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없이 옳은 일을 한다는 것 - 황시목 검사

작성자

컨텐츠 리뷰 놀이터

감정 없이 옳은 일을 한다는 것 - 황시목 검사

뉴니커
@user_u2oeivdve1
읽음 216
이 뉴니커를 응원하고 싶다면?
앱에서 응원 카드 보내기

우리는 모두 무엇이 옳은 지 안다. 무엇이 선인지, 어떤 선택이 ‘더 나은’ 방향인지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그 ‘옳음’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까. 왜 정의에 공감하면서도, 정의를 실현하지 못할까.

비밀의 숲 황시목 검사는 이 질문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다. 그는 감정이 결여된 인물이다. 아니, 감정은 있지만 인식하거나 흐르게 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정의’를 향해 누구보다 뚜벅뚜벅 나아간다. 감정 없이 정의를 행하는 사람. 그 행동의 동기는 과연 무엇일까?

정의의 판단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옳음'을 판단하는 기준은 어디서 만들어질까.

부모와 양육자, 교육기관, 사회적 규범, 크고 작은 경험들로부터 우리는 수많은 '하라-하지 마라' 메시지를 받아들이며 자란다. 간접적으로 접한 이야기들, 미디어와 문화, 상벌 시스템 역시 이 판단 체계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그렇게 축적된 판단의 결과가 오늘의 내가 가지는 ‘옳다-옳지 않다’라는 감각이다. 타인과 그 기준이 약간씩 다를 수 있지만, 우리는 대체로 최소한의 윤리, 공정함, 사회 정의에 대해 비슷한 감각을 공유한다.

하지만 ‘판단’과 ‘행동’ 사이에는 깊은 골이 있다. 안다고 해서, 믿는다고 해서, 바로 움직일 수는 없는 것이다.

감정이 만들어내는 정의의 동기

'행동하는 정의'의 가장 큰 동기는 부당함에 분노일 것이다. 행동을 통해서는 불안과 자기검열 속에서도 옳음을 좇는 자기 확신, 외부 장애물에 굴복하지 않고 밀고 나가는 의지 등을 강화할 수 있다. 그리고 행동 후에는 성취감, 안도감, 혹은 자긍심 등이 뒤따른다. 이 모든 감정적 흐름은 우리를 다음 단계로 움직이게 한다.

그런데, 만약 이런 감정적 흐름이 작동하지 않고 감정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을까? 그럴 리가. 드디어 K 드라마에도 감정이 아닌, 전에 없던 새로운 개연성이 등장한다.

감정 없는 정의의 실행자: 황시목

비밀의 숲 황시목 검사는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 아니, 감정은 있으나 흐르지 못한다. 유년 시절의 뇌 수술로 인해 감정의 회로가 차단되어 있다. 심장은 뛰고, 땀은 나고, 공황이 오지만 그것이 기쁘다거나 불안하다는 식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는 사회 속 ‘옳지 않은 상태’를 바라볼 때 결코 무심하지 않다. 그에게 정의란 어떤 가치나 이상이 아니라, 불균형한 상태를 고쳐야 하는 논리적 문제다. 규칙에서 벗어난 오류를 보았을 때, 그것을 바로잡는 건 선택이 아니라 거의 자동적인 연산이다. 사회의 알고리즘에 버그가 있다면, 그건 반드시 수정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작동해야만 하니까. 그리고 그 작업을 누가 하든 상관없지만, 자신이 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왜냐하면, '정의를 실행하는 도구'인 검사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향한 정의의 감정: 한여진

반면, 한여진 경위는 감정의 파동으로 움직인다. 사람을 믿고, 사람에게 실망하고, 사람 때문에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선다. 그녀에게 정의란 사람을 지키는 일이며,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신념이다.

주변의 누군가가 나쁜 일을 했을 때, 그녀는 괴로워하고 분노하며, 죄를 외면하지 않기 위해 싸운다. 사람을 포기하거나 관계를 단절하지 않고 그 사람이 '나쁜 상태'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직접 공격해서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게 만든다. 그녀의 정의는 이상보다 구체적이고, 가치보다 관계에서 비롯된다. 사람이 상처입지 않게 하기 위해, 다시는 같은 상처가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 그녀는 움직인다.

같은 정의를 다른 동기로 실현하다

정의라는 이름 아래 이들은 같은 방향으로 나아간다. 황시목은 차가운 새벽의 바다 같고, 한여진은 햇살 아래 파도치는 대양 같다. 전혀 다른 결로 움직이지만, 두 사람은 완벽한 짝꿍처럼 서로의 방식으로 사회의 균형을 회복해나간다.

한여진에게 정의는 사람의 가치이고, 황시목에게 정의는 시스템의 균형이다. 한 사람은 감정을 통해, 다른 한 사람은 감정 없이 옳은 일을 해낸다. 정의에 감정이 꼭 필요하지는 않다는 걸, 그러나 감정으로도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걸 이 두 사람은 함께 증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황시목은 감정을 배제함으로써 정의라는 단순한 로직을 수행한다. 감정의 격류에 휘말리지 않고 순수한 알고리즘을 실행하는 그의 존재는, 오히려 우리가 추구해야 할 ‘원래 사회’의 모습을 되새기게 한다. 권력, 돈, 유착, 유명세 같은 것들에 의해 더럽혀진 사회 시스템이 아닌, 그저 단순히 ‘그렇게 작동해야 하는’ 정의의 구조 말이다.

그 단순한 로직은 쉽게 더럽혀진다. 그러나 그것을 되돌리는 일은, 아주 복잡한 우리와 우리 관계의 몫이다. 감정과 이해관계, 무력감과 절망이 얽혀있는 우리가 한 걸음이라도 움직이려면, 나만의 동기를 찾아야 한다.

우리 안의 알고리즘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알고리즘을 따라 움직인다. 누구나 안에 버그를 품고 있고, 그 버그는 때로 인간적인 면모로, 때로 회피와 침묵으로 나타난다. 정의에 대한 당신의 알고리즘은 어떤가. 감정에서 비롯되는가, 아니면 논리에서 비롯되는가?

우리는 사회의 버그를 직접 고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때로 하나의 오류가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정의의 실행은 거대한 변화가 아니라,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는 작고 단단한 의지에서 시작된다.

당신의 정의는 어디서 비롯되는가?
그리고, 당신의 동기는 무엇인가?

🔮오늘의 행운 메시지 도착!