호하고 그녀 자신을 지탱하는 버팀목이 된다. 보호와 파괴가 상호 의존적이며, 극단적 상황에서 동일한 심리적 뿌리에서 발생한다는 점이 영화의 핵심이다. 이러한 구조는 관객으로 하여금 단순한 범죄 스릴러를 넘어, 모성이라는 친숙한 가치가 극한 상황에서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지를 체감하게 만든다.
마더와 머더
영화를 보면서 나도 일상 속에서 흔히 경험하는 보호와 집착의 경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애쓰면서 때로는 의도치 않게 타인이나 자신을 상처 주기도 한다. 마더는 이를 극단으로 보여주지만 그 심리 구조가 낯설지 않다. 그래서 그녀를 단순히 비정상적 인물로 보기보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보호 본능과 파괴 가능성의 복합성 및 일반성을 느끼게 된다.
<마더>는 살인을 은폐하는 한 엄마를 따라가며, 체계적이고 파괴적으로 작동하는 보호자의 심리를 섬세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영화는 관객에게 친숙하고 익숙한 가치가 극단적 상황에서 어떻게 뒤틀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보호라는 역할이 내포하는 폭력성과 존재론적 불안의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마더의 심리는 보호와 파괴가 한 몸 안에서 공존하고, 그녀가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역할을 수행할 때 인간 존재의 복합성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나는 파괴보호의 본질과 그로 인한 파괴 가능성을 다시금 생각하며, 일상 속 관계와 감정의 섬세한 균형을 떠올리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